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0월 8일 수요일 처음으로 ‘부토’ 공연을 봤습니다.
‘부토’라는 춤 장르에 대해 처음 들은 것은 영화 <이름 없는 춤>에서 입니다. 이 영화는 일본의 배우이자 무용가인 ‘다나카 민’(たなかみん, 田中泯, Tanaka Min)을 담아낸 다큐멘터리 영화입니다. 다나카 민은 영화 <국보>에도 ‘오노가와 만키쿠’(小野川万菊) 역으로 나옵니다. 당대 제일의 ‘온나가타’(女形, 가부키에서 여성 역할을 하는 남성 배우)이자 인간 국보인 가부키 배우로 나왔죠. 영화 <황혼의 사무라이>에서 연기가 인상적이었고, <메종 드 히미코>에서도 그랬습니다.
제가 관람한 프로그램은 ‘부토 나이트’(舞踏ナイト~ Butoh Night 2 DAYS) 이튿날째 공연이었습니다.
장소는 라이브 공연장 ‘교토 UrBANGUILD’인데요. 바(bar)가 있어서 생맥주 마시면 관람했습니다. 티켓에 한 잔의 음료권이 포함되어 있었고요.
공연은 세 무용수의 무대였는데요.
첫 번째 공연은 메구로 료코(目黒涼子, Ryoko Meguro, 1991~)였습니다. 다소 높고 좁은 사각의 나무 의자 위에서 상당 시간 연기를 했습니다.
초반에 다리에 잔뜩 힘을 주어 근육의 긴장감을 보여주는 장면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메구로 료코의 공식 웹사이트는 <https://ryokomeguro.studio.site/>입니다.
인스타그램 계정은 <https://www.instagram.com/ryoko__r/>네요.
두 번째 공연의 무용수는 무라카미 리코(村上璃子, MURAKAMI Riko)였습니다. 고치처럼 붉은 실에 쌓인 모습에서 시작하는 장면이 강렬했습니다. 마지막엔 가부키의 전통적인 등․퇴장로인 하나미치(花道)를 연상케 하듯 객석 통로를 통해 퇴장했습니다.
인스타그램 계정은 <https://www.instagram.com/kami_kami1992/>네요.
마지막 세 번째 공연자는 이마 텐코(今貂子, Ima Tenko)였습니다. 2019년에 환갑 기념 공연 「어둠의 윤기(闇の艶)」(폰토초 가부렌조)를 했다고 하니 나이가 예순여섯 정도겠네요. 훈도시(褌)를 연상케 하는 하의 의상만 착용한 채 공연을 해서 몸 자체만으로도 경륜과 연륜을 드러냈습니다. 소리 없이 크게 입을 벌려 웃는 모습이 괴기하면서도 세상을 달관한 듯하면서도 천진난만한 표정이었습니다. 해탈하면 잔잔한 미소라고 생각했는데, 깨달음을 얻은 이의 표정이 저런 게 아닐까 하고 생각할 정도로 함박웃음이었습니다. 딱 한 번 크게 소리를 내서 그게 깨달음을 얻은 희열의 소리라고 생각했습니다. 마지막은 경쾌한 음악에 맞춰 객석으로 내려와 한바탕 춤추고 나서 무대를 마무리했습니다.
이마 텐코는 이마 텐코 무용연구소와 무용컴퍼니 이라좌(倚羅座) 대표입니다.
무용컴퍼니 웹사이트는 <https://imakiraza.wixsite.com/kirabutoh>입니다.
이마 텐코의 인스타그램 계정은 <https://www.instagram.com/tenkoima/>네요.
부토 관련 논문을 검색해서 제일 먼저 발견한 것이 아래 ‘어진’이라는 분의 논문이었습니다.
(어진, “일본 춤(舞踏) 속 육체의 의미: 스피노자의 심신일원론을 중심으로”, 「예술교육연구」, 제21권 제1호, 한국예술교육학회, 2023, 115-128쪽: <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 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2946589>, 2025. 10. 9. 검색)
제게는 11월에 발표 준비 중인 글과 관련해서도 의미 있는 논문이었습니다. 서구의 근대헌법학의 한계를 비판함으로써 우리에게 필요한 헌법적 논의를 풀어가려 하거든요. 여기서는 부토에 관한 내용을 소개하지만, 논문 관련해서는 스피노자 내용이 주요 관심사입니다. 저의 ‘한량무랑’은 부토와 스피노자를 연결하는 지점이기도 하고요.
제 나름대로 정리를 했습니다.
부토(舞踏, Butho)는 1960년대 일본에서 발생한 춤의 한 형태이자 예술 현상입니다. ‘춤추다’의 ‘부’(舞)와 ‘발을 디디다, 발을 구르다’라는 의미의 ‘토’(踏)가 결합한 단어입니다. 원래는 메이지 시대 일본에서 유행하던 서양식 볼룸댄스를 가리키는 단어였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한 일본은 권위에 순응하는 인습과 전통에서 탈피하고자 예술 분야에서 실험적인 활동이 본격화했습니다. 부토 이전의 일본 현대 무용은 독일의 표현주의 마리 뷔그만((Mary Wigman, 1886 ~ 1973)과 미국의 마사 그레이엄(Martha Graham, 1894 ~ 1991)의 영향을 받았는데요. 당시 일본 현대무용은 서구식 무용을 기능적으로 수용하는 데만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반성적 의미에서 춤은 내용과 형식의 상호작용에 따라 이뤄져야 한다는 인식이 생겨났습니다.
부토에서 인간의 신체를 표현의 직접적인 도구로 사용하는 ‘퍼포먼스’ 형태의 예술이 시작되었는데요. 부토는 일본 전통춤인 ‘노(能)’나 ‘가부키(歌舞伎)’의 특징에서 탈피하여 현대예술이 가진 신체 중심의 표현 기법을 중시했습니다. 일본인의 신체에 내재한 원형의 독특한 몸동작을 표현합니다. 일본인의 짧은 팔, 다리와 흰 다리, 작은 키 등은 서구의 발레를 표현하기 어려웠거든요.
부토의 창시자는 히치가타 다츠미(土方巽, 1928-1986)인데요. 그의 부토 개념은 ‘암흑’에 있다고 합니다. 부토의 원래 이름은 ‘안코꾸 부토’(暗黒舞踏, あんこくぶとう)입니다. 배경에는 나약한 사람들, 죽은 사람과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의미가 있습니다. 삭발과 흰색 칠, 태아의 웅크린 자세, 느린 움직임과 손발의 뒤틀림 등의 특징이 있습니다. 히치가타는 목숨을 걸고 일어선 사체’라고 표현했습니다. 이 말은 부토가 육체를 철저히 탐색함을 근본으로 한다는 의미입니다.
부토의 근본은 인간의 몸입니다. 히치가타와 함께 부토를 오노 가즈오(大野一雄, 1906-2010)는 영혼과 육체를 하나로 생각하고 영혼을 생명의 뿌리로 보고 있습니다. 부토 평론가 이치가와 미야비는 “포스트모더니즘이 탈근대라면 부토는 전 근대로 환류이고 동양적인 심신일원론을 기반으로 한다”라고 말합니다. ‘육체는 단지 언어의 의미를 전달하는 수단이 아니라 고유한 시공간을 갖춘 것’으로 이해합니다.
제게 특히 다가왔던 공연은 이마 텐코의 무대였습니다. 죽음 가까이에 있는 늙은 몸이 보여주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아름다움이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형상은 달라지지만 각각의 순간에 몸이 얼마나 매력적인지 춤으로 보여줬습니다. 마지막 숨을 내쉬는 순간 움직임조차 춤이 되겠죠. 모든 사람에게 요. 모든 움직임이 각자의 매 순간 운율과 함께 만들어내는 춤이니까요. 이번 부토 공연이 저에게는, 곳곳을 다니며 한량무를 추는 ‘한량무랑’을 어떤 의미로 펼쳐가야 할지 방향을 생각하게 하는 공연이었습니다.
#교토유랑 #한량돈오 #한량무랑 #부토 #舞踏 #Buth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