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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영수 Aug 18. 2022

고독한 조각

조각이 커지면 건축이 된다


이사무 노구치 <고독>1962청동, 검정색 파티나193*30.5*30.5 cm리움미술관 소장

우리는 형태에 집중하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스케일이다.


“왜 개는 코끼리처럼 크지 않지?”

“개가 코끼리처럼 크면 코끼리가 되니까”


조각이 충분히 커지면 그것은 조각이 아닌 건축이 된다. 그렇다면 그 둘을 나누는 크기의 경계선은 무엇일까? 조각은 아날로그 세계에 자리잡고 있기에 어느 특정한 크기를 넘는 순간 갑작스레 건축의 지위를 획득한다거나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건축과 조각을 구분짓는 것에 있어서 하나 참조할 수 있는 지표는 있다. 그것은 인간의 크기이다. 어떤 형상이 인간보다 충분히 커 인간을 감쌀 정도가 되면 그것은 건축이 된다. 반면 형상이 인간보다 충분히 작아 손으로 움직일 수가 있으면 그것은 공예품이 된다. 조각은 그 사이의 애매한 경계선에 자리잡아 있다. 조각은 늘 인간의 크기를 의식하며, 인간의 크기에 준거하여 만들어진다. 조각은 이렇듯 인간과 유사한 크기를 갖고 있기에 특정한 효과를 불러일으킨다. 그것은 인간을 거울처럼 비추어내는 것이다.


이사무 노구치의 <고독>을 마주하면 묵직하게 내려앉는 감정을 느낄 수 있다. <고독>은 끝이 뭉툭하고 길다랗다. 형상의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마치 관통하듯이 묵직하게 내려앉는 모양새에서는 고독이라는 주제어가 분명하게 전해진다. 고독은 날카롭게 벼려진 아픔이 아니기에, 그것은 있는지도 모른 채 몸 안에서 도사리고 있다가 인지하는 어떤 순간에 묵직하게 다가오는 감정이기에 ‘청동으로’ ‘뭉툭한 끝을 가지고’ ‘길다랗게’ 만들어져야만 한다.

그러나 이 조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재료도 그 형태도 아닌 조각의 정확한 크기이다. 조각이 사람의 스케일과 일치하기에 조각 앞에 서면 자연스레 자신의 일부가 투영된 듯, 감정이 형상화된 듯 기이한 감각을 느끼게 된다.

이 감정의 형상이 지나치게 컸다면? 그것은 관람객을 잡고 마구 휘둘렀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대상과의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기가 어려워진다. 크기가 점차 커질수록 압도감과 감정의 정도가 강해진다. 그러다 대상과의 거리를 인지하기 힘들어지는 시점이 되면 그것은 작품이 지나치게 커져 스케일을 인지하기 힘들어진 시점이 된 것이다. 그것이 작품이 건축으로 거듭난 시점, 대상이 경험으로 거듭난 시점이다.

이불, <태양의 도시 II>, 2014폴리카보네이트, 아크릴 거울, LED 조명, 전선, 330 x 3325 x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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