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황,커피믹스,작두콩차를 제임스에게 설명하다
내가 속한 B1반은 캐런의 수업을 듣지를 않아서 마주하는 시간은 거의 없지만 제임스의 부재 시 잠시 수업을 받을 수 있었다.
미국은 개인이 병원에서 잠깐 의사의 진료를 받아도 지불해야 하는 진료비가 상당하다. 가벼운 감기로 진료를 받더라도 직장보험에 가입 안되어있을 경우 비용 부담이 더 크다. 오바마케어 시도가 실패한 주된 이유 중 하나가 젊은 층 대다수가 그 제도를 반대했던 이유도 있다고 한다. 그들은 아직 절실하진 않으니깐 의료보험이 얼마나 좋은 제도인지를 알지 못하고 당장 매월 꼬박꼬박 보험료 지출을 받아들이지 못한 것이다.
캐런의 지인이 오래전 병원비 때문에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하고 병으로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사연을 듣게 되었다. 수십 년 전 이웃에 친하게 살았던 여성이었다고 한다. 질병이 있다는 걸 알았지만 치료비 부담으로 적기에 치료받지 못해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는 이야기 하면서 캐런의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 그 눈을 본 순간 뭐든지 이루어질 것만 같은 아메리칸드림의 초라한 민낯을 생각하게 되었다
그뿐 아니라 대부분 그들은 자기 주택을 소유하지 않고 평생 동안 주택 임대비를 갚아가고 , 비싼 학비를 감당하기 힘들어 융자를 통해 그 학비를 평생 갚아간다고 한다. 캐런은 50대 중반 되었고 남편은 60대 초반인데 몇 년 전에야 캐런의 남편 대학 학비 융자금이 끝났다는 이야기를 듣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현지에서 영어 다음으로 힘든 게 매끼 식사를 해결하는 것이었다. 밑반찬을 만들 수 있는 재료를 구할 수 있는 마켓이 근처에 없는 데다가 숙소 근처에 그나마 CVS 마켓이 있는데 식료품보다는 주로 의약품, 과자, 생활용품, 음료수 화장품을 팔고 있었다. 과일이나 미국에서 많이 먹을 수 있는 체리를 판다면 우리나라에선 두배 이상 비싸기에 그곳에서 많이 사 먹을 텐데 신선한 과일이나 육류 파는 곳은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는 없었다. 그래도 꼭 과일을 찾는다면 15분 이상 걸어서 모퉁이에 있는 스페니쉬 슈퍼에 갈 수도 있지만 딱 한번 갔는데 과일 상태가 좋아 보이지 않았다.
학교 수업 끝나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신호등 건너편 바로 CVS가 위치하고 있었다. 특별히 살 것이 없더라도 오며 가며 그곳을 한번 쭉 둘러보는 것이 규칙화된 일상이었다. CVS는 영양제를 비롯한 약품 외에 슈퍼마켓처럼 이것저것 잡다한 것을 팔고 있었다. 건강보조식품 분야에서 어느 정도 이름이 알려진 회사인지 미국 전역에 지점이 있고 티브에서 제품 광고를 많이 하고 있었다. 오메가 3, 센트룸. 칼슘제, 두통약등 이것저것 1+1으로 조금씩 사모은 영양제가 나중에 미국을 떠날 때 즈음되니 캐리어 한 박스에 가득 넘치고도 남았다. CVS에는 별별 의약품이 다 있었다. 스트레스 완화, 기억력 좋아지는 약도 있었는데 우리나라 인터넷에서 두배 가격으로 팔고 있었다. 가뜩이나 암기도 안되고 나이 들어 공부하는데 상당한 에너지를 소모하고 있던 터라 바로 구입했지만 효과는 증빙할 방법이 없으니 알 수가 없다.
CVS에서 할인상품이나 1+1 상품을 누구나 구입할 수 있는 게 아니라 회원가입을 해야 할인된 가격에 구매할 수 있다. 처음엔 한 달인데 뭐 어때 하다 할인상품을 제 가격 주고 산다는 게 아까웠다. 그래서 한 달간 사용하는 새로운 유심 번호를 이용해 회원카드를 발급받았다. 이제 언제 미국을 가게 될지 모르지만 몇 년 되면 미사용으로 자동해지될지도 모른다. 그래도 한 달간 그 카드를 발급받아 사용한 것이 잘한 일이라 생각된다.
지금도 그곳에서 사 온 영양제를 먹고 있으며 시어머니에게도 1+1 글루코사민을 사다 드렸는데 너무 만족스러워하며 어머니는 또 구입할 수 있는지 물어보셨지만 한 번도 해외 구매대행을 해본 적이 없고, 아마존에서 물건을 사보려고 시도했다가 배송비 때문에 포기한 적도 있어서 엄두가 나지 않았다. 더더욱 지금 은 코로나 사태로 인해 해외에서 물건을 주문한다는 건 더 힘들어졌다. 교육생 한 명은 한국인 한 명이 거의 CVS를 쓸어갔다는 소문이 있다고 나를 지칭하며 웃으며 농담했다.
날이 갈수록 한국음식이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미국인들은 도대체 뭘 먹고사나 궁금하기도 했다. 도착한 첫 주에 한인마트에서 햇반을 많이 사지 않는 걸 후회했고 3주째는 햇반을 박스로 샀는데 이상한 냄새가 나는 거 같아 더 이상 먹을 수 없었다. 슬슬 라면도 지겨워지기 시작했다. 제대로 영양섭취가 안되고 있었지만 몸은 붓고 무거워진 느낌이었다. 이렇게 긴 기간 동안 외국 현지에서 난생처음 생활하는 거라 예상하지 못한 기본적인 것으로 어려움을 느꼈다.
현지 음식 체험하는 것도 좋지만 한 달 정도 체류할 생각이라면 오래 보관할 수 있는 한국음식인 멸치볶음이나 오징어채를 볶아서 진공 포장해 오거나 가벼운 양념 김 같은 것도 챙기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이다. 지금껏 한 번도 외국에 이렇게 한 달가량 체류한 적이 없어서 '그냥 아무 현지식 먹으면 되지 뭐하러 준비해 가?' 하며 아무것도 준비해 가지 않았던 것을 후회했다.
4주간의 시간은 1주 단위로 정말 너무도 빠르게 흘렀다. 그에 반해 나의 영어실력이 얼마나 향상되었을까 걱정했다. 영어를 잘한다는 나의 기준은 원어민이 하는 말을 다 알아먹고, 의사표현 자유자재로 하고 미드나 영화를 자막 없이 보고 또 공부 안 해도 토익 900은 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 기준에 도달하려면 도대체 나에게 얼마 동안의 더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걸까 휴하는 깊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종강 날에는 작은 파티를 한다고 제임스가 전날 말해줬는데 살짝 궁금했다. 제임스 자비로 과자와 음료수 등을 쇼핑백에 넣어가지고 온 것이다. 자기도 간식을 가져올 테니 너희도 먹을 수 있는 아무거나 가져오라고 했는데 영어 배우느라 에너지가 다 빠져 뭐 구입할 여력도 없는지 교육생 한 명만 음료수와 간식을 준비해왔다. 책상 위에 과자와 음료수를 깔아 두고 서투른 영어로 우리는 제임스와 소통했다. 알고 보니 우리가 총 네 반인데 그중 세 번이 제임스의 수업을 들었고 제임스는 그 과자 보따리를 반마다 들고 다니며 종강 시간에 풀어야 했기에 한 번의 파티로 몽땅 먹어치우면 안 되는 것이었다.
아쉬운 작별의 시간이 다가오자 한국에서 미리 작은 기념품이라고 챙겨 오지 않았던 게 아쉬웠다. 한국의 특색을 나타낼 수 있는 뭔가를 선물로 주면 좋겠다 생각하니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수료식 날 브라이언에겐 한국 커피믹스, 제임스에겐 커피믹스, 강황, 죽염, 작두콩차를 지퍼백에 각각 포장해 명칭과 효능을 인터넷을 찾아 매직으로 그 포장지에 적어 드렸더니 예상치 못한 선물에 엄청 좋아했다. 그 용법이나 효능을 서투른 영어로 설명하는 게 즐거웠고 옆에서 다른 교육생은 커피믹스 타 먹는 법을 설명했다. 그건 사실 내가 먹으려고 집에서 주섬주섬 챙겨 온 것이지만 미국 와서는 개봉조차 못했었던 것이다. 특히 건강이 좋지 않은 제임스를 위해 염증 해소에 좋은 강황을 준다는 게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제임스는 고맙다며 자기가 못 먹게 되더라도 지인들과 함께 나누면 된다고 했다. 그날 난 한국 강황, 커피믹스, 작두콩차 홍보대사가 되었다. 제임스 또한 서구식 식단보다 동양식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식사도 신경 써서 하는 거 같았다. 지금까지도 제임스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그의 일상을 엿보고 있다.
애선스에서 4주간 생활하면서 언젠가는 가보리라 했던 어벤저스 팀들이 맥주 마셨던 컴포트 브루어리에 못 가본 게 아쉽다. 교육생 중에 같이 어울려 브루어리 갈만 사람도 없었도 보편적으로 두루두루 친할 수 있는 사교성도 없었기에 로컬 맥주 브루어리 방문 계획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가보고 싶다고 나 혼자 가기엔 그곳은 낯선 미국 땅이기 때문이다. 단지 내가 혼자 갈 수 있는 곳은 CVS 외에 근처 걸어서 5분 거리에 제이크루라는 옷가게였다. 거기도 회원 가입하면 30%까지 할인해줘서 안 되는 영어로 가입했고 가끔 60%까지 할인하는 옷을 득템 하기도 했다. 내가 구입했던 제이크루의 흰색 셔츠는 멋모르고 세탁기에 돌려 며칠 만에 애기 옷이 돼버렸던 안타까운 일도 있었다. 하루는 그곳 사장이 카운터 일을 보고 있었다. 제이크루 이메일 수신을 받으면 추가 할인해준 데서 이야기하다가 친구가 한국인이라고 했다. 그 말만 제대로 알아먹은 거 같다.
(8부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