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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윤숙 Aug 04. 2023

고갱 - 문명인이 그려낸 야생의 아름다운 환상

모델도 없이 순전히 붓 끝에서 상상으로 그린 그림

남이야 어떻게 생각하든 정말 전혀 상관 않는 사내가 여기 있었다. 인습 따위에 붙잡혀 있을 사내가 아니었다. 이 사내는 온 몸에 기름을 바른 레슬링 선수처럼 도무지 붙잡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 자는 도덕의 한계를 넘어선 자유를 누리고 있었다. - 시멋싯 몸, [달과 6펜스] 중에서


시머싯 몸의 소설 [달과 6펜스]의 주인공은 화가가 되겠다고 아내와 자식들을 버린 매정한 사내다. 그는 처자식을 버렸다는 것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사람들의 멸시도 상관하지 않은 채 혼자 열대의 섬으로 떠난다. 신기하게도 그 주변 사람들은 이 무례하고 자기중심적인 화가에게 이상한 힘과 마력을 느낀다. 괴팍한 성격과 특별한 야만성이 오히려 그의 그림을 장식해주고 있었다. 이 소설 주인공의 모멜이 폴 고갱(Paul Gauguin, 1848-1903)[그림 1]이다.


그림 1. 폴 고갱, <황색 예수와 자화상>, 1889, Oil on canvas, 38 x 46 cm, 모리스 드니 박물관, 생 제르맹 앙 래, 프랑스


시멋싯 몸의 소설은 고갱에 관한 많은 진실을 말해주면서 동시에 많은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그의 그림은 분명 관습과 달랐고 그 소재는 야생적인 느낌을 준다. 하지만 실제 고갱의 삶은 소설 속 주인공과 달랐다. 고갱은 “그림을 그리기는 쉽다. 문제는 팔기가 어렵다는 것이다.”라고 고백하는 가난한 문명인이었다. 또 그가 정착한 남태평양의 섬 타히티는 ‘고귀한 야만’의 땅이 아니라 유럽 문명이 들어간 '현대화 된 식민지'였다. 그럼에도 이국적인 풍경이 있는 그곳에서 고갱은 새로운 회화의 언어를 찾았고, 상징주의와 야수파, 표현주의와 추상주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현대회화에 영향을 주는 새로운 양식을 구축했다.


종합주의(synthetisme) : 다양한 제재로 표현된 의미와 자율적인 형과 색


반 고흐는 고갱을 두고 ‘먼 곳에서 와서 먼 곳으로 갈 사람’이라고 불렀다. 이 말은 실로 고갱의 삶과 어울리는 표현이었다. 그는 프랑스와 페루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십대 후반부터 약 6년간 선원과 해군이 되어 떠돌았다. 그러다 20대 초반엔 잘 나가는 주식중개인이 되었는데 부업으로 미술품 거래도 하면서 풍족한 중산층의 삶을 살았다. 결혼도 하고 아이도 기르면서 안정적인 삶을 살던 그때 고갱은 잠시 취미로 그림을 배우며 인상주의 풍의 그림을 그렸다.[그림 2]


그림 2. 폴 고갱, <보쥐하흐 마을의 채소밭 The Market Gardens at Vaugirard>, 1879, Oil on canvas, 66 x 100 cm


그런 고갱을 화가의 길로 이끈 것은 주식시장의 몰락이었다. 직업을 잃은 고갱은 외판 사원이 되어 물건도 팔아 보았으나 가족의 생계를 책임질 수 없었다. 그때 선택한 직업이 전업화가였다. 하지만 그의 그림은 팔리지 않았고 결국 가족과 헤어져 일거리와 그림 그릴 곳을 찾아 떠도는 신세가 되었다.


파리를 떠난 고갱의 첫 정착지는 프랑스 서부 해안가의 작은 마을 퐁타벤이었다. 회화의 근본 원리가 원시적인 감성과 상상력이라고 믿고 있는 고갱에게 전통적인 의상을 입고 다니는 시골 여인들의 모습은 낯설고 신선하게 다가왔다. 그곳에서 그려진 그림이 <설교 후의 환영>[그림 3]다. 시골 여인들이 기도하는 가운데 야곱과 천사의 씨름이 벌어진다. 여인들의 모습은 단순하게 표현되었는데 초자연적인 환영을 볼 정도로 매우 신심이 깊어 보인다.


그림 3. 폴 고갱, <설교 후의 환영>(야곱과 천사의 씨름), 1888, Oil on canvas, 73 x 92 cm, 스코틀랜드 국립 박물관, 에든버러

고갱은 이 그림에서 형태와 색을 임의적으로 사용했다. 색채 효과를 위해 땅은 붉은 색으로 칠해졌고, 하얀 모자의 끈은 매우 특이한 곡선을 그린다. 일본 판화의 영향이 느껴지는 휘어진 나무는 화면을 가로지르며 환영과 현실을 구분한다. 원근법은 깨어졌고 회화가 자연을 묘사한다는 전통도 지워졌다. 한편 인상주의자들이 그림에서 애써 밀어냈던 의미(이야기)가 다시 회화에 도입되었다. 이렇게 다양한 요소가 결합된 고갱의 양식을 미술사에선 종합주의(synthetisme)라고 부른다.     




문명인의 질문,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고갱은 퐁타벤에서 아를로 떠나 반 고흐를 만났다. 하지만 고흐가 귀를 자른 그 유명한 사건으로 둘의 동거는 두 달 만에 막을 내리고 고갱은 다시 파리와 파나마, 마르티크 등을 떠돌다 타히티에 떠나기로 결심한다.

1890년, 미지의 땅으로 출발할 계획을 세우며 42살의 고갱은 한껏 들떠 있었다.


“자유! 돈 걱정에서 벗어난 자유! 그곳에서 나는 자유를 만끽하며 사랑하고 노래하고 죽어갈 수 있을 것이오.” - 폴 고갱


고갱은 아내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이렇게 말했지만 타히티도 낙원은 아니었다. 고갱은 그곳에서 각종 병과 지독한 가난으로 고생을 하다 결국 2년 만에 파리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파리로 돌아온 고갱은 타히티에서 그림 그림으로 전시를 열게 된다. <이아 오라나 마리아(아베 마리아)>[그림 4]는 그중에서도 완성도가 가장 높다고 고갱 스스로 자신한 작품이었다. 분홍색 옷을 입은 천사의 날개는 푸른색과 노란색으로 칠해졌고, 기도를 드리는 여인들과 성모자의 모습을 타히티 원주민의 모습으로 표현되었다. 고갱은 감추는 것이 없는 이 여인들이 고전 회화의 어떤 성모자상보다도 순결하고 아름답다고 주장했다.


그림 4. 폴 고갱, <이아 오라나 마리아(아베 마리아)>, 1891, Oil on canvas, 114 x 88 cm,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뉴욕


고갱이 소개한 낯선 열대의 모습은 전례 없는 관심을 받았다. 하지만 그림은 여전히 많이 팔리지 않았고 도시 생활에 염증을 느낀 고갱은 다시 남태평양으로 떠난다. 하지만 그곳에서 또 다시 건강이 악화되고 지독한 가난이 이어졌다. 1897년에는 딸 알린이 죽었다는 편지를 받게 된다. 그 가운데 완성한 고갱 최대의 걸작이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그림 5]이다.


그림 5. 폴 고갱,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1897, Oil on canvas, 141 x 346 cm, 순수미술 박물관, 보스턴


가로 폭이 346cm에 이르는 이 작품은 동양화처럼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읽어나가는 그림으로 제목에 맞추어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오른 편에는 삶을 시작하는 아기와 공동의 삶을 상징하는 세 여인이 있다. 가운데에는 일상을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이 보인다. 조용히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고, 열매를 따고, 고양이와 어울리며 열매를 먹는 평범한 인간의 일상이다. 그리고 왼편에는 비로소 결국 죽음으로 향해 가는 인간이 나온다. 두 팔을 들고 있는 조각상은 내세를 상징하는데 그 앞에 비스듬히 앉은 여인은 조각상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그 옆에는 죽음에 임박한 노파가 체념한 듯한 모습으로 앉아있다. 고갱은 그 위에 노란 평면을 만들어 묘비명처럼 그림 제목을 적어 두었다. 그리고 그녀에 아래에는 헛된 말의 불필요함을 상징하는 기묘한 모습의 하얀 새를 그려 넣었다.


고갱은 “모델도 없이 순전히 붓 끝에서 상상으로” 이 그림을 그리며 이렇게 다양한 상징들을 스스로 만들어냈다. 그는 자신이 그림이 “성서에 비견되는 주제를 담은 철학적 작품”이라고 자부했다.


고갱이 새로 만들어낸 회화의 언어는 매우 참신한 것이었다. 하지만 보편성을 지니지 못했다. 순수함을 백색이 아니라 갈색 피부의 원주민으로 표현하고, 내세를 원시 석상으로 표현하는 화가는 아무도 없었다. 또 도상을 이용하여 주제를 설명하려고 하는 방식은 회화를 흐름을 역행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서서히 강렬한 색채와 원시적인 형상이 지닌 매력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무엇보다도 개인적인의 생각을 자신만의 방법으로 과감하게 그림에 담아낸 고갱의 시도가 어떤 의미인지를 알아보았다. 그것은 현대 회화로 넘어가는 새로운 탈출구였다. 화가 모리스 드니의 말처럼 “고갱은 회화란 자연을 모방하는 것이라는 고정관념에서 우리를 해방시켜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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