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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영수 Oct 27. 2022

군대를 다녀오니 피부가 얼룩덜룩해졌다

새하얀 우리 앞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웅덩이가 놓여 있었고, 뒤로 돌아가는 길은 없었다.

앞에 놓인 웅덩이에 잠시만 들어갔다 오면 사회인으로, 성인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말에 다들 텀벙텀벙 물에 빠졌었다. 낯설고 무서운 것, 이를테면 물웅덩이 같은 축축한 것은 바짓단에 묻지 않게 돌아가는 것이 상책이지만 피해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면 차라리 머리까지 푹 잠기는 편이 낫다.

시간이 지나 약속한 확인서를 받아들고 웅덩이에서 나왔지만, 내가 잠겼던 곳은 그냥 물이 아니어서 거울 앞의 나는 색이 조금씩 달라져 있었다. 그러나 정확히 어디가 바뀐 것인지 집어 말하기는 어려웠다. 물은 시간이 지나면 마르지만 살의 얼룩진 부분은 좀처럼 내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나는 불현듯 오래 전 교수님의 말을 기억해낸다.

“나를 보면 알겠지만 내 남편도 굉장히, 불만 많고 뭐 그런 성격이에요. 불합리한 일에 잘 수긍 못 하고. 근데 그런 사람도, 군대를 갔다 오니(잠시 주변을 돌러보더니) 새-하얗게 표백이 되어서 돌아왔더라구요. (일동 웃음)”

우리의 얼룩덜룩한 피부는 표백된 것이 아니라 착색된 것, 떼어내려 해도 이미 경계가 흐려져 어디를 떼어버려야 할지 분간할 수가 없다.

우리는 종종 길거리에서 우리와 닮은 색의 웅덩이와 다시 마주친다. 끈끈하고 어두운 색의 침전물들이 우리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그렇지만 예전만큼 불쾌하지는 않다.

왜 어렸을 적의 나는 외국에서 살고 싶었지? 기억이 희미해지고 나는 이곳에 눌러앉는다.

진절머리났던 모든 것이 이제는 익숙하고 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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