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간의 방문기
내 생애 언제쯤 북유럽 가보나 했는데 작년에 운 좋게 방문하게 되었다. 방문 목적은 단순 여행이 아니라 2주간의 정책 연수 수행하는 것이었다. 그런 과정에 일부 문화 체험한 내용을 나의 기억을 되살려 그때를 기록해보고자 한다. 일정은 핀란드에서 스웨덴을 거쳐 덴마크 그리고 스페인까지 포함되었다. 힘든 스케줄은 나의 저질체력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었다. 아무튼 이런 기회를 얻게 된 것에 감사한다.
이제 또다시 그곳을 갈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 10개월이 지난 지금에야 그때를 기록하는 이유는 코로나로 인해 앞으로 세계여행이 불투명해진 지금 내 기억 속에만 북유럽이 남아있는 게 아깝고 시간이 갈수록 나의 기억도 희미해지고 여운도 사라질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언젠가 정리할 거라는 기대로 핸드폰에 저장해 둔 사진도 용량 문제상 언제까지 안고 갈 수 없고 사진을 무작정 삭제할 수도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자유여행이면 가기 전 이것저것 현지에 대한 사전 조사를 하면서 알아가기 마련인데, 여행사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라 수동적일 수밖에 없고 겉만 스쳐가는 정도였다. 정해진 스케줄에 따라 버스를 타고 기관 방문해서 설명 듣고 팀별로 정리하며 틈틈이 문화체험을 했다
핀란드 헬싱키
핀란드 하면 순록이 이끄는 마차를 탄 산타클로스 그리고 사우나 정도로만 막연히 알고 있었다. 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는 데인족이나 이들은 또 다른 종족인 핀족이라고 한다.
시벨리우스가 자주 갔다는 카페에서 '라테'한잔도 못 마신 게 너무 아쉽다. 일부 교육생은 저기서 커피 마셨고 맛있었다는데 이제와 후회해봤자 소용없다.
핀란드는 '핀란디아 교향시'로 잘 알려진 시벨리우스의 나라다. 국민들이 그를 자랑스러워하는 역사적 배경이 있다. 시벨리우스 관련 조형물이 있는 공원엔 별다른 것이 없이 잔디가 깔린 넓은 평지 같은 곳이었다
바로 길을 건더면 100년 되었다는 아주 작은 검붉은색의 카페가 있다. 그곳에서 유명한 건 시나몬 롤이라는데 안 먹어 볼 수 없다. 미니풍차가 강 위에 떠있는 듯한 그곳은 사진 찍기에 더할 나위 없었다. 인상적인 건 입구 벤치에 참새들이 모여있었는데 세상에나 그렇게 통통 살이 오른 참새는 처음이었다.
9월이었지만 헬싱키는 아주 늦은 가을의 느낌 같은 색깔의 도시였다. 어둠과 추위를 살짝 감춘 채 곧 정체를 드러낼 것 같았다. 여성 한국인 가이드는 몹시 추위를 잘 타게 보인 키가 큰 여성인데 털장갑과 모직 롱코트를 입고 다녔다. 서울이 고향인데 핀란드인과 결혼해 살고 있다.
핀란드는 마리메코라는 상품과 무민의 나라다. 마리메코는 공항에서도 비싸서 패스하고 공항에서만 무민 인형 두 개를 샀다. 우리가 묵었던 호텔 근처에 저녁에 갈만한 곳은 없고 바로 앞 대형마트 밖에 없어 저녁을 먹고 교육생 남자 한 명과 여성 4명 정도가 같이 갔는데 둘이서 치약을 매장에 있는 거 다 쓸어 담고 종업원에게 당신네 창고에 여분 없냐고 있으면 가져다 달라고 하고 있었다. 나중에 도착한 우리는 남은 소형 자일리톨 치약을 잔뜩 구입했다.
핀란드 공공도서관은 상상외로 너무 크고 독특했다. 도서 반납은 무인 기계 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창구에 책을 밀어 넣으면 알아서 컨베어 벨트로 이동되어 반납 처리되는 과정을 통유리를 통해 볼 수 있다. 로비에 전시된 책을 뒤적여 보다가 책 속에 끼워진 인도의 지폐를 발견했다. 한국에 돌아와 그 책을 찾아보게 되었고 결국 구입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시녀들>이라는 이름으로 출간된 Handmaid's tale로 디스토피아적 이야기다. 여기 비치된 건 영국판이다. 작년에 구입한 후 아직도 완독을 못하고 있다.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말뫼까지
비행기를 타고 스웨덴으로 넘어갔다. 날씨가 좋아 파란 하늘과 뭉게구름이 선명했다. 스웨덴 하면 노벨상 수상을 하는 곳, 여자도 군대를 가는 곳, 또 '스톡홀름 증후군'이라는 것도 생각난다. 남자들 평균 키는 180이라고 한다. 확실히 지나가는 남성들이 키 편차가 핀란드와 다르다. 대학 학비는 무료고 난민도 많다고 한다. 또한 그들은 지퍼를 최초로 발명했다. 알프레드 노벨이 태어난 나라이기도하다. 그런 저력이 어디서 나오는지 궁금했다. 차가 다닐 수 없는 주택가 좁은 골목이 비슷해서 미로처럼 느껴졌다. 실제로 국내 드라마 촬영도 이곳에서 했다고 한다.
외발 오토바이를 탄 경찰도 볼 수 있었다. 골목이 많기에 외발 오토바이는 흡사 전동 킥보드 같은 외형으로 골목이 많은 도시 곳곳을 기동력 있게 다니는데 적합하게 보인다.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스웨덴, 덴마크의 역사에 대해 알고 갔더라면 더 흥미로웠을 것이다. 유일한 보람 있는 일이라면 여행 중 로이스 로리의 <Number the stars>를 가져가 덴마크에서 다 읽었다는 것이다. 낮에 강행군하고 저녁에 숙소에 돌아와 한 일은 침대에 비스듬히 누워 책을 보고 , 옆 침대 교육생은 한국에서 우연히 빠진 박경리 <토지>를 읽었다. <Number the stars> 내용은 제2차 세계대전중 독일군이 점령하던 시기 덴마크 코펜하겐에 거주하는 유대인 가족과 민족이 나치 독일군을 피해 아슬아슬하게 살아가는 이야기인데 상당히 문장이 쉽고 스토리가 점점 빨려 들어가 다 읽었던 거 같다. 그 후 로이스 로리의 작품에 신뢰가 가 <The giver>까지 구입해 읽었다.
스톡홀름에서 이틀 머물고 우리나라의 현대조선에 1달러에 크레인을 매각했던 '말뫼의 눈물'로 알려진 말뫼로 갔다. 말뫼의 대표적 건물인 사람의 형태를 본떠 몸을 180 틀고 하늘로 향해 지어진 에코빌딩인 '터닝 토르소'를 방문해서 기관 설명을 들었고 하루 그곳에서 머물렀다.
덴마크와 스웨덴은 바다로 연결되어 있고 그곳에 외레순드 다리가 놓여있다. 외레순드 다리는 우리나라의 인천대교와 흡사하다고 우리끼리 이야기했다. 다리를 차로 건너면 바로 덴마크가 나온다. 국경을 바로 버스로 건널 수 있다니 놀랍다. 그들은 스웨덴에 집을 두고 외레순드 다리를 통해 덴마크로 출퇴근한다. 아무래도 스웨덴이 집값이 저렴하니 스웨덴에 집을 얻고 직장은 덴마크로 다니는 것이다.
덴마크 코펜하겐
덴마크는 동화작가 안데르센의 나라이다. 키가 엄청 컸으며 평생 독신으로 살다 갔다. 안데르센의 동화 속 인어공주 동상을 보러 가지 않을 수 없다. 많은 관광객들이 좋은 지점에서 사진을 찍으려고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인어공주 동상 밑에선 백조 한 마리가 유유자적 놀고 있었는데 <미운 오리 새끼> 동화가 생각났다. 과거 안데르센이 살았다는 니하운 운하 주변에도 관광객으로 북적거렸고 근처에서 벼룩시장처럼 오래된 물건들을 팔고 있었는데 로열 코펜하겐 그릇이 유독 눈에 띄었다. 로덴버그 성도 방문했는데 사전 역사적 배경지식이 없으니 왕가의 보물들이 많고 와인 저장고가 있었다는 것만 뚜렷한 기억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마지막 여정지 스페인 바르셀로나
덴마크에서 일정 마치고 비행기를 타고 스페인 바르셀로나로 향했다. 첫날 날씨가 좋아 산꼭대기까지 버스를 타고 몬세라 삿 수도원으로 향했다.
어떻게 저렇게 높은 산에 수도원을 지을 수 있었는지 놀라울 따름이다. 전 세계 많은 신앙인들이 찾아온다. 그곳에서 유명한 건 '검은 성모상'이다. 가이드 말로는 검은 성모상의 손을 만지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해서 많은 사람들이 몰려서 지금 줄 서도 우리 스케줄과 맞이 않아 보기 어려울 거 같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몇 교육생들이 줄을 섰길래 따라 섰는데 줄이 금방 줄어들어 다행히 검은 성모상의 손을 만질 수 있었다. 왜 검은 성모상인가 했더니 얼굴이 검은색이었다. 상당히 신비로움을 자아내고 있었다.
스페인의 세계적인 건축가 가우디가 건축한 성가족 성당은 옥수수를 세워 놓은 듯한 형상인데 그 높이 또한 웅장해서 밑에서 쳐다보면 꼭대기까지 다 볼 수 없고 내부 또한 화려한 스테인글라스로 장식되어 곳곳에 가우디의 천재성이 가미된 성스러움을 보여주었다.
스페인은 소매치기로 악명이 높아 사전에 가이드는 소매치기 조심하라고 당부를 하며 콜럼버스 동상이 서 있는 람블라스 거리를 돌아다닐 수 있는 자유시간을 줬는데 그때 이미 나의 발을 통통 부어가고 있었다. 급히 가게에서 슬리퍼를 사서 신고 일행들과 돌아다닐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걷는데 힘들어하는 사람은 나뿐인 듯했다. 단돈 3유로 슬리퍼를 샀는데 스페인의 명품을 구입한 줄 알고 어디 브랜드냐고 몇 명이 물어보았다.
람블라스 거리에는 스페인 축구황제 호날두 때문인지 축구 유니폼 상점들이 유독 많았고 가는 곳마다 가격차이 및 품질 차이가 많았다. 호날두 티셔츠를 흥정하려고 하니 어느 나라에서 왔냐고 물어봐 Korea라고 했더니 고개를 설레 설레 젓는다. 살짝 부끄러웠다.
잡상인들도 정말 많았다. 길가에 잡상인들이 바닥에 깔아놓고 파는 축구 유니폼을 누가 사는 사람이 있는지 모르지만 스페인에서는 그런 상품을 사는 사람과 파는 사람 동시에 벌금이 부과된다고 한다. 잡상인의 물건을 구입하는 사람은 없지만 파는 잡상인들은 경찰이 뜨면 순식간에 사라졌다 경찰이 가면 바로 나타나곤 했다. 그 순발력이 어디 있는가 했더니 깔아놓은 매트 위에 축구 유니폼을 고정시켜 놓아 누군가 경찰이 떴다고 알려주면 순식간에 매트를 말아 도망가곤 했다.
미국에서 연수할 때 우리가 스페인 간다고 하니 제임스나 브라이언이 상당히 부러워했고 제임스는 전에 스페인 가봐서 멋진 곳이라고 하며 다시 스페인을 가고 싶어 했다. 브라이언 역시 스페인에 다시 가고자 열심히 스페인어 공부를 하고 있다고 했다. 한때 스페인에 가서 공원에 있으면 누가 말을 걸고 그렇게 스페인어 연습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들이 갔던 스페인 도시와 내가 갔던 바르셀로나와는 느낌이 다를 것이다. 왜 그렇게 다들 스페인에 열광하는지 답을 찾지는 못했다.
스페인이 낳은 천재화가 피카소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자유시간이 남아 일행 몇몇이 인터넷 검색해 람블라스 거리에서 가까운 볼만한 장소가 피카소 미술관이라 구글 지도를 검색해서 아주 빠른 걸음으로 일행을 따라갔다. 구글 지도를 헷갈려하는지라 나 혼자였으면 찾아가기 힘들었을 것이다. 빠른 걸음으로 따라가는 것도 지치지만 낙오될 수는 없었다. 되돌아오는 골목도 복잡해서 길을 잃기 딱 십상이었지만 지리에 능숙한 일행들이 있어 시간 내에 버스로 돌아올 수 있었다.
'지로나'라는 생전 들어본 적 없는 낯선 도시를 방문하게 되었다. 강가에 위치한 오래된 가옥과 그 위 하늘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니 하나의 예술작품이 되었다. 그곳은 오래된 것들이 현재에 공존하는 것처럼 골목마다 영화 속에서 보던 역사 속 장소들과 같은 느낌을 자아내고 있었다.
골목이 전부 다 비슷한 건 과거 적이 쳐들어올 때 길을 못 찾게 일부러 그렇게 설계한 것이라고 한다. 지로나의 골목을 다니면서 잊을 수 없는 건 우연히 온갖 잡화를 파는 상점을 갔는데 만년필들이 전시되어 있었고 가격 또한 비싸지 않았다. 30유로 정도였기에 기념하기 위해 사고 싶었지만 이미 나에게는 만년필이 네 자루나 있어 구입하지 않았지만 그 만년필을 사지 못했던 하는 아쉬움이 지금까지 드는 건 사실이다.
스페인에서는 와인을 저렴한 가격으로 즐길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식당에서 파는 와인은 보통 10유로 정도 하는데 그거 한 명이면 우리 팀 6명이 충분히 마실수 있다. 호텔 옆엔 와인바가 몇 개 있어서 저녁에 우리 팀끼리 레드와인, 화이트 와인 등 웨이트리스가 추천해준 와인과 요리를 먹으며 마지막 여정지인 스페인에서 자유를 즐겼다.
귀국길에 스페인 공항에서도 다양한 와인을 저렴하게 판매하고 있지만 개인당 두병까지만 가능한 데서 두병을 구입했지만 어떻게 열병 정도 구입한 교육생도 있었다. 무게도 상당하거니와 나중에 한국에 와서 아파트 엘리베이터가 고장 나서 캐리어 끌고 올라가다 와인병 와장창 깬 사람도 있다 하여 지금 와 생각하면 와인은 현지에서 즐기는 게 최고다.
2019년 9월 스페인의 아침은 빨리 시작된다. 스페인에서 아침 조식을 마치고 호텔 앞에서 보니 이런 풍경이다. 가우디가 설계한 구엘공원 내 카페에서 스페인의 유명한 '샹그릴라'를 주문해 마셨다. 나른하고 행복한 기분을 주기에 너무도 충분했다.
이젠 언젠가 '노르웨이'를 여행해 보기를 강렬하게 희망하고 있다. 언제나 내가 갈망하는 데로 나의 버킷리스트는 이루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