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회) 워싱턴-벌링턴-뉴욕에서 1주일간의 이야기
2019년 6월 7일 금요일 마지막 리허설에 이어 드디어 캡스톤 프로젝트 프레젠테이션이 끝났다. 개인별 시상 및 전체 수료증 수여식까지 끝난 후 단체사진을 찍었다. 오후 2시부터는 각자 숙소로 돌아가 짐을 꾸리고 근처 '코리언 바비큐'라는 식당에서 환송 만찬을 가졌다. 그날 저녁에도 많은 비가 내렸다.
다음날 아침에도 여전히 비는 내리고 있었다. 숙소에서 우리를 태운 버스가 애틀랜타 공항에 내리자 캐리어를 꺼내 들고 팀별로 다른 도시로 가기 위해 바삐 움직였다. 미국 국내선 비행기 편 및 숙소까지 한국에서 미리 팀별로 직접 예약해야 했다. 어떤 팀은 시간선택을 잘못해서 공항에서 반나절을 소비했다는 이야기를 나중에 듣게 되었다
숙소에서 버스를 타고 공항까지 오는 내내 빗줄기가 굵어지더니 바람도 조금 불기 시작했다. 우려했던 데로 기상악화로 애틀랜타에서 워싱턴 로널드 레이건 공항 가는 오전 10시 반 비행기 편이 오후 3시로 변경되었다. 그 후 다시 오후 6시 13분으로 연기되었다. 그렇게 기약 없이 기다린 시간이 장장 9시간가량이었다. 영어에 능통하지 않아 제대로 항의할 수도 없고 지체되어도 승객 어느 누구 하나 소동 부리는 사람은 없었다. 안전이 최우선이니 다들 체념하며 공항에 무작정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단톡으로 계속 다른 팀의 소식이 올라왔는데 이미 공항을 떠난 팀도 있고 우리처럼 수시간째 대기하는 팀도 있었다. 그렇게 공항에서 에너지 소모한 끝에 어둠이 깔려서야 워싱턴에 도착했다.
워싱턴은 백악관이 있는 미국의 수도라 확실히 도시가 구역이 계획적이고 깨끗한 느낌이었다. 뉴욕처럼 복닥 복닥 한 곳은 아닌지 도로에는 지나가는 사람들을 많이 보지 못했다. 링컨 메모리얼 기념관부터 시작하여 , 워싱턴 기념비로, 한국전 참전기념비로 해서 쭉 걸어가 우리 목적지인 스미스소니언 항공박물관까지 걸어갔다.
지나가며 옆 창문이 나무로 가린 건물이 보였는데 구글로 찾아보니 FBI였고 그 앞에는 트럼프 이름이 있는 건물이 있었다. 걷고 또 걸어서 국회의사당 앞 넓은 잔디밭이 펼쳐졌다. 항공박물관은 항공이나 과학에 관심이 많은 자녀들을 데리고 오면 좋겠다. 달에 첫 착륙한 아폴로 11호 우주선 및 그곳에서 가져온 돌까지 전시되어 있었다. 몇 시간 둘러본 후 택시를 타고 대한제국 공사관으로 갔다. 그곳에서 다른 팀원들을 우연히 만나 반가웠다. 대한제국 공사관은 워싱턴에 가면 꼭 한번 둘러봐야 한다. 방명록에 서명을 하고 그곳에서 제공한 동영상을 시청했다.
워싱턴에서 아쉬운 하루를 보내고 우리의 두 번째 목적지인 벌링턴으로 향했다. 도착하자마자 그곳 공기가 다른 곳과 달랐다. 신선하고 상쾌한 바람이 불었고 전반적으로 주변에 녹지도 많은 전형적인 전원풍의 바닷가에 인접한 조용한 도시였다. 겨울에는 눈이 많이 내려 스키를 즐기려는 관광객들이 많이 온다고 한다. 캐나다 근방에 있어서 그곳 학생들이 미국보다 학비가 저렴한 캐나다로 대학을 진학한다.
호텔 로비에는 게스트들을 위한 사과와 음료, 빵이 상시로 비치되어 있었다. 룸에 간단히 여장을 풀고 바로 호텔 옆에 위치한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우리 팀에도 나처럼 맥주를 즐기는 여성이 없다. 난생처음 먹어보는 정체불명의 메뉴를 주문하면서 눈치 안 보고 로컬 맥주를 마셨다. 공기도 좋고 너무도 조용하고 맛있는 식당도 많아 이곳에서 일주일 정도 휴양을 하며 글도 쓰고 요트도 타면 더할 것 없는 최고의 휴가겠구나 했다.
벌링턴은 민주당 상원의 원인 버니 샌더스가 시장으로 있었던 곳으로 그가 벌링턴 시장이었을 때 맥닐 화력발전소를 지었다. 우린 위누스키 수력발전소에서 어머니가 한국인이라는 소장의 말에 너무 반가웠다. 벌링턴 시청의 매니저인 마이크는 유대인으로 현재 시장과 친구 사이라고 한다. 인터넷 보면 벌링턴의 신재생에너지가 유명해서 한국에서 많이 찾아오고 마이크가 인터뷰한 기사가 많이 나온다.
마이크는 직접 우리가 묵은 호텔에 와서 우리를 자기 차로 픽업해서 화력, 수력발전소까지 안내하고, 나중에 부둣가 근처에 있는 '스플래쉬'라는 맛집까지 소개해주었다. 그곳엔 그림에서만 보던 하얀 요트가 항구에 빈틈없이 정박해 있었고 점심으로 또 그곳 로컬 맥주와 생선요리를 먹고 모처럼 우리 팀은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벌링턴에서 이틀을 머문 후 우리는 최종 목적지인 뉴욕으로 출발했다. 그곳에서 교육생 전체인 여섯 개 팀 모두가 집결해야 한다. 뉴욕의 UN본부에서 만나 그곳을 단체로 관람한 후 각자 일정에 따라 헤어지게 된다. 다음날 공항에서 다시 합류해서 인천공항으로 귀국하는 미션이었다. 유엔본부 관람하는 날도 비가 많이 왔다.
오전에 유엔본부 단체관람 후 팀별로 해산했다. 우리 팀은 현대미술관을 관람하기로 했다. 관람이 끝날 때쯤 나의 체력은 거의 고갈 직전이었다. 도저히 더 이상 걸을 수 없어서 나와 다른 한 명은 걸어서 숙소까지 왔고 나머지는 다른 곳을 가본다고 했다. 숙소로 돌아오던 중 혼자 미국에서 가장 오래되었다는 숙소 근처 메이시스 백화점을 둘러보았다.
사실 뉴욕의 숙소가 최악이었다. 숙소 잡기도 힘들어 공항에서 가깝고 다운타운에 위치한 곳을 어렵게 찾아 한국서 급하게 예약하느라 후기를 제대로 안 봤나 보다. 그날 저녁 그곳에 도착한 순간 모두가 충격을 받았다. 다운타운에 위치만 했을 뿐 나머지는 최악이었다. 세계 각국의 여행자가 온 듯 시장통처럼 바글바글 했고 , 호텔 객실 내부는 도저히 잠을 이룰 수 없을 정도로 최악이었다. 화장실 문이나 티브이가 들어간 장식장을 비롯 마치 30년 전에나 보던 낡은 느낌이 드는 데다 창문 쪽에 세워진 라디에이터인지 에어컨인지 창문 쪽에서 차가운 바람만 나오는데 너무 추웠다. 벌링턴에서 기념으로 가져온 관광안내서로 막아봤지만 소용없었다.
나와 룸메이트는 그날 저녁 근처 다른 호텔이라도 있으면 빠져나갈 생각으로 밤새도록 핸드폰으로 검색까지 했었다. 도저히 잠을 잘 수 없을 정도로 불안하고 힘든 저녁이었다. 게다가 다음날 아침 들은 소식에 의하면 다른 방을 쓰던 예민한 남자 팀원의 방엔 생쥐가 나타났고 생쥐와 눈이 마주쳤다고 한다. 또 간밤에 총소리까지 들었다고 하며 그는 잠을 설쳤다고 한다.
다음날 아침 우리는 브로드웨이에서 '겨울왕국'을 보게 되었다. 난 그곳 기념품 가게에서 거금 50달러를 주고 '엘사 담요'를 구입했다.
호텔이 너무 추워 그걸 덮고 자야 했다. 하지만 그걸 덮어도 추웠다. 이틀을 견딜 수 없는 밤을 보내고 아침엔 쏜살같이 나갔다. 타임스퀘어 근처에서 사진을 찍다가 뮤지컬 보고, 근처 애플샵까지 걸어가고 , 나이키 샵에도 들렀고 가던 중 뉴욕의 트럼프 타워 앞을 지나갔다. 또 어떤 일부 건물들은 공사 중인 데다가 너무 높아 건물 전체 외형은 밑에서는 볼 수가 없었는데 입구에 '엠파이어 스테이트'빌딩이라고 쓰여있었다.
오후에는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을 둘러본 후 센트럴파크를 조금 걷다가 또 택시를 타고 자유의 여신상 페리 타는 배터리 공원까지 갔다. 그곳에선 큰소리로 호객행위를 하는 듯 보였다. 유람선을 타고 자유의 여신상까지 가는 표를 파는가 했는데 멀리 넘실 데는 파도를 보니 유람선이 운행할 거 같지 않았다. 멀리 보이는 자유의 여신상의 희미한 윤곽을 눈으로 확인만 한 후 정처 없이 황소가 있는 월가를 걸었다. 가도 가도 끝없는 길에 팀원 모두 지치기 시작해 다들 신경이 예민해지기 시작해서 그날 저녁의 분위기는 사뭇 차가웠다.
그 끔찍한 펜실베이니아 호텔은 정말 관광객의 거대 집결지 같았다. 관광버스 및 택시가 끊임없이 손님을 실어 날렸고, 그 앞길엔 교통 통제원이 있어 잠시라도 정차를 할 수 없게 했다. 너무도 번잡한 데다가 하루 내내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호텔 주변엔 도로 표지석에 앉아 관광객들을 훑어보는 홈리스를 비롯해 사이렌 소리에 경찰들 뛰어가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었다.
평일 아침엔 그곳에서 직장을 다니는 사람들인지 모르겠지만 지하철에서 내려서 모두 한 방향으로만 움직이는 거 같았다. 거대한 한 집단의 움직임처럼 보이는 그들과 마주하면 길 한쪽으로 비켜서야 했다. 뉴욕답게 곳곳에 빵집과 카페 및 바가 자리하고 있었다. 그곳에서 맥주잔을 기울이며 여행자의 뉴욕의 밤을 즐기고 싶었으나 다들 맥주를 좋아하지도 않고 숙소로 돌아오면 다들 쓰러져 자기 바빴다.
호텔에서 제공한 맛없는 아침식사를 한 후, 팀원들이 호텔 앞에서 만나기로 한 시간이 2시간 정도 남아 룸메이트가 플랫아이언이라는 건물에 가보지 않겠냐고 했다. 그 교육생은 40대로 나와 체력 자체가 틀리다. 며칠 겪어보니 걸어도 걸어도 힘든 기색 하나 없었다. 마치 멈추지 않고 계속 걷기만 하는 사람 같았다. 하루 종일 걸어서 간다 해도 별 탈이 없는 체력의 소유자였다.
난 단호하게 노를 외치고 인터넷 블로그에서 본 유명한 뉴욕의 '스텀프 타운'커피숍을 혼자 찾아가 보기로 했다. 구글 앱을 가동해 그 동네를 몇 바퀴를 돌아도 간판을 찾을 수 없었다.
30분 이상을 방황한 끝에 유리창에 조그맣게 표시된 상호를 확인하자 조금 황당했다. 저렇게 유리에 작게 써놓으면 어떻게 찾으란 말인가. 그곳에서 유명하다던 커피와 크로와상을 구입하고 덤으로 텀블러까지 구입해 호텔 로비로 갔다. 원래 그곳에서 커피 사고 호텔 로비서 먹는다고 개인 여행자 블로그에 나와 있기 때문이다. 그 호텔 로비에는 아침부터 노트북으로 글 쓰는 젊은 사람들을 볼 수 있다고 하는데 정말 아침부터 뭐하느라 저러고 있는지 어두침침한 조명 아래서 노트북을 이용해 다들 뭔가 작성하고 있었다. 잠시 소파에 앉아 있는데 청소하시는 분인지 관리하시는 분인지 한 여성이 내 앞에 와서 웃으며 뭐라고 하는데 무슨 말인지 알아먹지 못했다. 맛은 그냥 커피맛이고 그냥 크로와상 맛이었다. 커피를 사면서도 팁을 줘야 하나 보다. 내가 화면을 터치해서 팁을 누르자 점원의 얼굴에 미소가 퍼진다. 저 미소는 팁의 가치인가.
무거운 캐리어를 들고 도시 간 이동 및 귀국하기 위해 공항으로 이동시 캐리어 6개가 택시에 들어가야 하기에 택시 한 대로는 부족했다. 항상 2대가 움직였다. 그러면서 운전기사들과 잠깐 동안 대화할 수 있었다. 한 운전기사는 몽골인 젊은 기사인데 외모가 우리와 흡사해서 국적을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도 우리가 중국인인지 같은 몽골인인지 궁금해하는 눈치였다. 몽골인은 가족이 이주를 했는데 부인은 학위 공부를 하고 있다고 했다.
그렇게 미국에서 5주간의 영어 및 정책연수가 마무리되고 존 에프 케네디 공항에서 다시 만난 33명은 서로 반가워하며 그동안 각자 경험했던 에피소드를 공유했다. 다들 어려웠던 점은 기관 방문에서 겪은 영어 소통 문제였을 것이다. 얼굴에 피곤함과 지친 기색이 역력했지만 다들 소중한 경험들을 한 얼굴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 교육이 끝나더라도 지속적으로 영어공부를 하겠다는 결의를 다지게 되었다.
드디어 UGA와 미국 문화체험 이야기가 11부까지 오며 끝나게 되었다. 2019년 5월 11일부터 6월 14일까지 총 5주간의 미국 생활을 마치고 귀국하여 다시 2019년 12월 4일까지 우리는 영어 절반, 글로벌 리더 교육 절반을 받게 된다. 모두의 최종 목표는 거의 영어였다. 다음 회부터는 나이 50 넘어 다시 시작한 나의 영어공부 그리고 교육을 통해 만난 인상 깊었던 원어민 강사님들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