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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윤숙 Mar 02. 2022

폴리스의 등장과 그리스의 도약, 그리고 미소

그리스 미술 (2) 아르카익archaic

그리스 미술의 첫 장을 장식하는 작품은 쿠로스Kouros라고 불리는 청년상이다.[그림1] 이 조각상이 등장하는 시기(기원전 7세기~ 기원전 5세기 초)를 미술사에선 아르카익Archaic 시대라고 부르는데 우리말로는 고졸기古拙期(서투르고 소박한 옛 시대라는 뜻)라고 한다. 고전기Classic나 헬레니즘Hellenism 시대와 비교해 볼 때 이 시기의 작품들은 말 그대로 소박한 아름다움과 어색함이 공존한다.


그림1 <쿠로스Kouros-이타카에서 출토>, 기원전610~600년경, 대리석, 높이 184cm,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출처 : https://www.metmuseum.org

정면으로 반듯하게 서있는 쿠로스의 모습을 보면 고대 그리스의 조각가들이 이집트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그리스인들은 이집트와는 다른 미감을 갖고 있었다.


그리스 조각가들은 고대의 규범을 떠나 자기 눈에 아름다워 보이는 조각을 만들려고 새로운 도약을 감행했다. 모든 처음이 그렇듯, 그리스인들의 첫 시도는 서툴고 어색했다. 그럼에도 그리스인들은 뒤돌아보지 않고 나아갔다. 아르카익 시대의 작품에는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는 사람들의 기쁨과 즐거움이 서려있다.     




알몸의 쿠로스Kouros, 잘 차려입은 코레Kore


쿠로스 상이 처음 발견되었을 때 사람들은 긴 머리와 넓은 가슴, 근육질의 허리, 한 발을 내딛는 모양 등을 보고 이 조각상이 아폴론일 거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거대한 몇몇 쿠로스 상들은 아폴론 신을 재현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 조각들은 보다 다양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쿠로스 상 중에는 무덤을 지키는 것도 있었고, 죽은 유명 인사를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진 조각상도 있었고, 신전에 헌납된 것도 있었다. 어떤 신전 앞에는 120개의 쿠로스 상들이 군대처럼 사열하고 있었다. 이렇게 다양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쿠로스 상은 모두 청년 남성의 나체 입상이었다.


어떤 학자는 알몸은 “죽음과 마찬가지로 민주적인 것”이라고 정의했다. 하지만 쿠로스 상의 등장은 민주주의와 직접적인 관련은 없었다. 쿠로스가 등장하기 전, 기원전 8세기 무렵 그리스는 큰 변화를 겪었다. 전제군주국가는 거의 사라졌고 폴리스라고 부르는 도시국가가 성장하고 있었다. 도시국가의 주인은 왕과 귀족이 아니었다. 농업기술이 발달하면서 농부들의 경제력이 상승했고, 자신의 재산을 지켜줄 안정적인 조직을 원했다. 폴리스라고 불리는 독립적인 도시국가는 이들의 자본으로 만들어졌다. 농부들은 새롭게 건설된 도시의 시민으로 공공건물과 아고라agora를 자유롭게 이용했다. 그들이 진정한 도시국가의 주인이었다.


그림2 <쿠로스Kouros>, 기원전 525년경, 대리석, 높이 193cm, 아테네, 국립 고고학 박물관출처 : https://www.pinterest.se

기원전 7세기, 새롭게 성장하고 있는 폴리스에서 쿠로스와 코레가 탄생했다. 농부들이 성장함에 따라 귀족들은 서서히 정치적·경제적 주도권을 잃어가고 있었다. 이런 위기 속에서 귀족들은 자신들만의 미덕을 내세우기 시작했다. 귀족들은 좋은 혈통을 통해 이어받은 건장한 신체와 군인다움을 강조했고, 미美와 선善이 결합된 단어, 칼로카가토스kalokagathos가 새로운 미학이념이 되었다.


폴리스의 시민들은 점차 이런 귀족들의 윤리관과 미의식을 그대로 흡수해 나갔다. 시민들은 땅을 가진 농부이자, 자신의 재산과 폴리스를 지키는 군인이었다. 그들은 스스로를 귀족적인 전사로 단련시켰고, 열정적으로 다른 이들과 경쟁했다. 사망자가 속출했던 올림피아는 그들의 경쟁이 얼마나 치열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도시국가는 소년들이 공동체를 지키는 훌륭한 선수이자 전사가 될 수 있도록 계속해서 훈련시켰다. 그들은 신체적 역량을 기르는 것과 신체적 아름다움을 가꾸는 것이 다르지 않다고 여겼다. 스파르타에서는 도시의 원로들이 정기적으로 젊은이들의 신체를 심사했고, 올림피아에 알몸으로 출전하는 선수들은 몸에 올리브기름을 발라 피부에 광택을 주었다. 남성적인 자질과 아름다움을 숭배하는 사회에서 동성애는 통상적인 것이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쿠로스는 점점 이상적인 조각미남이 되어갔다.(그림 2)


남성상이 누드로 조각된 것과 달리 여성상은 옷을 입은 모습으로 표현되었다. 후대엔 누드로 표현된 아프로디테 조각이 등장하긴 하지만, 쿠로스와 비슷한 시기에 제작된 코레Kore라고 불리는 소녀상들은 모두 옷을 입고 있다. 노예와 더불어 시민으로 인정받지 못한 여성은 자신의 몸을 당당히 내보일 수 없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그람3 <페플로스를 입은 코레 Peplos Kore>, 대리석, 기원전 530년경, 높이 120cm 출처 : https://www.pinterest.co.


<페플로스를 입은 코레> 상(그림 3)은 리듬감을 주는 긴 곱슬머리를 하고 질감이 단순한 겉옷을 입고 있다. 지금은 흔적만 남아있지만, 제작 당시엔 밋밋한 옷에 진한 원색이 화려하게 채색되어 있었다. 이런 코레 상들이 무엇을 나타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일부는 여사제의 모습을 표현한 것이었고, 대다수는 여신을 위한 봉헌물이었다.


어떤 목적으로 만들어졌든, 코레는 쿠로스와 더불어 아르카익 시대의 그리스가 숭배하고 찬양했던 아름다움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준다. 그것은 사춘기를 끝내고 이제 막 남성다움과 여성다움을 드러내기 시작한 젊은 신체의 아름다움이었다. 미숙한 어린 시절은 지나갔고, 스러져가는 노년은 멀리 있는 찬란한 시기를 향해 그리스인은 찬사를 보냈던 것이다.      




대지에 홀로선 인간의 미소


쿠로스와 코레는 최초로 만들어진 환조였다. 미술사가 기무라 다이지는 “환조는 그리스에서 처음 생겨났는데, 이는 신이 인간을 세운 것이 아니라 인간이 자신의 의지로 강인하게 서 있다는 것을”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쿠로스가 인간 중심문명의 시작을 보여주는 조각이라고 평가한 것이다.


거추장스런 지지대 없이 대지에 홀로 선 인간, 쿠로스와 코레는 특유의 미소를 짓고 있다. 어색하게 살짝 올라간 입꼬리는 경직된 자세와 어울리진 않지만, 분명 조각에 생기를 불러 넣고 있다. 이런 표정이 이 시대 조각 전반에 보이기 때문에 미술사에선 ‘아르카익 미소’라고 부른다.

그림 4  <죽어 가는 전사>, 대리석, 기원전 480년경, 높이 64cm, 뮌헨, 클립토테크 미술관 https://commons.wikimedia.org


이런 미소는 심지어 <죽어 가는 전사>(그림 4)의 얼굴에도 보인다. 미술사가들은 이 평화로운 미소가 조각된 인물이 아직도 살아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미술적 장치였다고 추정한다. 전사는 쓰러져 있지만 생명이 아직 그를 떠나지 않았음을 미소로 표현한 것이다.


군주제를 끝내고, 귀족들의 미덕을 자기화한 시민들은 지중해의 밝은 태양 아래서 삶을 향해 미소 짓고 있었다. 어디에도 구속 되지 않은 자유로운 시민이자, 도시를 지키는 군인이었던 그리스인들은 영웅이 될 수 있는 위험과 경쟁 속에 거침없이 뛰어들었다. 아르카익 미소는 위대한 도약을 향해 첫발을 내딛은 고대 도시국가의 생기를 그대로 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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