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캡스톤 프로젝트를 앞두고(10)

캡스톤 프로젝트 그리고 갈등

by 얼음마녀

한 달간 타국서 영어 배우는 데 있어서 체력 또한 무시 못했다. 일부 30 혹은 40대 교육생은 새벽에 일어나 30분 이상 걸어서 Gym에서 수영을 하고 오기도 했는데 나의 경우는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영어 특히 말로 하는 영어를 잘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에는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었다. 만약 내가 20,30대에 몇 년간 외국문화를 접할 수 있는 기회를 갖았더라면 어학능력뿐 아니라 인생을 살아가는데 motive가 될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도 가지게 되었다.


1996년, 내 나이 26살 때 난생처음 유럽행 비행기를 타게 되었다. 비행기가 스위스 취리히 공항에 착륙하기 직전 낮게 나는 동안 창밖의 스위스의 붉은색 지붕을 보았을 때 26살의 내가 느꼈던 그 아련하고 벅찬 감동을 매번 여행 때마다 느끼고 싶었다. 하지만 그 이후 어떤 여행에서고 그때만큼의 감동을 느낄 수 없었다. 호기심에 가득 차 걷고 또 걸어도 지치지 않는 열정은 이삼십 대나 가능한 일인지 모르겠다. 오십 대의 나는 매사 심드렁하고 오래 걸으면 발이 붓고 숨이 찰뿐만 아니라 극도의 피곤함을 느낀다. 오직 되돌아온 후에야 그곳에 대한 추억을 떠올리며 그리워하는 일만 하고 있을 뿐이다.

4주간은 예상했던 데로 빠르게 지나갔고 미국을 떠나기 전 우리가 수행해야 할 과제가 앞에 놓여 있었다. 팀별로 각각 정책과제 수행을 목표로 정한 주제를 가지고 미국의 주 정부와 한국의 정책을 비교하고 어떤 정책에 대한 결론을 도출해 발표를 해야 한다. 하지만 두 나라의 정부구조나 제도가 틀리기에 어떤 부분에 focus를 맞춰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


사실상 미국 연수중 수행해야 할 정책과제 발표, 그 캡스톤 프로젝트가 가장 어려운 과제였다. 매일 오전에는 영어수업에 참여하고 오후에 강연 들으며 각 팀별 정책과제 관련 기관 방문한 것을 보고서로 작성하여 미국 공무원들 앞에서 영어로 프레젠테이션 발표를 해야 한다. 발표가 끝나면 그들이 팀별 평가를 내리고 결과에 따라 최우수 팀에게 상이 주어진다. 시상이 끝나면 모두 수료증을 수여받게 되며, 장장 4주간의 연수가 막을 내리게 된다. 비록 한 달이었만 메디케어 문제를 비롯해 미국에 대해 가졌던 환상을 다들 조금씩 걷어가는 듯했다.


귀국해서도 연수내용을 보고서로 제출하고 프레젠테이션 발표해야 하는 일을 여름이 시작되기 전 해야 한다. 우리처럼 해외에서 교육시켜주는 프로그램도 없어 그들은 우리를 상당히 부러워했다.


원자력 전문가인 게티박사, 북한의 밤의 위성사진을 보여주며 통일이 된후 우리의 원자력으로 북한의 전력난을 해소할수 있다고 한다.


교육이 시작되면서 팀이 꾸려졌고, 정책과제는 미국으로 연수 가기 전에 팀별로 선정되었다. 내가 속한 팀은 신재생에너지를 주제로 선정했다. 나중에 미국 현지에서 관련 기관 섭외 등 여러 가지로 어려움을 겪게 되자 우리가 너무 어려운 주제를 선정했구나 하며 후회를 했다. 마지막 주 캡스톤 프로젝트 발표날까지 긴장하며 모두가 예민해진 탓에 팀원 간 신경전이 오갔지만 발표가 끝난 후에는 서로 축하와 고생했다는 인사말을 나누었다.


애선스 시 에너지국을 방문해 관게자로부터 설명을 듣고 있다. 통역없이는 진행하기 어려웠다.


미국은 우리나라처럼 공기업인 한전이 전기를 관리하는 게 아니라, 사기업이 팔고 또 개인 간 전기 거래가 이루어질 수 있는 데다가 신재생에너지에 있어서 무엇보다 시장이 활발하다. 우리 팀은 발표할 때 미국처럼 신재생에너지를 어떻게 한국에 도입하고, 이미 일부 자치단체에서 도입하고 있는 걸 보여주었으나, 미국 공무원들이 좋아하는 건 자기 나라에는 없는 것을 발표해서 자기들이 배우고 싶어 하는데 높은 점수를 주는 거 같았다.


캡스톤 프로젝트를 준비하는 과정이 모두에게 특별한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오전에는 영어수업, 오후에는 정책과제 수행과 관련한 강연에 참여하고 끝나면 개인별로 캠퍼스 키친 봉사를 가거나 토스터 마스타에 참여하고 주말이면 푸드마켓, 해비타트 봉사 및 문화체험으로 일주일이 빡빡하게 채워진다. 그 와중에 겹치지 않는 개인 시간을 이용해 야간에는 미팅룸에 모여 캡스톤 프로젝트 발표를 위해 팀별로 자료를 수집하고 최종 프레젠테이션을 만드는 과정까지가 상당한 팀워크를 요구한다.


어디서건 팀워크가 중요하다. 유난히 부러운 팀이 있었다. 그 팀은 우리 숙소에 마련된 미팅룸에서 캡스톤 프로젝트로 어떤 내용으로 발표자료를 만들 것인지 토의할 때 맥주 한 상자를 들여놓고 마시면서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토의하고 자료를 만들고 있었다. 일부는 자료를 타이핑하고 일부는 그 모든 상황이 잘 돌아가게끔 맥주 안주가 떨어지지 않게 공수하고 또 다른 사람은 자료를 찾는 등 모든 것이 하나의 톱니바퀴처럼 잘 돌아가는 것처럼 보였고 사실상 나중에 그 팀이 최종 캡스톤 프로젝트 발표할 때 미국 공무원들로부터 점수를 가장 높게 받아 상을 받게 될 줄은 몰랐다.


사실 안타깝게도 옆에서 토의하였던 우리 팀은 조금 삐그덕거리고 있던 터라 나는 자꾸 그 옆팀의 맥주 한 상자와 그들의 분위기를 지켜보며 부러워하고 있었다. 그 팀이 발표할 때 미국 공무원 자리 쪽에서 웅성웅성하며 웃음소리가 나는 등 어느 정도 반응의 소리가 들렸는데 그게 최우수상을 받게 되는 전조였다. 발표 평가를 하는 애선스 시 공무원들끼리 아마 " 어머 저거 괜찮은데?" 했을 거 같다.


우리 팀 발표자는 끝날 때 " God bless you! "라고 미국인들이 흔히 쓰는 말을 끼워 넣었다. 우리 팀원들은 그것 때문에 떨어졌다고 난리 했으나 어쩌면 그가 10여 년 전에 미국에서 몇 년간 살아본 경험이 있어서 그런 여유를 부렸는지도 모른다.


프로젝트 발표 전날까지 가장 힘들고 떨리고 긴장했던 사람은 빌표자일것이다. 최대한 외우고 질문이 들어오면 답까지 해야 할 테니깐 어느 정도 영어실력이 있는 사람들이 나섰고 그들은 밤새도록 외우고 또 외웠을 것이다. 그중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나중에 듣게 되었는데 다른 팀 한 발표자는 연습하면서 숙소 카운터를 지키고 있는 종업원을 상대로 스크립트를 들고 발표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걸 들은 나는 다음과 같은 것을 그리게 되었다.



캡스톤 프로젝트 발표 준비 등으로 마지막 주는 정신없이 지나갔다. 마지막 테스트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름 긴장하고 있었는데 소식통에 의하면 우리가 처음 미국 와서 치른 시험과 같은 내용이라는 것이다. 아무리 같은 내용이어도 자기 생각을 말하는 주관적인 것이라 문법이나 구조상 문제가 없어야 하고 내용도 설득적이야 할 것이다. 우리가 건강한 삶을 유지하기 위해 인터넷으로 내용을 찾아본다고 한들 그 문장을 통째로 외울 수도 없는 데다가 또 구조에 맞게 써야 하기에 큰 의미는 없고 정말 자신의 실력이 4주간 얼마나 향상되었는지 그 좌표로 본다면 편하게 대응할 수 있을 것이다.


시험이 시작되고 시험지를 받는 순간 모두가 놀라지 안 알 수 없었다. 이거 웬걸 에세이고 문법이고 처음 본시험과 거의 내용이 같은 것이다. 캐런은 우리의 실력을 정확하게 측정하기 위해서는 이런 방법이 최고라며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었다. 하긴 처음 치렀던 시험문제 답도 모르는데 처음보다 더 못 볼 수도 있고 잘 볼 수도 있다. 처음에 시차 적응 못해서 자기 실력보다 시험을 못 본 사람들은 자신의 페이스를 되찾아 결과가 좋게 나올 수도 있다. 우린 그 마지막 테스트 결과로 개인 시상도 받고 한국으로 돌아가 다시 반이 편성되어 수료할 때까지 그 반으로 수업을 받게 되었다.






미국에 도착했을 때 숙소에 관한 이상한 일이 나와 룸메이트에게 일어났다. 다른 방은 멀쩡하게 청소가 되어 있는데 유독 우리 방만 누군가 사용하고 간 후 청소가 안되어 여기저기 어지럽혀 있었다. 숙소 키를 받고 기대감으로 문을 연 순간 그 상태를 본 순간 기분이 급속도로 다운되었다.


어쩌면 그것이 앞으로 일어날 일을 미리 보여 주었는지 모른다. 숙소 직원에게 알려 나와 룸메이트는 임시로 당초 우리가 사용하려는 방보다 훨 나은 상태의 독방을 배정받게 되었다. 다른 교육생들은 2명이 2개의 침실, 2개의 화장실 딸린 룸에서 생활했지만 나와 룸메이트는 각자 침실 1개, 화장실 1개 있는 단독의 방을 배정받아 일주일간 꿈같은 안락한 생활을 보냈다. 사실 전혀 다른 남과 비록 한 침실은 아니지만 같은 공간에서 생활한다는 건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불편하기에 1주일간 나와 룸메이트가 단독으로 생활한 것에 대해 다른 교육생들의 부러움을 자아내게 했다.


일주일을 그렇게 남들과 다르게 호텔 생활처럼 보낸 첫 주말 우리 모두는 사바나로 떠나야 했고 다녀온 후에는 다시 원래대로 2명이 사용하는 룸으로 옮기게 되었다. 물론 각자 침실과 각자 화장실이 있고 공동부엌과 거실이 있지만 대부분 같이 식사를 준비하고 같이 먹고 룸메이트 와도의 협력도 빠질 수 없는 중요한 부분이다.


하지만 나와 룸메이트는 정리되지 않은 어질러진 숙소가 우리의 관계를 미리 예견해 주었듯 안 좋은 상황이 우연히 연거푸 발생하여 초기에 틈이 생겼고 나중엔 메꿔질 수 없는 상태까지 틀어져버렸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어떤 에너지가 발생한다. 상대에게서 나오는 주파수를 감지해서 말하지 않아도 어떤 에너지를 서로가 감지한다. 가령 표정이나 말투, 목소리, 억양 모든 걸 종합해서 우리의 적인지 아닌지를 판단할 수 있는 본능적인 유전자를 우리는 원시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았다.


게다가 어떤 일은 보통 전조를 동반하며 그 상황이 일어나게끔 판이 적기에 펼쳐진다. 그 장소에 그 시간에 모든 것이 만나지 않았더라면 생기지 않을 일이 , 그 일이 일어나고야만 하는 일은 반드시 일어난다는 사실을 어렴풋 속으로 감지하고 있었다. 일이 잘 되려면 수고 없이 빠르게 진행되는가 하면 , 일이 꼬이려고 하면 정말 예상치 않는 일이 발생해 꼬일 데로 꼬인다. 인연이나 악연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안 만나야 하는 사람을 그날 꼭 만난다거나 하는 일을 살아오면서 누구나 겪어본 적 있을 것이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인생에는 뭔가 설명할 수 없는 '뭔가 있다는' 어떤 '운명'같은 것도 자연스레 믿게 되는 거 같다.


사람과의 관계도 가끔 아주 사소한 문제로 이렇게 틀어질 수 있는데 틀어지기 전에 미리 조금 더 현명한 판단을 할 수 있다면 그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할 수 있는데 막상 그 닥친 현실에서는 미래일까지 냉청하게 판단하기 어렵다. 결국 그 상황에서는 서로가 절대 지지 않으려는 팽팽한 감정싸움을 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마주한 직장 현실에서도 한두 번의 트러블은 을 겪어본 적 있을 것이다. 그게 상사와 부하직원이든, 같은 팀 내에서건 서로 힘겨루기식 감정싸움이 한번 시작되면 봉합되기 쉽지 않다. 운 좋게 인사발령으로 자연스레 서로가 떨어져 근무하게 된다면 그 감정이 쉽게 끝날수 있겠지만 오래 있는 시간만큼 서로에 대한 악감정은 계속 악화되기 마련이고 한번 나빠진 감정이 회복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기에 그런 감정에 빠지기 전에 정신을 차리고 좀 더 냉철한 판단을 할 수만 있었더라면 어쩌면 최악의 상황까지 가지 않게 될지도 모른다. 우리는 교육 들어오기 전에 '직장에서 갈등 상황이 발생했을 때 어떻게 하겠는가'에 대해서 면접관으로부터 심층면접을 받았다. 그만큼 '동료 간 갈등'은 드러내고 싶지 않은 치부 같은 것이자 , 조직사회에서 해결해야 할 영원한 이슈일지도 모른다.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룸메이트와 '갈등'을 해결하지도 못하고 피하지도 못했고 돌아온 직장 상황에서도 '갈등'은 현재 진행형이다. (11부에서 계속)


처음 도착해서 칼빈슨 연구소 측으로 4주간의 조지아대에서 연수하는 내용에 대해 설명을 듣고 있다. 이곳에서 캡스톤 프로젝트 발표도 하고 수료식도 열렸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