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투자에 국회 동의 필요한가?
한국과 미국은 관세를 15%로 낮추는 대신에 한국이 미국에 3500억 달러를 투자키로 합의했으나, 투자 방식과 이익 배분 등에서 이견을 보여 후속 협상이 난항을 겪고 있다.
2025년 9월 16일 김민석 국무총리는 대미 투자 3500억 달러(약 486조 원) 관련한 미국과 세부 협상을 두고 “최종 협상이 진행되고 결론이 나는 시점에 국회 동의가 필요할 수 있다”라고 밝혔다. 정부는 이런 점을 미국과 협상에서 전달했다고 한다. 김 총리는 국회 외교·통일·안보 대정부질문에서 배준영 국민의힘 의원이 ‘대미 3500억 달러 투자에 국회 비준 동의가 필요하다고 보는가’라는 물음에 “일률적으로 말씀드리긴 어렵다”라면서도 위와 같이 답했다. (내용은 경향신문, 2025. 9. 16. <https://www.khan.co.kr/article/202509161703001>).
조현 외교부 장관도 “국민에 부담을 지우는 내용이면 국회에 설명하고 동의를 구해야 한다는 게 정부의 입장”이라며 “이 점을 미국 측에도 분명히 얘기했다”라고 말했다. 조 장관은 2025년 8월 25일 한·미 정상회담에서 관세 및 대미 투자 합의를 문서화하지 않은 이유를 두고 “우리 경제에 상당히 큰 주름살이 될 수 있는 걱정스러운 내용이 들어 있었다”라며 “시간이 걸리더라도 국익을 지키고 한·미관계를 잘 이끌어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헌법 제60조 제1항은 “상호원조 또는 안전보장에 관한 조약, 중요한 국제조직에 관한 조약, 우호통상항해조약, 주권의 제약에 관한 조약, 강화조약, 국가나 국민에게 중대한 재정적 부담을 지우는 조약 또는 입법사항에 관한 조약의 체결․비준에 대한” 국회의 동의권을 규정하고 있다. 미국에 3500억 달러를 투자하는 문제는 국가나 국민에게 중대한 재정적 부담을 지우는 조약이라고 볼 수 있다.
헌법에서 말하는 조약은 체약국을 구속하는 국가 사이의 문서에 의한 합의를 말한다. 국제법에서 조약은 ‘국제법 관계를 설정하기 위한 국제법 주체 간의 문서에 의한 합의’를 말한다(조약법에 관한 비엔나 협약 제2조 제1항 ⒜). 헌법재판소는 조약을 ‘국가․국제기구 등 국제법 주체 사이에 권리의무관계를 창출하기 위하여 서면 형식으로 체결되고 국제법에 의하여 규율되는 합의’로 정의했다(헌재 2008. 3. 27. 2006헌라4).
문서로 합의하지 않은 구두 합의는 조약은 아니다. 다만, 대통령의 모든 국법상 행위는 문서로써 해야 하므로(헌법 제82조), 투자 문제는 필연적으로 조약이 될 수밖에 없다. 대통령이 조약에 대해 가지는 권한은 국회의 동의 없이는 성립할 수 없다. 즉 대통령이 조약의 체결․비준을 주도하더라도 대통령의 조약 관련 행위는 국회의 동의가 있어야 법적 효력이 발생한다.
대통령은 조약을 체결·비준하는 권한을 가지는데(헌법 제73조), 국회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회가 동의를 거부하면 그 조약은 조약으로 성립될 수 없다.
헌법적 의의는 첫째, 조약은 국민의 권리․의무와 국가재정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국내법과 동일한 효력을 가지므로, 이에 관한 국민적 합의를 형성하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국회의 비준동의권은 조약의 국내법에의 수용에 대한 동의권”(권영성)으로서 국회 입법권의 영역에 속한다.
둘째, 대통령의 자의적인 대외적 대표권 행사를 민주적으로 통제하려는 것이다. 대통령의 대외적 권한은 국내 영향력을 수반하기 때문에 국회는 조약이 입법의 영역에 속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통제 권한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
셋째, 조약의 위헌 여부에 대한 사전심사의 의미가 포함된다(전광석). 헌법재판소의 사후 심사와 위헌 결정은 말 그대로 사후약방문이 될 수밖에 없고, 위헌 결정의 경우 대외적 신뢰 훼손이라는 점에서 국익에 반하므로 국회의 사전심사가 매우 중요할 수밖에 없다.
미국 투자가 일회적이어서 조약 여부가 논란이 될 수 있다. 헌법 제58조에 따르면, 정부가 국채를 모집하거나 예산 외에 국가의 부담이 될 계약을 체결하려 할 때 미리 국회의 의결을 얻어야 한다. 정부의 개별적․구체적 행위에 대한 국회 통제권의 하나다.
헌법의 권력분립은 견제와 균형의 의미와 함께 국가기관의 협력 의미 또한 담고 있다. 조약의 체결․비준은 대통령의 독점적인 전속적 권한이 아니라 국회의 동의권과 대등하게 결합함으로써 완성되는 권한이다. 조약의 체결 과정은 체결 계획의 수립에서부터 국회가 충분히 숙고할 수 있도록 법률 제정 절차에 준하여 이루어져야 한다. 체결 계획의 수립과 전권대사의 임명 그리고 협상 과정의 개시는 조약 입법에 대한 정부의 발의권 행사에 준하는 것이며, 국회의 위원회 심의는 협상과정 전반에 걸쳐 협상 결과 조약 문안을 완성할 때까지 이루어진다.
국회의 심의 밀도는 조약의 중요성에 비추어 국회가 판단하되, 정부의 의견을 존중해야 한다. 다만 조약안이 확정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조약에 대한 동의안은 조약 문안 완성 후 서명 전에 비로소 제출될 수 있다. 법률 제정 절차와 달리 국회가 독점적 수정 권한을 가지고 있지 않을 뿐 아니라 국회의 수정의결도 가능하지 않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조약안에 대한 국회의 심의는 조약 문안 확정 전에 개시되어야 한다. 그것은 국회 동의를 얻지 못하는 경우를 방지하기 위해서 정부에게 헌법적으로 요청되는 대국회 협력의무로부터 도출된다. 국가기관의 기능적 적합성을 고려할 때 조약에 대한 국회의 동의권은 한 번의 가부 결정으로 판가름하는 ‘모 아니면 도’ 식의 정부와 국회의 힘겨루기 한판이 아니라 국가 작용의 통일성을 향한 견제와 균형 그리고 조화의 헌법적 장치다.
한국 헌정사에서 조약에 대한 국회의 동의권은 유명무실했다. 국회가 동의하지 않은 적이 없다. 정부의 국회 동의 요청도 자의적이었다. 정부 내부 과정에서는 법제처가 조약안 심사를 하고, 그것을 외교부에 의견을 제시하는 관행이 형성되어 있다(도경옥). ‘시행령 정치’라는 말에서 알 수 있을 정도로 정부는 국회의 민주적 통제를 회피하기 위한 우회로를 활용함으로써 법치주의의 근간을 흔들었다.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문제의 경우 한․일 외교부 장관의 공동 기자회견을 통해 ‘주요 합의 내용’을 발표하는 방식으로 조약으로서의 법적 효력을 회피하면서 실질적으로는 국민의 권익에 영향을 미치는 ‘국가 간 합의’를 행했다(조시현).
조약이 입법사항을 담고 있지만 동일 내용이 법률에 근거를 두고 있는 경우 별도의 국회 동의를 구하지 않았다. 조약 체결 추진 과정에서 관련 법률 제․개정을 함으로써 국회 동의 절차를 회피한 적도 있다(도경옥). 그것이 절차적 반복이어서 조약의 체결․지분 절차만 지연시켜 국제적 활동에 불합리한 제약을 가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이해하면 국회가 인사청문제도를 통해 대통령의 임명 행위에 관여하는 것이야말로 비효율적인 일이다. 여타 국회의 국정 통제 기능 또한 마찬가지다. 현재의 조약 관련 관행은 헌법이 명시하고 있는 국회의 동의권을 유명무실하게 하는 점에서 심각한 헌법위반이다.
조약을 둘러싼 헌법 문제는 ‘제왕적 대통령제’를 벗어나는 길 중 하나다. 대통령과 국회의 견제와 균형 그리고 공화 관계를 형성해야 하는 과제다. 그동안 군사․외교․통상 등의 영역에서 제왕적 대통령제의 행태가 두드러졌다면, 이제는 상대적으로 국민의 대표기관으로서 국회 역할이 중요하다. 국회 또한 대통령 견제와 함께 무엇이 국익에 부합하는지 국민에게 합리적 근거를 제시할 책무가 있다.
국민주권 정부를 표방한 이재명 정부가 외교 문제를 중심으로 헌법에 충실하면서 국익에 부합하는 길을 찾아나가길 바란다.
* 이미지 라이선스: 2023년 7월 20일. 한국 서울의 여의도에 있는 국회의사당 건물과 분수대, 제작자 Yido, 치수 5326 x 3329px, 파일 유형 JPEG, 범주 건물, 건축, 제한 사항 에디토리얼 전용, 크레디트 라인 Yido – stock.adobe.com, 라이선스 유형 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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