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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지현 Mar 28. 2020

빨간 구두 (2)

성장 치유 에세이

● 전 편에서 이어지는 글입니다.


그것은 변명의 여지없는 도둑질이었다. 아홉 살의 아이들은 남의 물건을 훔친다는 것이 무서운 범죄에 해당되며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것까지는 모를 수 있어도, 누군가의 물건을 몰래 가져오는 일이 '나쁜 짓'이라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어른이건 아이건 생심(生心)을 내면 판단은 흐려지고 생각은 굳어진다. 미숙한 아이일수록 더더욱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만.


심심함이 뚝뚝 떨어지던 어느 날 낮, 아이는 여기저기 놀거리를 찾아 기웃거리다, 문득 옥상에서 놀까 하고 생각했다. 옥상에는 시멘트 바닥에 기둥을 박고 연결해 놓은 빨랫줄이 넉넉하게 있었는데 그 집에 사는 사람들은 1층 사람이건 2층 사람이건 모두 옥상에 빨래를 널었다. 평소 아이도 빨래 바구니를 든 엄마를 따라 곧잘 옥상에 올라가곤 했다. 엄마가 빨래를 너는 동안 아이는 한편에 놓인 바퀴 달린 말을 타기도 하고, 줄넘기를 하기도 하고, 빨랫줄 기둥에 고무줄을 묶어 고무줄놀이를 하기도 했었기에 옥상은 아이에게는 또 다른 놀이터다. 그날도 심심했고, 놀거리를 찾던 아이는 자연스럽게 옥상으로 향했다.


하지만 문제는 2층 주인집 현관을 지나던 아이의 눈에 빨간 구두가 들어왔다는 것이다. 평소 같았다면, 현관문 안 집안에 놓여 있어야 할 빨간 구두가 그 날은 문 밖 옥상으로 가는 길목 한편에 놓여 있었다. 만약, 그 순간에 그 빨간 구두를 보지 않았다면 1층 작은 아이는 애초에 마음먹었던 대로 조용히 2층 집 문 앞을 지나 옥상으로 올라갔을까.

언젠가 찢어진 적이 있었던 건지, 꿰맨 흉터까지 있는 얼굴을 하고서 가지런히 놓여 있는 빨간 구두를 아이는 옥상으로 가려던 마음도 잊고 한 참을 내려다보았다.  


얼마 후, 빨간 구두는 아래층 뒤편 마당 부뚜막 옆 벽돌 뒤에 놓였다.  그냥, 정말 그냥이었고, 정말 한 순간이었다. 구두가 눈에 들어왔고, 이제는 너무 새것이어서 만질 엄두가 나지 않을 정도도 아니었고, 찢어진 흔적에다 밖에 나와 있는 2층 애의 구두는 누가 고물을 하겠다고 가져가도 이상할 것이 없어 보였고, 그럴 거면 자기가 가져도 될 것 같다는 어렴풋한 생각 정도 어린 마음에 한 것 같기도 하다.

뒷일은 안중에 없었다. 아니 다음에 벌어질 일에 대해 생각하고 말고 할 수 있을 만큼 약은 마음을 가질 나이도 되지 않았다. 그냥 눈에 보이는 그 구두를 가져도 될 것 같은 마음만 들었다. 그리고는 1층으로 내려와 부엌 뒷곁에 쌓여 있던 몇 장의 벽돌 사이에 구두를 숨겼던 것이 전부다.


하지만, 이것은 완전 범죄일 수 없었다. 아홉 살은 부모가 모르는 물건을 따로 가질 수 있는 독립적 능력이 없으며, 부모를 완벽하게 속일 만큼 감쪽같은 거짓말을 할 수 있는 나이도 아니기 때문이다. 언제 들키느냐는 시간문제였을 뿐이다.


리고 그 시간은 24시간을 넘기지 못했던 것 같다. 어찌어찌 아주머니가 엄마를 찾아왔고, 엄마는 아이를 쳐다보며 무어라 말을 했던 것 같고, 아이는 그냥 부엌 뒤 뒤꼍 부뚜막 옆으로 걸어가 벽돌 쪽을 손으로 가리켰던 것 같고, 엄마와 2층 아주머니가 얼마간의 이야기를 나눈 뒤, 아주머니는 빨간 구두를 들고 돌아갔던 것 같다.


그토록 갖고 싶었던 빨간 구두였는데, 두 계절이 지나도록 애를 태우던 신발이었는데, 그 구두가 눈 앞에서 사라지는 순간에 아이는 자기 거라고 우기거나, 내가 한 것이 아니라고 변명을 하거나, 주기 싫다고 고집을 부리거나 그 어떤 행동도 하지 않았다. 그저 땅만 바라보며 가만히 가만히 있었다. 멍멍한 기분으로 아이는 그렇게 홀로 남겨졌고 잠시 원했던 것을 가졌다 생각했던, 설레고 행복한 시간들은 부서졌다.


엄마는 왜 그랬냐고 묻지 않았다. 혼을 내지도 않았다. 저녁밥을 짓다 2층 아주머니의 방문으로 뒤꼍으로 나왔던 엄마는 처음부터 그런 일 따위는 없었던 것처럼 다시 부엌으로 돌아가 밥을 짓고, 하던 일을 했다. 아이의 기억으로 이후 단 한 번도 그 일에 대해 엄마는 이야기하지 않았다.


다만, 그때 할머니가 이런 말을 했던가.


망할 여편네, 다 찢어진 거 그냥 갖다 버릴 것이지, 거기다 둬서, 애 기를 죽이노.

마, 이자 뿌리라. 괘안타, 마.




시간이 지난 지금도 나는 또각또각 구두를 좋아한다. 허리 건강이 나빠져 이제는 구두를 즐겨 신지 않지만, 신발장에는 아직도 십 수 켤레의 구두가 나란히 발맞추고 들어앉아 있다. 그때 그 구두를 생각하면 꿈을 꾼 듯 희미한 단편적인 장면만이 기억난다. 부뚜막 옆 벽돌, 빨간 구두와 빨간 구두를 든 2층 아주머니의 손, 엄마의 놀란듯한 얼굴, 그리고 돌아서 가던 엄마와 아줌마의 뒷모습, 그리고 남겨진 나.


나는 그때 그 빨강 구두가 왜 그렇게 갖고 싶었던 걸까. 오래도록 잊고 살던 기억이 어느 날 찾아온 이유는 무엇일까. 애처롭게 표정 없이 서 있던 아이는 이제 괜찮아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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