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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기로울 령 Nov 12. 2021

세대론을 믿는 사람들에게

많은 사람들이 젊은 사람을 마치 외계에서 온 듯이 보는 경향성이 있는 것 같다. 일종의 위협 인지일까? 자식을 잡아먹으려는 아버지가 결국 아들에게 죽임을 당하는 부성 살해 내러티브가 서양 고전에 자주 등장했던 이유와 맞닿아 있는 것은 아닐지.


나조차도 세대론이 허상임을 알고 있으면서도 20%는 왠지 맞을 것 같은 느낌이 들곤 한다. 인지 편향 일지 아니면 정말 20% 정도는 세대적 특성이 작용하는지 확인할 길은 없다. 하지만 적어도 세대론이 맞다고 90% 이상 확신하는 사람이 있다면 꼭 읽어보길 권하고 싶은 책이 있다.



민음사에서 나온 <한국 단편 문학선 1,2>이다. 근대화 시기의 소설들을 수능 공부를 위한 용도가 아닌 문학 작품으로 읽으니, 문학 그 자체로 다가왔다. 특히 역사 교과서에서만 막연하게 그렸던 당시 시대상을 권위자가 아닌, 그 시대를 민감하게 감각하고 있던 작가들의 관점으로 바라보니 새롭게 다가오는 부분이 많았다.


소설에는 다양한 인간상이 나온다. 이 인간상에 대한 묘사가 역사책에선 볼 수 없는 독특한 부분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소설 속 인간들을 아무리 뜯어보아도, 당시 시대적 맥락과 연결해 짚어본다고 해도, 그때 사람들이 지금 우리와 무엇이 크게 다른지 알 수 없었다.


오히려 너무 다르지 않아서 놀랐다. 특히 가장 놀라웠던 것은 일제 강점기 시대에 태어난 남성임에도 여성주의적인 감수성이 뛰어난 작가가 몇몇 보였다는 점이다. 김동인과 오영수 작가가 대표적이라고 보았다. 완벽히 현대적인 여성주의 감수성은 아닐지라도 당시 여성들의 사회적 위치에 대한 문제의식이 느껴졌다. 이들 말고 다른 작가들 역시 종종 물건처럼 팔려 다니는 여성들을 보며 문제의식을 느끼는 듯한 서술을 하는 경우가 여럿 있었다. 이를 보며 옛날 사람이라고 모두 사회 관습에 따라 무조건 여성을 인간 이하로 보는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았다. 마찬가지로 현재 여성주의를 이권 다툼으로 치부하는 이상한 사람들이 20대 남성의 전부는 아닐 것이라는 내 생각에 확신을 가지게 됐다.


인간은 세대라는 단일한 요소로 묶이기엔 너무 다양하다. 근데 만날 수 있는 사람이 한정적이어서 혹은 나쁜 기억에 사로 잡혀서 혹은 자꾸 이렇다 저렇다 하는 누군가의 큰 목소리에 따라 우리는 자꾸 잘못된 편견에 치우치는 마음이 커지는 것은 아닐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았던 작품은 선우휘의 <반역>이었다. 가장 (신선하게) 충격적이었던 부분은 소설 속 주인공이 독립운동을 하면서도 민족주의에 부정적 반응을 보인 부분이었다. 나는 단 한 번도 이렇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마찬가지로 같이 읽은 사람들도 주인공을 이해하기 어려워했다. 하지만 소설 속 인물을 그냥 '옛날 사람'이 아니라, '전체주의를 혐오하는 인간'으로 본다면, 그랬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는 별별 인간이 다 있으니까.


1990년 생이든, 1890년 생이든, 이들을 사회적 관계에 속박되면서도 자유롭고 싶은 ‘인간’으로 본다면 이해할 수 없는 마음이 어디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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