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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윤숙 Feb 09. 2022

최초의 미술작품, 혹은 최초의 마술용품

원시 미술 : 이미지와 실재 사이의 미묘한 연결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 그림은 싫어. 보아뱀은 너무 위험해. 그리고 코끼리는 너무 커. 내가 사는 곳은 아주 조그맣거든 나는 작은 양이 좋아. 양을 그려줘.” - 생텍쥐페리, 『어린왕자』 중에서      


어린 왕자는 그림으로 그려진 것이 실재한다고 믿는다. 불과 한 세기 전에 인류학자들이 만난 인디언들도 이와 유사한 생각을 갖고 있었다. “당신들이 우리 들소 여러 마리를 책 속에 넣어 간 것을 나는 안다. 내가 그 현장을 보았으니까.” 인디언들은 들소 그림을 그린 백인들을 보고 이렇게 말했다.


이처럼 그림과 현실이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은 우리에게 매우 순진하고 어리석은 믿음처럼 보인다. 그런데 사실은 현대인들도 이런 감각을 갖고 있다. 좋아하는 스타의 사진을 벽에 걸어두고, 행여 누군가 그 사진에서 눈, 코, 입 등을 도려내면 마치 자기 스타가 모욕을 당한 것처럼 느낀다. 이미지와 실재 사이의 미묘한 연결을 우리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인류 최초의 미술품들은 이런 믿음 속에서 탄생했다.  


손에 잡히는 비너스, 동굴에 그려진 사냥감


인간이 만들어낸 가장 오래된 예술품은 돌이나 나무, 뼈 등에 새겨진 조각들이다.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은 기원전 2,500~20,000년 전에 제작된 <빌렌도르프의 비너스>이다.

<빌렌도르프의 비너스>(다양한 각도에서 찍은 사진), 기원전 25,000~20,000년경, 자연사박물관, 빈, 오스트리아https://en.wikipedia.org

얼굴의 세부 묘사가 생략된 채 가슴과 복부, 엉덩이가 풍만하게 강조된 것으로 보아 이 여인상은 풍요의 상징이었다. 흥미로운 점은 이 조각상이 손으로 만지작거리며 풍요를 기원하는 일종의 부적이었다는 것이다. 세워둘 수 없는 형태나 한 손에 쥐어지는 작은 크기가 이것이 관람이나 숭배를 위해 만들어진 신상이 아니라는 소지품이었다는 것을 짐작케 해준다. 분명 이 풍만한 조각상을 만든 인류의 조상들은 그것을 만지면 실재로 풍요가 찾아올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었을 것이다.


사실 이런 선사시대 조각품을 ‘미술품’이라고 부르는 건 오해의 소지가 있다. 미술이란 시각적 유희활동이거나 공간을 장식하기 위해 조형물을 만드는 활동을 가리키는 말이다. 고대인들이 이런 미술활동을 했다면 동굴 벽면에 손바닥을 자국을 찍으며 시각적 유희를 즐긴 정도일 것이다. 그런데 미술사가 주목하는 선사시대 조형물들은 <빌렌도르프의 비너스>처럼 우리가 생각하는 미술과 다른 목적을 가지고 만들어졌다. 그것은 오히려 환타지 소설에 나오는 마법의 물약이나 마법 지팡이와 같이 아주 실용적인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전혀 신비스러울 것 없는 기술이요 사무적인 활동이며, 우리가 쥐덫을 놓는다든가 땅에 거름을 준다든가 수면제를 복용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비교(秘敎)나 밀의(密儀)와는 무관한, 수단과 방법의 적절한 응용이었다. - 아르놀트 하우저,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창작과 비평사     
<라스코 동굴 벽화>, 말, 기원전 15,000~10,000년경, 라스코, 프랑스https://en.wikipedia.org


이런 인식은 구석기 회화에도 그대로 반영되어있었다. 구석기시대 사람들은 실용적인 목적을 가지고 동굴 벽면에 동물들을 그렸다. 그들은 벽면에 그려진 들소를 창으로 맞힌다면 실재 사냥에서도 들소가 창에 찔릴 것이라고 믿었다. 그렇기에 그려진 소와 말을 향해 사냥꾼들은 창과 화살을 날렸다. 때문에 현존하는 알타미라 동굴 벽화와 라스코 동굴벽화는 그 치열한 사냥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다.      



자기 변신을 위한 예술


이처럼 예술 세계에서 행한 것이 현실 세계에서 실현될 거라는 생각은 피그말리온(Pygmalion) 신화에도 담겨 있다. 피그말리온은 자기가 만든 여인상을 사랑하여, 조각상이 자신의 아내가 되어주길 기도했다. 비너스는 그의 기도를 들어주었고, 조각상은 소녀가 되어 “그의 입맞춤을 느끼고는 얼굴을 붉히며” 사랑하는 남편을 쳐다보았다. 피그말리온의 예술은 이렇게 현실이 되었다. 그렇다면 구석기인들의 예술도 이처럼 신비한 효과가 있었을까?


오노레 도미에Honoré Daumier, <피그말리온 Pygmalion>, 1842https://upload.wikimedia.org/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회화인 알타미라 동굴 벽화는 기원전 15,000~10,000년경에 그려졌다. 이 벽화가 처음 발견되었을 당시만 해도 고고학자들은 이 그림들이 선사 시대에 그려진 것이라고 확신하지 못했다. 벽에 그려진 동물들이 너무나도 사실적이고 생동감 있게 표현되었기 때문이다.


<라스코 동굴 벽화>, 기원전 15,000~10,000년경, 라스코, 프랑스https://en.wikipedia.org


당시 사람들은 인류 최초의 그림이 어린아이들의 그림이나 원시부족의 예술과 닮아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린이들은 대개 보이는 대로 그리지 않고 알고 있는 대로 그린다. 예를 들어 아이들의 그림에는 빛을 방사하는 노란 해가 등장하고, 손은 손가락 없이 동그라미로 표현된다. 보이지 않아도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은 크게 그리고, 눈에 잘 띄어도 별 역할을 하지 않는 것은 완전히 무시해 버리기 때문이다.


아는 대로 그리는 것은 회화의 오래된 관습이었다. 화가들은 오랫동안 화첩으로 배운 대로 꽃과 나무와 인간을 그렸다. 사물은 태양아래 있든 그림자 안에 있든 뚜렷한 형태로 그려졌다. 이런 관습이 깨지고 눈에 보이는 대로 대상을 재현하는 방식은 19세기 인상주의에 와서야 가능했다. 그런데 인류 최초의 화가들이 이런 방식으로 동물들을 재현했다. 앞서 말한 대로 그들은 ‘관념적인 소’가 아니라 ‘내일 사냥에서 잡게 될 그 소’가 필요했기에 원시인들은 가능한 한 눈으로 본 대로 그렸다.


구석기인들은 우선 동물의 양감을 표현하기에 적절하게 정당히 튀어나온 벽면을 골랐다. 그리고 석탄으로 유려한 선을 그려 윤곽을 표현했다. 색은 붓으로 황토를 바르거나 구멍이 뚫린 뼈를 빨대처럼 사용해 안료를 불어서 표현했다. 이렇게 간단한 방법으로 그들은 주술 활동에 쓸 사냥감의 분신을 창조했다.


구석기인들은 이런 그림들을 아주 깊은 동굴 속에 그렸다. 벽화가 그려진 방은 매우 좁고 어두운 통로를 더듬어 가야 겨우 들어갈 수 있는 곳이었기에, 그곳에 가는 일은 매우 큰 담력을 요구했다. 그렇게 도달한 방에서 그들은 변변한 조명도 없이 그림을 그리고, 함께 소리치며 활과 창을 날렸다. 그리고 다시 좁고 어두운 통로를 걸어 나왔다. 이 과정을 거친 원시인들은 이전과는 다른 존재가 되었을 것이다. 어두운 공간 속에서 그들의 감각은 더 예민해졌을 것이고, 평범한 인간은 용감한 사냥꾼으로 변모되었을 것이다.


이렇듯 고대인들의 주술은 사냥감이 아니라 자신을 변화시키는 방식으로 성공을 가져왔다. 우리도 이런 마술적 체험을 할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동굴 벽화는 방문객들 때문에 빠르게 손상되었기에 일반인 관람이 금지되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마술 같은 자기 변신을 체험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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