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헌법은 1948년 7월 17일 제정되었다. 미군정은 1945년부터니까 제헌헌법이 제정되기 이전이다. 미군정의 포고령이 법적으로 문제가 있다면, 1948년 헌법을 적용할 수 있을까?
창원지법 마산지원 형사 1부(재판장 한지형 부장판사)는 미군정 포고령 위반 혐의로 징역 1년을 선고받았던 고(故) 강모 씨의 재심 신청에 대해 2025년 9월 3일 재심 개시 결정을 내렸다. (이에 관한 보도는 뉴스1, 2025. 9. 18. <https://www.news1.kr/society/court-prosecution/5915641> 참조)
강 씨는 1948년 2월 미군정이 식량 통제를 위해 시행했던 양곡 공출 및 수매 제도인 ‘하곡수집’(夏穀收集)에 반대했다.
하곡수매 제도는 정부나 공공단체가 양곡 확보와 가격조절을 위하여 농민들에게 직접 하곡을 수매하는 제도다. 해방 후 미군정 당국은 일제의 전시 통제경제 하의 가격체계를 자유시장화 정책을 시행했는데, 이것은 생산의 뒷받침 없는 수요를 확대함으로써 물가의 등귀를 초래했다. 미군정 당국은 미가(쌀값) 통제 기준을 마련하여 1946년 1월에 식량 수급을 통제하고, 그해 5월에는 중앙식량행정처를 설치하여 본격적인 양곡 통제를 시작했다.
강 씨는 하곡 수집에 반대한 면장 등을 체포·호송하던 경찰관들을 습격하고 소요를 일으킨 혐의로 징역 1년을 선고받고 옥살이를 했다.
더글라스 맥아더 장군 명의로 발령한 미군정 포고령 2호는 ‘포고·명령·지시를 범한 자, 미국인과 기타 연합국인의 인명 또는 소유물 또는 보안을 해한 자, 공중 치안, 질서를 교란한 자 등은 점령군 군율회의에서 유죄로 결정한 후 사형 또는 타 형벌에 처한다’라는 내용이다. 강 씨 유족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에 조사를 신청했으나 기각당했고, 법원에 바로 재심 개시 신청을 했다. 검사는 재판에서 “강 씨에 대한 판결은 헌법이 제정되기 전에 이뤄졌기 때문에 위헌 여부를 판단할 수 없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법원은 헌법 제정 전이라도 헌법의 보편적 원칙을 적용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1948년 대한민국 헌법이 공포되기 전의 우리나라에 성문헌법 형태의 헌법이 없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현실적으로는 이런 때에도 법률 이하의 하위 규범이나 관습법 등을 토대로 한 법질서는 형성되고 유지될 수 있다”라고 했다.
“형식적 의미의 헌법이 없더라도 가장 높은 단계에서 법의 정당성을 판단하는 기준을 찾을 수 있다면 이것에 헌법의 효력이 있다거나 형식적 의미의 헌법에 준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1944년 대한민국 임시헌장에서는 법률에 의하지 않은 신체수색․체포․감금․심문․처벌을 받지 않을 권리를 명시해 죄형법정주의를 천명했고, 이는 제헌헌법에도 그대로 반영됐다”며 “임시헌장의 죄형법정주의는 제헌헌법의 기초가 됐다고 할 수 있고, 따라서 이를 기준 삼아 당시 법질서의 헌법적 정당성에 대해 판단할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재판부는 만약 포고령 죄형법정주의를 위반하는 것이 명백함에도 이를 바로잡지 않는다면 헌법이 정하고 있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훼손하는 것이고 기본적 인권을 보장해야 할 국가의 의무를 저버리는 것이라고 판시했다. 포고령 2호가 지나치게 광범위하고 포괄적·추상적이기 때문에 죄형법정주의에 위반된다며 재심 개시를 결정했다.
헌법재판소는 미군정 법령이 오늘날 법률로 제정되어야 할 입법사항을 규율하고 있어 법률로서 효력을 가진다고 볼 수 있고 제헌헌법 제100조(현행법령은 이 헌법에 저촉되지 아니하는 한 효력을 가진다.)에 따라 대한민국 헌법 질서 안으로 편입되었다고 해석한다( 헌법재판소 2021. 1. 28. 선고 2018헌바88 결정).
헌법재판소의 해석에 반대하는 견해도 있다(https://www.lawtimes.co.kr/news/167881). 논거는 첫째, 미군정 법령의 제정 자체는 미국의 주권에 기한 것이어서(헌재 2017. 5. 25. 선고 2016헌바388 결정 참조) 한국의 법원이나 헌법재판소가 대한민국 헌법에 비추어 군정법령을 위헌이라고 한다면 미국의 주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본다.
둘째, 현행 헌법 시행 전에 제정되었고 그 적용도 그 이전에 완료된 법률의 위헌 여부를 판단하는 경우 원칙적으로 그 제정 또는 적용 당시의 헌법이 위헌 여부 판단의 기준이 되어야 하고 그 후의 현행 헌법이 기준이 될 수는 없다고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 당시에는 합헌이었던 것이 현행 헌법 시행 후에 소급해서 위헌이 되어 법적 안정성을 크게 해친다는 것이다. 물론 예외를 인정하여 대한민국 헌법을 적용할 수 있지만, 매우 제한적으로 본다.
미군정의 지배를 정당하다고 볼 수 없다. 법적 근거가 없다. 한국은 패전국이 아니었다. 패전국 일본에 항거하여 ‘독립 전쟁’을 벌였다. 미국 또는 소련의 전리품이 절대 아니다. 미군정의 실시는 미국의 주권 행사가 아니라 한국민의 주권을 침해한 것이다. 일본의 불법 점령 못지않게 미국의 점령 또한 이행기 정의의 대상이다. 이행기 정의의 준거 규범은 현행 헌법이다. 헌법재판소도 긴급조치의 위헌 여부 심사 기준이 유신 헌법이 아니라 현행 헌법임을 확인했다 [헌재 2013. 3. 21. 2010헌바70, 132, 172(병합)].
헌법재판소가 현행 헌법이 준거 규범이어야 한다고 본 사안은 ① 기본권을 지나치게 침해하고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를 훼손한 것에 대한 반성, ② 헌법해석을 통해 헌법이 내포하고 있는 특정한 가치의 탐색·확인, ③ 국민의 기본권 강화·확대 등 헌법 가치의 규범적 관철이다.
현행 헌법에 따라 미군정 법령을 판단하는 일이 헌법에 따른 정의의 실현이다. 우리가 늘 새겨야 할 헌법 제10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현행 헌법의 소급 적용이 중대하고 명백한 부정의가 아니라면 현행 헌법을 적용해야 한다. 관련 사안의 수가 적지 않다면 입법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일괄 재심을 개시하거나 특별한 사유가 없다면 무죄로 하되 배상 또는 보상은 제한한다면 법적 안정성을 크게 해치지 않을 것이다.
이번 법원의 판결도 현행 헌법에 따르지 않은 점에서는 아쉽다. 역사에 가정이 없고 역사를 바꿀 수 없으며 시간을 되돌릴 수 없지만, 헌법 규범의 정의는 다시 정립할 수 있다. 이행기 정의 문제는 과거로 회귀하는 게 아니라 현재를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혁신하여 미래를 정의롭게 정립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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