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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영수 Oct 27. 2022

개와 늑대의 시간

이맘때 나는 어두워가는 들판에서,


문득 뒤를 돌아보는 망아지처럼…


이성복의 시집을 뒤적거리다 익히 아는 풍경이 나와 반가운 마음에 블로그를 켰다.


어두워가는 들판은 내 원체험에 가까운 것이고, 나는 이 풍경을 내 마음 속이 아닌 다른 곳에서 마주칠 때마다 정확히 같은 곳에 선다. 해가 마지막으로 붉게 타오른 후 온 사방이 푸르게 잠길 때, 푸르게 잠긴 사방이 뭉텅이져 흐물거릴때, 소리는 부옇게 울리고 나 혼자만이 여기 서 있다는 생각이 들 때의 내가 서있던 곳으로 돌아간다.


이것은 '개와 늑대의 시간'이다. 들판 저쪽에 서있는 무언가가 개인지 늑대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시간, 일상의 부박함 속에서 뜻을 알 수 없는 섬뜩함이 와락 덮쳐오는 순간, 이유를 알 수 없는 울적함의 짙푸른 시간을 우리는 개와 늑대의 시간으로 부른다.


이 울적함의 이유를 찾기는 어려울 수도 있겠다. 왜냐하면 서러움은 늘 이유를 모르는 슬픔에서 오기 때문이다. 이유가 명확한 슬픔은 곧 분노로 변하지만 이유모를 근원적 슬픔은 사람을 끝없이 가라앉게 한다.


다만 이 시간이 울적함을 연상시키는 이유를 섵부르게나마 유추해보자면 깊은 바다의 짙푸름이 보여서 일지도, 사물들이 갑자기 낯설게 얼굴을 바꿔서일지도, 낮에서 밤으로 건너가는 경계의 시간이어서일지도 모르겠다.




칸예의 wolves에서는 개와 늑대의 시간이 보인다. 도입부의 '늑대 흉내'를 지나 넓은 공간이 느껴지는 서러운 멜로디에서 우리는 '어두워가는 들판에서' '문득 뒤를 돌아보는' 화자를 느낄 수 있다. 


이 지점에서 화자는 끝이 보이지 않는 물속으로 가라앉고 있다. 이유를 모르는 서러움을 가슴에 묻은 채 낯선 초원 한가운데에서, 자기만의 바다 속으로 깊이 가라앉고 있다.


그러나 칸예의 탁월함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그는 한가지의 방향으로만 노래를 구성하지 않는다. 1:39에서 그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초원의 맥락을 유지한 채로 노래의 방향을 정반대로 바꾼다. 이 지점에서 끝없이 가라앉던 화자는 어느새 상승하고 있고 초원에서는 이른 아침 동물들이 깨어나듯이 화해와 화합의 멜로디가 들린다. 낯설고 서럽게만 들렸던 늑대의 울음소리가 이제는 코끼리가 누군가를 호명하는 목소리로 들린다. 


예술이 아름다운 것과 섬뜩한 것으로 나뉜다고 하면 wolves는 명백히 섬뜩한 것이다. 칸예 창작의 원천은 이렇게 규범 바깥의, 구불구불하고 질척이는 곳에 위치해있다. 그런데 hurricane에서는 별안간 아름답게 신을 찬양한다. 도대체 이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칸예는 초기의

My Beautiful Dark Twisted Fantasy의 괴물적인(Track6.Monster) 모습을 지나-여기서의 괴물성은 의도적인 그로테스크, 즉 이불에서의 괴물과 유사하다-


Yeezus에서 신을 자처하는 시기를 지나(Track3. I Am a God)


갑자기 The Life of Pablo에서부터 본인의 앨범을 가스펠이라 부르기 시작한다. 그가 정말로 신에 귀의하게 된 것일지, 아니면 본인에게 신이 깃들었다고 여기는지는 알 수가 없다. 어찌 되었건 Wolves가 이 앨범에 수록된 것은 다소 이상한 일인데, 이 노래에서는 종교적인 단정함보다는 어떤 섬뜩함 내지는 디오니소스적인 광기가 느껴지기 때문이다. 


다음 앨범 ye에서는 다시 종교적인 색채가 옅어지고 야생성이 강조된다. 


첫 트랙인 I thought about killing you에서의 you는 정말로 타자일까? 멜랑콜리적 주체 특유의 자아분열적인 모습-칸예는 실제로 양극성 장애를 앓고 있다-이 이 앨범에서는 그로테스크라는 형식으로 보여진다. 서로 다른 이미지를 한 곳에 몰아넣는다는 그로테스크의 원 뜻을 생각할 때 자아분열적인 모습을 나타내려면 이보다 더 좋은 형식이 없었을 듯 하다. 또한 주체가 멜랑콜리한 정조를 가지고 있고 자아분열적이라는 측면에서 이 앨범은 통째로 디오니소스적인 앨범이다. 

초기의 My Beautiful Dark Twisted Fantasy에서 사람들을 놀래키기 위해 괴물적인 가면을 썼을 때와는 다르게, 그는 이 앨범에서 진정으로 규범의 세계에서 벗어나 바다 저 밑에서, 정글의 저 편에서 괴물 본연의 목소리를 들려준다. 앨범의 진행 과정만 보면  The life of pablo에서 가스펠을 자처하며 신에게 귀의하려는 시도가 실패로 돌아간듯한 모습이다. 

칸예는 매우 현재진행형인 인물이기 때문에 최근의 앨범을 하나의 경향으로 묶기는 조금 어려울 수 있으나 분명한 것은 2019년의 JESUS IS KING과 2021년의 Donda는 다시금 매우 종교적인 앨범이 되었다는 것이다.

Donda에 수록된 Hurricane은 이전의 혼란함과 광기를 모두 집어던지고 매끈하게 다듬어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바그너의 신들의 발할라 입성이 떠오르는 이 노래에서는 디오니소스적인 광기, 침잠하는 우울성, 그로테스크함이 모두 배제된 말끔한 아폴론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 노래는 내려가는 방향이 아예 없이 올라가기만, 고양되기만 하는 노래이다. 클래식의 순수함이 떠오르는 이 노래는 종교가 그러하듯이 하나의 결만 가진다.

wolves에서의 풍부함과 대비되어 조금 아쉽긴 하지만 그로 인해 칸예가 잠시나마 평화를 얻었다면 좋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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