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길 건(만) 넘기자.
소문은 실체가 없다.
진실을 알려고 애쓰지 않으면 알 길이 없다.
오늘은 서른 아홉의 마지막 즈음 들었던 이야기 중 기억에 남는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우리는 수많은 이야기를 들으며 산다. 그리고 어떤 누군가는 생각지도 못했던 일(그것이 사실인지는 알 수 없는 일)을 마치 실수하듯 알려 줄 때가 있다.
가령 이런 것이다.
같은 동네 친구 나(여), A(남), B(여)가 있다.
나는 8년 전 A와 연애를 한 적이 있는데, A의 요청으로 연인 사이는 둘만의 비밀로 했다.
눈치 빠른 B는 나와 A의 사이를 의심했지만, 심증만 있었기 때문에 헤어질 때까지 이 둘의 사이를 밝혀내진 못했다.
나는 A와 짧은 만남 후 헤어졌다. 그리고 나는 결혼했고,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
나, A, B는 여전히 한 동네에서 살며 연락은 주고받았지만, 서로 바쁘기도 해서 데면데면하게 지냈다.
그런데 어느 날 술자리에서 마주친 A와 B는 알 수 없는 이유로 대판 싸웠다고 한다. 그리고 B는 아예 이 동네를 뜨기로 결심까지 했다고 한다.
오랜 동네 친구인 B가 떠나기 전에 나는 인사를 할 겸 B와 점심을 함께 했다.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던 중 B가 뜬금없이 이렇게 말했다.
"아 맞다! A 말이야, 동거하는 거 알고 있었어?"
"그게 무슨 소리야? A가 동거를 하고 있어?"
"그렇대! 아마 10년은 더 됐을 걸! 아주 젊은 여자랑 동거하고 있었는데, 심지어 가족들도 모르게 살았다고 하더라. A는 왜 그리 비밀이 많은지... 쯧쯧 진짜 음흉해!"
"B야, 그런데 넌 그걸 어떻게 알았는데?"
"그냥, 누가 알려줬어!"
그리고 나는 화제를 돌렸다.
누가 알려준 그 이야기를 더 캐묻고 싶지 않았고, 그게 진짜인지 가짜인지 어차피 누가 해준 이야기로는 판단하기 어려울 것 같았다.
더욱이 나에게 A는 현재 아무것도 아닌 존재였다.
하지만 나는 B의 말이 진실인지 궁금했다. 8년 전에는 나를 만나고 있었는데, 동거를 10년 전부터 했다니, 그래서 우리 사이를 비밀로 하자는 것이었을까?
B는 도대체 이제 와서 어떤 의도로 나에게 그 이야기를 꺼낸 것이었을까?
A와 B는 대체 무슨 사일까? 둘은 왜 싸웠던 것일까?
나는 당장 A에게 전화를 걸어 확인해 볼 수도 있었다.
그러나 확인하지 않기로 했다.
그것이 진실이든 진실이 아니든, 달라질 건 없기 때문이다.
때로는 넘길 건 넘기며 사는 것이
세상을 편하게 사는 방법일 수 있으니 말이다.
이 이야기 역시 어디서 들은 이야기이다.
(사실 이 이야기에서 따지고 싶은 부분이 한 둘이 아니다. 대충대충 요약적 진술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의 이야기는 늘 그렇듯, 구구절절하든 흐리멍텅하든 어차피 이야기의 뼈대만 남는 법이니까, 대략 파악하기로 함!)
이 이야기를 듣고, 내가 깨달은 점은 아래와 같다.
‘내가 바꿀 수 없는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하여, 또는 현재 내 삶에서 그리 중요하지 않은 일에 대하여 무엇이 진실인지, 어떤 의도가 숨어있는지 굳이 알려고 애쓰지 말 것.‘
그러다가 잠시 생각이 번졌다.
그런데 진실을 아는 게 가능하기나 할까?
내가 직접 경험한 일조차 그 이면의 진실이 무엇인지 알기 어려울 때가 있는데, 하물며 누군가에게 들은 이야기 속 진실을 규명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러다 다시 생각 꼬리가 다른 길로 새나갔다.
진실을 아는 것은 분명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요즘은 그냥 넘기지 말고 반드시 확인해야 할 진실들도
너무나 무기력하게, 기계적으로 넘겨버리는 습관에 젖어든 것 같다.
복잡한 세상에서 넘길 건 넘기는 게 세련된 거라고 세뇌당한 것 같다.
무력감이 온몸에 학습된 채로
그냥 쉽게 쉽게 넘겨 버리는 우리의 모습이
때론 슬프다.
생각이 번지니 글도 번진다.
그래서 요지가 뭐냐고?
진실을 아는 건 어렵다.
그러니
넘길 건 넘기되,
넘기지 말 건 조금이라도 붙들고 늘어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