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10. 5.(일) 에노우라 측후소를 떠나기 직전, <죽취담> 공연 3부가 끝난 직후
교토에 와서 첫 여행을 떠났습니다. 2025년 10월 4일(토)부터 6일(월)까지 2박 3일 일정이었는데요. 중간에 시즈오카에서 후지산을 보려고 차를 빌렸습니다. 렌터카 회사에서 정산할 때 보니 딱 천 킬로미터를 달렸어요.
에노우라 측후소(江之浦測候所, Enoura Observatory)라는 복합 문화공간에서 10월 5일(일)에 하는 <에노우라 죽취담(竹取潭)> 공연을 보기 위해서였습니다.
에노우라 측후소는 2018년 4월에 다녀온 적이 있는데요. 다시 한번 더 가고 싶었습니다.
2018. 4. 9. 사진
그때 설문지에 이메일 주소를 남겼더니 행사 있을 때마다 이메일을 보내줬습니다. 가보고 싶었지만, 학교 일정 등으로 어려웠습니다. 큰맘 먹고 계획을 세웠다가 접은 적도 있습니다.
에노우라 측후소의 설립자는 스기모토 히로시라는 유명한 사진작가입니다. 제게 인상 깊었던 작품은 안도 타다오의 <빛의 교회> 사진입니다. 에노우라 측후소는 스기모토 히로시의 사진 작품을 전시하지만, 작품 수가 많지 않습니다.
2018. 4. 9. 사진
이곳은 자연과 어우러진 공간에 문화적인 작품을 배치한 공간이고, 춘분이나 추분 또는 팔월 보름의 절기에 따라 하는 문화 행사가 매력적입니다.
사가미만(相模灣)이 보이는 풍경, 2018. 4. 9.
오다와라 문화재단 홈페이지에는 설립자 스기모토 히로시의 생각이 이렇게 서술되어 있습니다. (https://www.odawara-af.com/ko/enoura/, 검색일: 2025. 10. 3., 괄호에 한자나 간략한 설명을 추가했습니다.)
오다와라에 대한 생각
나는 오다와라(小田原)에 신세 진 게 많다. 어린 시절 옛 도카이도선(東海道線)을 달리는 쇼난((湘南) 전차에서 본 바다 풍경이 나의 첫 기억이기 때문이다. 아타미(熱海)[시(市)]에서 오다와라로 향하는 열차가 '안경 터널'*을 빠져나가자, 눈이 번쩍 뜨일 정도로 예리한 수평선을 품은 큰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내가 있다’라는 것을.
나는 역사상의 ‘만약’이 좋다. 덴쇼 18년(1590년)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의한 오다와라 낙성 후에 관동 이봉(移封, 명사 제후의 영지를 딴 곳으로 옮김)이 된 도쿠가와 (이에야쓰) 씨가 자신의 거점 성으로 선택해야 할 가장 유력한 후보는 당시 관동에서 가장 권세를 자랑하고 후조 씨(北条氏)의 본거지였던 오다와라였을 것이다.** 그러나 (도쿠가와, 德川) 이에야스(家康)는 당시 가난하고 쓸쓸한 마을이었던 에도 땅을 선택했다. 아마 이에야스는 허허벌판에서 새로운 도시계획을 실행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에야스에게도 이미 훌륭한 성이 있는 오다와라는 선택지로서 매력적이었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만약 오다와라를 선택했다면, 지금쯤은 오다와라가 도쿄가 되어 맨해튼이나 홍콩과 같은 고층 빌딩이 즐비한 대도시가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도쿄는 에도 시로서 에도만 안쪽에 그 이름을 남기는 정도였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에야스의 결단을 고맙게 생각한다. 오다와라가 도쿄가 되었다면, 지금까지 남아 있는 아름다운 자연은 파괴의 끝을 보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내 인생의 시작이 되는 그 바다의 기억도 없어져 버리기 때문이다.
나는 무언가에 이끌린 듯이 내 첫 기억의 장소를 부여받았다. 에노우라에 펼쳐진 광활한 감귤밭이다. 나는 이 땅에 오다와라 문화재단을 설립했다. 이 땅에서 세계를 향해 일본 문화의 정수를 전달하려고 계획하고 있다. 수도는 도쿄에 빼앗겼지만, 세계에 대한 일본 문화 발신의 수도로서 오다와라는 미래에 자리 잡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조몬 시대((縄文時代, じょうもんじだい, 일본의 신석기시대로서 기원전 146세기~기원전 10세기) 이래 면면히 이어져 온 일본 문화의 특질, 그것은 사람과 자연이 조화 속에서 살아가는 기술이기 때문이다. 자연 속에 800만 신을 모시면서 일본인들은 독특한 문화를 키워 왔다. 지금, 자연 파괴의 끝을 보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후기 자본주의의 가혹한 세계 속에서, 가장 요구되는 것이 그 일본 문화의 기술이다.
건축 콘셉트에서 인상적인 것은 ‘하늘’이라는 키워드였어요. (https://www.odawara-af.com/ko/enoura/, 검색일: 2025. 10. 3.)
유구한 옛날, 고대인들이 의식을 가지자마자 먼저 한 일은 한없이 넓은 하늘 속에 있는 자신의 자리를 확인하는 작업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아트(art)의 기원이기도 했다. 새로운 생명이 재생되는 동지, 중요한 반환점이 되는 하지, 통과점인 춘분과 추분. 하늘을 측후하는 일로 다시 한번 돌아가 보는 것, 그것에야말로 희미한 미래로 통하는 실마리가 열려 있는 것 같다.
표지 사진이 10월 5일 저녁에 촬영한 사진입니다. 하늘은 지구법학을 말한 토마스 베리가 말하는 ‘우주’라고 볼 수도 있을 듯해요. 그리고 신석기시대는 백남준 작가를 떠올리게도 했습니다. 너무 멀다고 볼 수도 있지만, 기후 위기에 대한 대응과 적응을 성찰할 때 돌아가 봐야 할 기점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공연은 팔월 보름 전날에 열렸는데요. 일본의 헤이안 시대 귀족 사회에서는 중국에서 전해진 달맞이·망월(望月)의 풍습에 일본 독자적인 정취가 더해져서, 노래나 춤, 음악과 함께 달을 사랑하는 주연(酒宴)이 활발히 열렸다고 합니다. 일본 교수님 말로는 우리의 추석 때 달을 보면서 떡을 먹는다고 하네요.
공연 제목인 ‘죽취담’은 일본 최초의 고대 소설인 「竹取物語」(대나무 이야기)에서 가져왔습니다. 1부 공연이 대나무 숲에서 펼쳐진 연유인데요. 대나무 숲 앞에는 웅대한 사가미만을 바라볼 수 있어요. 매우 절제된 움직임으로 이뤄진 춤이었는데, 빽빽한 대나무 숲에 둘러싸인 공간이라 그런지 자연에 대한 경외감을 느끼게 했습니다.
출연자는 일본 무용가 하나야기 사치마이네(花柳幸舞音, Sachimaine Hanayagi)입니다.
花柳流(はなやぎりゅう, 하나요기류, 화류류) 사범으로 활동한다고 하는데요. 하나요기류는 일본의 대표적인 전통무용(日本舞踊, Nihon Buyō)의 유파(流派) 중 하나인데요. 가부키무용(歌舞伎舞踊)을 기반으로 한 일본 전통무용의 큰 학파라고 하네요.
하나야나기 슈난해(인간국보·문화공로자)에게 사사 헸습니다. 풍부한 표현력과 유연하고 섬세한 신체 표현과 테크닉을 겸비한 정평이 있는 무용가라고 평가하네요. 고전 무용의 연루와 함께 창작 무용의 작품 창작도 의욕적으로 활동하고 있고요. 오케스트라, 마이라쿠(萬歳楽, まいらく, 마이라쿠, 일본의 고대 의례 음악), 일본 북, 시노 피리(篠笛, しのぶえ, Shinobue, 가로로 부는 관악기) 연주자와의 즉흥 퍼포먼스 등 다른 장르와의 컬래버레이션도 많이 한다고 합니다. 최근에는 낭독 ×무용으로서 새로운 일본 무용의 표현을 내세워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듯합니다.
2부는 돌로 이뤄진 무대에서 공연이 있었습니다.
연주자는 세 명이었는데, 안내 책자에는 야마다 후미히코( Fumihiko Yamada)라는 아악사(雅楽師)만 소개되어 있습니다. 중요 무형 문화재 종합 인정 보유자라고 합니다. 아악(雅楽, ががく, 가가쿠)은 일본의 가장 오래된 전통 음악으로, 주로 나라(奈良)·헤이안(平安) 시대(7~9세기)에 중국(당악), 한국(백제·신라의 향악), 인도 등 외래 음악이 일본식으로 정착된 형태입니다. 세 사람은 관악기 두 개[피리 일종인 비리(篳篥, ひちりき)와 생황 같은 악기인 笙(しょう, 쇼우, shō)입니다.]와 현악기[샤미센인 줄 알았는데, 비파(琵琶, びわ, Biwa)라고 합니다.]
篳篥(히치리키)는 주선율(멜로디)을 담당하여 강하고 인성(人声) 같은 소리를 내고, 笙(쇼우)는 화음(和音)을 맡아 맑고 하늘(공기) 같은 소리를 내며, 비파는 리듬․강세․전환 파트를 맡아 둔탁하고 짧은소리(심장 박동 소리)를 낸다고 합니다.
3부 공연은 ‘광학 유리 무대’에서였습니다.
표지 사진의 무대죠. 3부 공연은 2부 돌 무대에서 광학 유리 무대로 무용수와 연주자가 이동한 다음 시작되는데요. 관객이 먼저 이동하고 무용수가 무대에 등장하기 전에 구름 사이에 가려져 있던 보름달이 나타났어요. 사람들은 공연보다 온통 달에 감탄하면서 분위기가 어수선했어요. 사람들 관심의 표현은 휴대폰을 들어 보름달을 촬영하는 것이었고요. 무용수를 생각하니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달은 곧 구름 뒤로 숨었는데요.
반전이 일어납니다. 무용수의 등장과 함께 보름달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어요. 사람들의 감탄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습니다. 저의 배우자는 달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다가 무용수가 등장한 것 아니냐는 의견이었지만, 어쨌든 절묘한 타이밍이었습니다.
자연과 어우러진 신비로운 공연이었습니다. 극장 무대 공연에서는 전적으로 무용수가 독점적인 주인공이지만, 자연을 무대로 한 공연에서는 춤추는 이가 자연 속에 스며드는 느낌이었습니다. 몸짓이 매우 절제되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녁 무렵 보름달이 배경이어서 더 그랬을 것 같습니다. 다른 배경이었다면 충분히 역동적이고 춤추는 이가 드러나는 공연도 있을 수 있겠습니다.
감동의 여운을 이어 느끼자니 술 한 잔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 여기에서 말하는 ‘안경 터널’의 공식 명칭은 ‘赤沢トンネル’(아카사와 터널, 赤沢隧道) 또는 ‘旧赤沢トンネル’랍니다. 터널의 해안 쪽 벽면은 기둥 구조인데, 그 벽면에 ‘창문처럼 구멍(개구부)’이 뚫려 있어서, 지역에서는 이 터널을 ‘めがねトンネル’(메가네 터널, 안경 터널)이라고 부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안경 터널’이라는 별칭은 구조적 특징, 즉 벽에 창문처럼 뚫린 구멍들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제야 의미를 알게 되었지만, 일본의 해변 도로나 철로에서 안경 터널을 적지 않게 봤습니다.
** 챗지피티에게 후조씨에 대해 물어보니 아래와 같은 그림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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