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승호 씨 이야기
현승호 씨 이야기
현승호 씨는 부란 언덕길 산책을 마치고 돌아와 간단히 샤워만 하고 나왔다. 주방으로 가보니 식탁 위에는 두부조림, 생선 구이, 나물 무침 등등의 반찬들이 뚜껑에 덮여 있고, 눈에 띄는 포스트잇이 붙어 있었다.
‘승호 씨, 저녁은 보글보글 된장찌개예요. 인덕션으로 데워서 드시고, 밥은 밥솥에 있습니다. 생선 구이는 아직 따뜻할 테니 그냥 드셔도 될 거예요. 반찬은 냉장고에 더 있으니 얼마든지 더 드세요. 그럼 편안하게 식사하세요.’
현승호 씨는 이런 식사가 나오는 민박집은 처음이다. 물론 글쓰기 민박집도 처음이지만. 살짝 미소를 짓고 먼저 물을 따라 마신 후 유은이 차려놓은 정갈한 음식을 천천히 음미하며 제법 맛있게 먹었다. 밤 9시가 조금 지나자 현승호 씨는 양치질과 세수를 하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그리고 새벽 3시 반쯤 게스트 방에 불이 켜졌다. 현승호 씨는 와인이 진열된 거실 벽을 지나 오른쪽 끝에 위치한 주황색의 부드러운 조명 빛이 새어 나오는 ‘전지적 작가 시점의 방’으로 들어갔다. 노트북과 원고지, 종이 노트, 다양한 종류의 볼펜과 연필, 지우개 등이 책상에 놓여 있었다. 책상 의자는 생각보다 딱딱했지만, 허리가 아프지는 않았다. 오히려 어느 정도의 긴장감을 주며 글쓰기에 집중을 할 수 있게 하는 나무 의자였다. 현승호 씨는 노트북을 선택했다. 옆에 있는 커피 머신에서 커피를 만들어 다시 자리에 앉았다. 새 문서를 열고 깜빡이는 커서를 한참 바라보다 이렇게 쓰기 시작했다.
제목: 그냥 외로운 편이 나았다.
현승호. 그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나이 41세. 외국계 제약 회사의 영업 1팀 팀장.
승호는 유능한 직장인으로 냉철하고 정확하게 일처리를 하는 장은수의 팀장이다. 몇 년 전 리스크가 큰 주식 종목에 투자해 대박을 친 후, 바로 주식에서는 발을 빼고 부동산으로 관심을 돌려 마흔이 되기도 전에 부모 찬스 없이도 잠실에 40평 대 아파트를 살 수 있음을 증명한 인물이다.
승호가 이 회사에 처음 입사했을 때부터 그의 팀은 계속해서 신입 티오가 나지 않았고, 몇 년째 계속 막내 생활을 해 나가야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신입이 들어온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유명 해외 대학을 나왔다는 유학파 1명과 지방대 출신이지만 경력직같이 일을 잘한다는 국내파 신입 1명이 승호의 팀으로 배치된다는 소식이었다. 승호는 이상하게 국내파 신입인 은수에게만 힘든 업무를 배정했다. 은수는 승호를 유달리 잘 따랐고 어떤 업무든 무던히 해냈다. 무정의 로봇 같은 승호는 팀장으로서 당연히 일 잘하는 은수에게 계속해서 중요 업무를 맡겼다. 회사 입장에서 일이란 누가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결국 잘 해내는 게 중요한 법이니까. 팀장인 승호로서는 효율적으로 업무 배분을 한 셈이다. 승호는 외근을 나가서도, 퇴근 시간 이후에도 급한 업무가 생기면 은수에게 시도 때도 없이 연락을 했는데, 은수는 그런 승호의 요구에 늘 군말 없이 응했다. 은수는 누가 봐도 일을 잘했기 때문에 다른 동기들보다 먼저 승진을 하더라도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은수는 내심 빠른 승진을 기대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이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은수에 대한 승호의 사적이고 편향된 관심 덕에 은수가 중요 업무를 맡는 게 아니냐는 것이었다. 승호가 은수에 대해 호감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정확히는 호감이 있었다. 이성적으로도 회사 후배로서도 관심과 애정이 더 간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승호와 은수를 둘러싼 말들이 승호에게는 상당히 거슬렸고, 그런 말들이 승호의 귀에 들어간 이후부터 은수를 멀리했다. 승호는 자신이 비겁하다고도 생각했지만 그보다 주변의 말들이 도는 것 자체가 피곤하고 힘들었다. 승호의 마음과는 별개로 은수는 분명 능력이 있었지만, 승호는 인사 평가에서 일부러 높은 점수를 주지 않았다. 승진 심사에서 연거푸 탈락하자 승호에게 배신감이 든 은수는 승호에게 대화를 요청했고 승호는 거절했다. 자신의 사적인 감정 때문에, 주변의 쓸데없는 말들 때문에 지금까지 이룬 것이 물거품이 될까 봐 승호는 두려웠던 것이다.
승호가 중학교 2학년 때, 정확히는 새 학기가 시작하는, 공기가 아직은 차가운 봄날의 첫 월요일 아침. 신호에 걸려 멈추어 선 버스 안에서 승호는 교통사고를 목격한다. 04번 마을버스 아래 사람 다리 하나가 보였다. 승호가 탄 버스 안 사람들은 소리를 질렀지만 신호가 바뀌자 이내 버스는 목적지를 향해 출발했다. 학교에서도 마을버스에 깔린 다리 한쪽이 승호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 다리의 주인은 누구였을까? 승호는 싸한 느낌이 들어 수업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차마 입으로 내뱉지는 못하지만 계속해서 무서운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선생님이 찾아와 병원으로 가보라고 할 것 같아.’ 2교시 시작 종소리가 울리고 10분쯤 지나자 담임 선생님이 교실 앞문으로 노크를 하고 들어와 수학 선생님과 몇 마디를 나누더니 승호를 불러냈다. 담임 선생님은 어두운 얼굴로 시내에 있는 병원으로 빨리 가보라고 했다.
형이었다. 다리를 저는 승호의 형이 수술실에 들어갔다고 했다. '형제 상회'라고 써진 앞치마를 두른 엄마와 교복 차림의 누나는 승호가 온 줄도 모르고 울고 있었다. 승호도 엄마와 누나 옆에 앉았지만 울지는 않았다. 다리를 저는 병신 같은 형을, 아무 능력도 없으면서 소리만 지르는 형을 미워했던 승호였다. 아버지는 배를 타고 나가서 돌아오지 않았다고, 엄마는 마치 구전 동화 속 이야기를 들려주듯 반복해서 자식들에게 이야기했었다. 승호는 어차피 처음부터 없었던 아버지에 대해 궁금해하는 것은 손해라고 생각하며 아버지에 대해 더 이상 궁금해하지 않았다. 그런데 자꾸 그런 아버지의 자리를 다리를 저는 형이 대신하는 거라고 엄마는 자꾸만 승호에게 되뇌었다. 어린 승호는 그래도 내 아버지는 형 같은 사람이 아니었으면 했으므로, 아버지 행세를 하는 형이 그렇게도 미웠다. 승호는 형과 나이 차이가 11살이나 나는 막둥이었다. 보통 막둥이들은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다고 하는데, 승호는 얼굴도 본 적 없는 아버지를 대신하는, 다리를 저는 형에게 항상 매질을 당했다. 다 막둥이 잘되라고 바르게 크라고 때린 거라고 덧붙였지만, 매가 없는 날엔 주먹으로 때리고는 그런 소리를 했다.
'그게 사랑이었을까? 정말 다 내가 잘 되라고 때렸던 것이었을까?'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하며 승호는 다리를 저는 폭력적인 형을 더욱 부정했다.
그런 형이 지금 수술실 안에 있다. 장장 9시간이 지났다.
늙은 의사가 나왔고 엄마와 잠시 대화를 나누더니 엄마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젊은 의사와 간호사가 수술 침대를 밀고 나왔는데 그 위에 다리를 저는 형이 누워있었다. 형의 다리는 하필 저는 다리 한쪽만 남아 있었다. 나중에 사람들은 그런 사고를 당하고도 목숨이 남아 있었던 게 기적이라고 했지만, 형은 차라리 죽는 편이 나았겠다고 말했다. 승호도 속으로 '그래, 그게 나을 뻔했지.'라고 생각했다.
엄마는 정성으로 형을 간호했고, 식당일을 하며 주인 몰래 손질하고 버린 돼지고기 뼈를 싸와 몇 시간이고 고았다. 그리고 그 국물은 오직 형만 먹을 수 있는 것이었고, 그렇게 형의 절단된 다리 한쪽은 아물어 갔다.
그 후 2년이 지났다. 승호는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사고가 나기 전까지 형은 한쪽 다리를 절면서도 손 기술이 좋아 공사장에서 곧잘 목수 일을 했었는데, 사고 후에는 그마저도 할 수가 없었다. 그 대신 목발을 짚고 슈퍼로 나가 소주를 두 병씩 사다 마셨다.
중간고사가 끝난 날, 시험을 보고 일찍 집으로 돌아온 승호는 집 안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오랜만에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겠다는 생각에 들떴다. 네 식구 단칸방 살이를 하며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시험공부를 하느라 보지 못한 만화책을 꺼내 이불속으로 들어가니 행복하기까지 했다.
그날 형은 동네 친구와 낮술을 마시고 일찍 파하고 돌아오는 길에 어김없이 슈퍼에 들러 소주 두 병을 샀다. 소주가 든 검은 봉지를 두 손가락에 걸고, 손바닥으로는 목발을 짚고 집으로 향하려 서너 발자국 걸었을 때 슈퍼 앞에서 우회전으로 급하게 들어오는 택시가 형을 덮쳤다. 깨진 소주병 사이로 형이 쓰러졌다. 이 두 번째 교통사고로 인해 형은 피를 너무 많이 흘려 병원으로 이송되자마자 죽었다.
형의 장례식장에는 살면서 한 번도 본 적 없었던 먼 친척들이 승호와 남은 가족들을 위로하며 한 마디씩 해댔다. 누군가는 승호를 보며 '저 어린것 아부지 노릇만 해주다가 저렇게 불쌍케 가뿟다.'는 말도 돌멩이 던지듯 던졌다. 승호는 울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승호의 모습을 본 먼 친척들은 또다시 수군거렸다.
형이 없는 승호의 집은 더 어둡고 조용했다. 엄마도 누나도, 승호도 서로서로 말하지 않았다.
어딜 가나 말이 없는 승호는 공격의 대상이 되기 쉬웠다. 음흉한 놈이다. 그렇지만 제 할 일은 똑 부러지게 하는 잘난 놈이니까 무섭기도 하다는 그저 말을 위한 말들이 승호를 공격했고, 승호는 방어의 수단으로 회색처럼 튀지 않는 사람이 되는 길을 택했다. 공격을 공격으로 받기보다는 방어를 철저히 하기로 한 것이다. 다만 회사에서는 실적이 그를 평가하는 유일한 지표였고, 승호는 그것이 가장 공정하다고 믿었으며, 거기서 편안함을 느꼈다. 그래서 승호는 일에서만큼은 공격적으로 열심히 했고, 타인의 평가와 인정 속에서 안도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은수는 능력껏 일을 잘 해냈음에도 불구하고 승호 자신이 공격을 받을 상황이 되자, 그 공정의 지표를 은수에게는 적용하지 않았다. 승호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방어적인 인간이 되는 편을 선택했고, 그냥 외로운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 승호는 부끄럽다. 그리고 은수에게 미안하다. 그리고 승호는 마침내 깨달았다.
‘스스로를 연민하며 모든 행위를 정당화하는 것은 안쓰럽지만 비겁하다.’
전지적 작가 시점의 방에 불이 꺼졌다. 글을 쓰는 동안 현승호 씨는 점심은 빵과 커피로 대신한다고 해서 따뜻한 빵을 구워서 방으로 넣어 주었고, 아침과 저녁 식사는 주방에 차려 놓았더니 잠깐 나와서 먹고는 다시 글을 쓰러 들어갔다. 새벽 3시 반쯤 전지적 작가 시점의 방에 들어가서 밤 9시가 다 되어서 그 방에서 나온 것이니, 현승호 씨가 자신의 이야기를 다 쓰기까지 꼬박 17시간이 걸린 것이다. 현승호 씨가 거실로 나왔다. 피곤할 법도 한데, 표정이 한결 가벼워 보였다. 와인 한 병을 무료로 마실 수 있다고 포스트잇에 써 붙여 두었더니 현승호 씨는 레드 와인 한 병을 골랐다. 와인이 진열된 벽의 반대편에는 벽 전체가 책장이다. 현승호 씨는 와인을 한 잔 따라 놓고 책장 앞으로 갔다. 책장에 꽂혀 있는 책들의 제목을 눈으로 읽으며 천천히 걷다가 황순원의 소설책에 눈이 멈추었다. 현승호 씨는 책을 꺼내 들고 소파에 앉아 와인을 한 모금 마시고 나서 책을 펼쳐 들고 한 참을 읽었다.
아이는 지금 자기의 오른쪽 눈에 내려온 별이 돌아간 어머니라고 느끼면서, 그럼 왼쪽 눈에 내려온 별은 죽은 누이가 아니냐는 생각에 미치자 아무래도 누이는 어머니와 같은 아름다운 별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머리를 옆으로 저으며 눈을 감아 눈 속의 별을 내몰았다.
현승호 씨는 황순원의 소설 '별'의 마지막 구절을 소리 내어 읽었다. 그리고 현승호 씨의 왼쪽 볼에도 별이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