Memorial day 연휴엔 대다수가 어디론가 떠났다.
어제 CNN 뉴스에서는 제이크루가 bankrupt 했고 그이어 많은 retailer들의 연이은 bankrupt 소식이 뉴스를 통해 흘러나왔다. 제이크루라는 말을 듣자 내가 가끔 가던 애선스 시 숙소 근처 매장을 떠올렸다. 그곳에서 셔츠도 사고 황금색 헤어 핀도 구입했고 남편 여름옷 네 벌 구입했었다. 최근 영어뉴스는 주로 코로나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으니 어려움 없이 이런 뉴스가 귀에 들려온다. 뉴스를 들을 때도 미리 한국어로 미국 이슈를 접하고 CNN 뉴스를 듣는다면 이해가 더 빠르다. 매일 들려오는 미국발 뉴스는 상황이 좋지 않다. 작년 이맘때까지만 해도 이런 분위기가 아니었는데 이런 상황이 1년 후 올 것이라고 누가 예측이라도 했을까.
정확하게 딱 1년이 되어서야 이렇게 디테일한 스토리를 풀어놓을 수 있다는 게 신기하기만 하다. 전조처럼 브런치 작가가 적기에 된 것도 관련이 있다는 느낌이 든다. 가끔 이런 랑데부를 찾을 때마다 놀란다. 어떤 일들이 시작되는 것 속에는 전조 같은 게 있고 그에 따르는 일들과는 어떤 소명 및 나름의 연관성이 있다고 오랜 시간 동안 어렴풋히 믿고 있었다.
인생에서 일어나는 우연한 일들이 우연한 것처럼 보인다는 것일 뿐이라고 생각했었다.
5월 27일은 미국 국경일로 메모리얼 데이이고 그 25일 토요일부터는 미국의 황금연휴이다. 학교 수업도 없는 날이라 일부 교육생들은 팀을 짜 며칠 여행 가려고 분주하게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미국의 메모리얼 데이는 전쟁에서 사망한 이들을 기리는 한국의 현충일과 비슷한 날로 매년 5월 마지막 주 월요일은 지정하고 있다. 미술관, 박물관이 많은 런던이라면 튜브를 타고 어디로든 갈 수 있겠지만 자동차뿐 아니라 국제 운전면허증도 없고 미국 남부 조지아주 근방에 특별히 여행하고 싶은 지역이 없기에 자발적 방구석 은둔자로 남기로 했다.
27일 메모리얼 데이에는 학교도서관도 문을 닫고 갈 데라곤 겨우 캠퍼스 교정뿐이었다. 걸어서 갈만한 곳에 문화시설 하나 없어서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었지만 후회하진 않았다. 3일 동안 방구석에 틀여 박혀 How Adam Smith can change your life라는 원서 한 권을 읽다가 중간에 CVS 가서 간식을 사 가지고 오기도 했다. 과자도 새로운 것이라 모든 게 실험적인 시도였다.
그렇게 다들 기념일 연휴에 어디론가 떠났고 텅 비다시피 한 숙소 방구석 방구석엔 나 같은 은둔자가 한 10명 안짝으로 있다는 걸 알았다. 남은 사람들 중에는 체력이 받쳐주지 않아 그냥 조용히 쉬고 싶은 사람도 있고 허리 통증으로 인해 쉬는 사람도 있었다. 나중에 돌아온 자들은 플로리다로 갔는데 좋았다는 이야기를 했고, 인근 빌트모아 호화 고 주택에서 점심도 못 먹고 배고픈 상태로 상태로 방 100개를 보자는 사람, 그만 보자는 사람 실랑이로 분위기가 안 좋았다는 등의 기상천외한 썰을 듣게 되었고 빌트모어 고택으로 가자는 제안을 거부한 게 참 다행이다 싶었다.
숙소는 거실이고 침실이고 조명도 어두워 책을 오랜 시간 읽기는 힘들었다. 도로가에 위치하여 오며 가며 지나가는 차의 엄청난 굉음소리가 그대로 들리는 데다가 5월에도 더위는 폭염 수준이라 에어컨도 당해내지 못했다. 어떻게 3일을 방구석에서만 보냈는지 지금 와 생각하니 아찔하다.
떠나는 팀에 합세해 마음 편하게 연휴 때 여행을 가지 못한 이유 중 또 하나는 4주라는 기간 내에 얼른 영어실력을 향상하고픈 욕심과 그럼에도 늘지 않는 영어에 대한 근심 걱정과 그 외 아주 사소한 불편한 문제들이 나를 방구석 은둔자로 머물게 했다.
대충 누가 남아있는 가는 파악이 되었고, 남아있는 교육생들끼리 또 근처 공원에서 보트 타기 등의 계획안이 단톡 방에 올라오기도 있다. 맘이 편해야 여기저기 돌아다닐 여력도 있는 것이다. 또 자칫 재수 없이 미국에서 있을 수 있는 크고 작은 사고가 발생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 가득한 마음도 한몫하였다.
내가 혼자 지낸다는 것을 안 어느 마음이 넉넉한 교육생이 계속 같이 영화를 보러 가자고 제안했다. 겨우 움츠린 몸을 이끌고 나포함 3명은 막 개봉한 영화 '알라딘'을 보러 근처 영화관을 가기로 했다. 그리 먼 거리는 아니지만 리프트 어플을 이용해 택시를 불러 도착한 그곳은 적당한 크기의 영화관으로 시설은 나름 괜찮았다.
보통 연휴 때 영화관이 엄청 붐비는 우리나라에 비해 그곳은 정말 한산했다. 내부 관람석 의자 앞에는 테이블도 있어서 벨을 누르면 웨이터가 와서 식당처럼 맥주나 음식을 주문받았다. 낯선 미국에서 새로 개봉한 영화를 봤다는 것 역시 신선한 경험이었다.
미국 도착한 첫 주에는 단체로 아웃렛에 들르는 것도 일정에 잡혀 있었다. 코치과 나이키 매장부터 서둘러 갔다. 아웃렛 매장이라 그런지 신상 같은 제품은 없었다. 코치나 마이크 제이콥스도 우리나라에서 사는 것보다 꽤 저렴하게 살 수 있었다. 코치가 80%까지 할인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 그리고 몇 년 전 남편이 미국 출장 가서 사 온 촌스런 검정 핸드백이 생각났다. 이렇게 좋아 보이는 핸드백이 이 가격이면 도대체 남편이 사 온 건 얼마였을까 하고 말이다. 코치 매장을 둘러만 보고 바로 나와 나이키 매장으로 향했다. 남편과 큰딸 운동화를 같은 종류의 운동화로 구입했는데 그나마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는 건 그 전형적인 검은색뿐이었다. 남편과 아이들은 내가 사 온 운동화를 그다지 마음에 들어하는 거 같지 않았고 서로 운동화를 바꿔 신고 가는 해프닝이 자주 발생했다. 무려 10센티가 차이 나는데도 말이다. 제대로 신었는데도 ' 그거 딸 거 아니야?' 하는 나의 말에 남편은 그런가 하고 벗고 다른 신발을 신기도 했다.
운동화 세 켤레와 CVS에서 구입한 영양제가 캐리어 무게를 더욱 가중시켰다. 짐을 줄이기 위해 한국에서 가져간 것을 많이 버려야 했다. 4주가 끝나고 나머지 1주간 정책연수를 수행하러 벌링턴을 거쳐 워싱턴, 뉴욕까지 갔을 때 매번 공항에서 짐 부칠 때 무게 맞추느라 중간에 꺼내서 짐을 분리하는 수고를 해야겠다.
첫 아울렛을 간 후 며칠이 지났다. 효자로 보이는 듯한 한 교육생은 어머니, 부인, 딸을 위한 핸드백을 사서 부인에게 사진 찍어 카톡으로 보내주었더니 장모님 핸드백도 사 오라는 아내의 지시가 떨어졌다. 또 코치 아울렛을 가려면 택시를 타고 가야 했고 혼자 가기엔 그래서 그 효자 교육생은 같이 갈 사람 몇 명 모집을 했다. 택시 부른 지 10분도 되지 않아 건장한 체력의 여성 운전사가 모는 택시가 숙소 앞에 도착했다. 그날 오후에 전체 교육생들은 인근 '스톤마운틴' 방문 계획이 잡혀있었고 우리에겐 약 4시간 정도의 시간이 남아있었다. 나 포함 총 4명은 코치에서 뭘 살까 설레는 마음을 안고 아웃렛 가는 택시에 올라타 코치 매장을 상상했다.
거의 우리의 이동수단이 택시인지라 운전사들과 대화할 기회가 많았다. 그 여성 운전사는 아마존의 창업자 '제프 베조스'를 엄청 좋아한다고 했다. 그러다 내가 아마존의 창업자 이야기가 나왔을 때 그 제프 베조스 이름을 제대로 기억을 못 해 '베프제 조스'라고 했더니 엄청 엄청 웃는다. 그 후로 제대로 '제프 베조스'를 확실히 외웠다. 아마 우리나라 삼성 이재용을 안다고 외국인 손님이 이재식이라고 한 것에 비유해보면 된다. 그 운전자는 또 동양의 돈 , 특히 지폐에 관심이 많은 거 같았다. 손님 중 한 명이 베트남 지폐를 준 것에 대해 엄청 즐겁게 이야기했고 , 내심 한국돈도 선물로 받고 싶어 하는 거 같았으나 그녀에게 건네지 진 않았다.
한 시간 정도 우버를 타고 코치 아울렛 매장을 가자 점원은 우리를 엄청 반갑게 맞이했다. 얼마 전 첫 번째 방문에서 그 교육생은 코치 가방을 3개 이상 구입했기에 아주 인상 깊게 남아있었던 모양이다. 게다가 외모가 돈 많은 사업가처럼 보였을 수도 있다. 우리는 소소한 지갑이나 파우치를 구입했다. 나는 정가의 80%를 할인하고 있는 동전지갑 2개를 딸들 선물로 구입했다. 하지만 큰아이는 자기 취향이 아니라고 좋아하지 않아서 내가 쓰고 있고 둘째 아이는 좋다고 잘 가지고 다닌다. 자매인데도 하나에서 열까지 취향이 다르다.
그렇게 매장에서 정신없이 구경하다 보니 시간이 금방 흘렀다. 그때가 마침 토요일이었다. 넉넉하게 정해진 시간 내 숙소로 돌아가야 스톤마운틴 가는 단체버스에 올라탈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해도 우버나 리프트를 이용해도 택시가 잡히지 않았다. 시간이 되어가는데도 택시는 잡히지 않자 우리 넷은 정말 초조하고 불안했다. 올 때 타고 온 택시기사 하고 시간 약속을 해둘걸 하는 후회도 했다.
우리가 안절부절못하며 택시 잡는데 애 먹는 거 보고 점원이 이것저것 알아보더니 자기가 직접 자기 차로 숙소까지 우리를 데려다주겠다고 한다. 거의 한 40분 거리인데 말이다. 그러다 점원의 제안으로 편안한 마음으로 택시를 타고 우리를 태워갈 단체버스가 출발하기 5분 전에야 겨우 도착하게 되었다.
낯선 미국에서 코치 매장 점원이 직접 태워다 준 것도 아주 놀랄만한 경험이었다. 그날의 우리 무용담은 교육생들에게 알려졌다. 철저한 자본주의 사회인 미국에서 자신에게 아무 이익이 없는데도 단순한 호의를 베풀 수 있을까 아니면 정말 단순한 인간적인 호의였을까에 대답은 확실하게 말할 수 없다. 숙소 앞까지 안전하게 우리를 데려다준 점원이 한사코 안 받겠다는데 그 교육생은 팀으로 20달러를 드렸다. 정말 그 점원은 동양에서 온 통 큰 사업가라고 생각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우리끼리 우스갯소리를 했다.
안도의 한숨을 쉬고 버스에 앉아 스톤마운틴으로 향해하는 버스에 올라탔다. 이제 곧 우리는 스톤마운틴을 한 바퀴 도는 기차도 탈것이고 케이블카를 이용해 그 꼭대기까지 올라갈 것이다. 바비큐도 먹을 것이고, 저녁엔 레이저쇼도 보게 된다고 했다. 레이저쇼를 보면서 레이저봉 한 개씩 무료로 나눠주고 음료수와 팝콘은 맘껏 제공된다고 한다. 극도의 피곤함이 갑자기 밀려오며 행복한 기대감도 잠시 짧은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주중에 영어수업에 참여하고 오후에는 강연을 듣고, 자원봉사를 하다 주말에는 문화체험이라는 주제로 이렇게 미국의 문화를 몸소 체험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조지아주 애틀랜타에 있는 CNN 방송국 투어, 코카콜라, 아쿠아리움을 갔고, 애선스에 있는 테라핀 브루어리 체험, MLB 야구게임 관람, 사바나라는 유서 깊은 도시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 KKK사단이라는 백인우월주의 단체의 근거지인 스톤마운틴에서 바비큐를 즐기고 미국 피자를 먹고 볼링게임을 했다. 그곳의 소소한 이야기들은 다음부에서 계속된다. (9부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