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미술 (1) 그리스 예술가
헤파이스토스는 애처로운 신이다. 헤시오도스의 『신들의 계보』에 따르면 그는 남편 제우스에게 화가 난 헤라가 사랑의 교합 없이 혼자 만든 아들이다. 헤라는 헤파이스토스의 외모가 너무 흉측하여 태어나자마자 올림포스 산에서 지상으로 던져버렸다. 이 사고 때문인지 선천적인 문제인지 알 수 없지만, 헤파이스토스는 다리에 장애가 있었다. 호메로스는 『일리아스』에서 그를 절뚝거리는 걸음으로 신들 사이를 오가며 술을 따르고, 연회의 흥을 돋우는 어릿광대처럼 묘사했다. 그는 결혼마저 온전치 못해서 그의 아내 아프로디테는 아레스와 바람을 피운다. 아비 없는 자식, 버려진 아이, 못생긴 얼굴과 장애, 그리고 아내에게 배신당한 남편! 이렇게 온갖 애잔한 사연으로 가득한 헤파이스토스가 바로 불과 기술(art)의 신이다.
그런데 그리스 인들은 그를 ‘불쌍한 신’으로 남겨두지 않았다. 그는 의족을 만들어 스스로 걸었고, 특별한 장치가 있는 의자를 헤라에게 선물해 자기를 버린 어머니를 자기 밖에 풀 수 없는 사슬로 묶어버렸다. 또 간통하는 아내의 침대에 보이지 않는 그물을 걸어두어 아프로디테와 아레스를 신들의 놀림감으로 만들었다. 이렇듯 헤파이스토스는 뛰어난 손재주로 자신을 무시하는 신들에게 복수하는 반전을 만들어냈다. 이와 더불어 그는 신화 곳곳에서 신기한 물건으로 영웅들을 돕는 결정적인 조력자가 된다.
고대 그리스의 미술가들은 자신들의 신인 헤파이스토스를 닮았다.
“그리스 미술가는 그리스 문명의 ‘숨은 영웅’이다. 즉, 이들은 인정받지 못한 정치가였고 보이지 않는 해설가였으며, 이미지의 창조자였다.” -나이즐 스피비, 『그리스미술』, 한길아트
예술가의 경쟁과 속임수
고대 그리스의 미술가는 헤파이스토스와 같이 이중적인 평가를 받았다. 그들은 한미한 집안 출신이었으며, 고향을 떠나 신전 건축 등 대규모 공사가 있는 도시를 떠돌았다. 경작할 토지 없이 떠도는 미술가들을 헤시오도스는 ‘거지’에 비유했다. 그중 누군가는 신체적 장애로 인해 전쟁에 참여하지 못하는 불완전한 시민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고대 그리스는 미술가들의 손을 빌어 신화적 존재가 되었다.
그리스 인들은 대장장이의 손으로 만든 청동기를 들고 트로이 전쟁에서 승리했고, 심포지엄에서 도공들이 만든 도자기에 술을 나눠 마시며 그리스의 철학과 정치를 이야기 했으며, 건축가와 조각가의 손을 빌어 도시의 영광을 신전에 새겨 넣었다. 각 도시국가들은 더 멋진 신전과 신상을 만들기 위해 서로 경쟁했고, 장인들은 서로 자신의 기술을 뽐냈다. 이집트 장인들이 이런 상황을 겪지 않았다. 이집트인들은 파라오의 명령에 따라 작업했고, 오랫동안 내려오는 규범대로 작품을 만들었다. 반면 그리스 예술가들은 민주적인 사회에서 공모전을 통해 선발된 사람들이 일감을 얻었다. 경쟁에서 승리한 작가들은 낮은 지위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에게 추앙을 받았고, 자부심을 갖고 작품에 서명을 남겼다.
기원전 5세기 말 ~ 4세기 초에 살았던 제욱시스Zeuxis와 파라시오스Parrhasios의 이야기는 고대 그리스 미술가들의 자부심과 경쟁심에 대한 흥미로운 예시이다. 어느 날 제욱시스가 포도를 그렸는데 새들이 그것이 진짜 포도인 줄 알고 날아와 쪼았다. 사람들이 제욱시스의 재주를 칭찬하자 파라시오스가 “제욱시스는 새의 눈을 속였지만 나는 인간의 눈을 속일 수 있다”고 자신했다. 그 말은 제욱시스의 귀에도 들어갔다. 경쟁심을 느낀 그는 파라시오스의 작업실에 찾아가 증거를 요구했고, 파라시오스는 “그 그림은 커튼 뒤에 있소”라고 대답했다. 그런데 커튼을 열려고 했던 제욱시스는 자신이 속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커튼이 바로 그림이었던 것이다.
이 일화는 경쟁심과 더불어 그리스 미술가들에게 이집트에선 없었던 새로운 과제가 생겼음을 보여준다. 그리스 미술가들은 인간의 눈을 속여야했고, 보다 그럴듯하고 우아한 형상을 만들기 위해 창의력을 발휘해야했다.
인간의 눈을 위해 커진 신의 머리
그리스 미술가들의 가장 중요한 과제는 신전 건축과 신상 제작이었다. 우리가 아는 백색의 그리스는 고대에 없었다. 지중해의 밝은 태양 아래서 그리스 신전들은 화려한 원색으로 빛났다. 그리스 신전은 기독교 교회와 달리 신도들이 모이는 예배 공간이 아니었다. 제전과 축제는 신전 앞 광장에서 이루어졌고, 신전은 말 그대로 ‘신의 집’으로 신상을 모시는 성소였다.
신전에 들어선 인간은 웅장하고 거대한 신상을 맞이했다. 신상은 인간을 닮았으나 동시에 초월적인 힘이 느껴지는 형상으로 만들어졌다. 청동으로 주조된 거대한 신상은 그 크기가 12m가 넘었는데, 금으로 도금되고 화려하게 채색되었다. 그리스 미술가들은 뛰어난 기술력으로 참배객들에게 장엄하고 아름다운 신을 만나는 경이로운 체험을 제공했던 것이다.
시간은 흘러 신전의 색은 바랬고, 장엄한 신상들은 다 사라졌다. 미술관에 남아있는 그리스 조각들은 대개 정원이나 대중목욕탕을 장식했던 로마시대 복제품들이다. 때문에 그리스 조각가들의 실력을 엿보려면 옛 문헌들이 전하는 이야기를 바탕으로 상상해볼 필요가 있다.
그리스 미술가들은 이집트인들이 갖지 않았던 고민을 해야 했다. 이집트인들은 앞서 설명했듯이 규준에 따라 조각상을 만들었다. 이런 규준은 아부심벨 신전 입구에 놓인 거상들처럼 거대한 조각을 만들 때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이집트 왕국에 파라오가 하나이듯 조각을 만드는 규준도 하나였다. 그런데 그리스 조각가들은 신전 안에 들어가 신상을 바라보는 인간의 눈을 의식했다. 자연적인 인간의 비율을 거대한 신상에 그대로 적용시킨다면 신의 얼굴은 인간의 눈높이에서 볼 때 무척 작아 보일 것이다. 그리스 조각가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신상의 머리와 상체를 조금 더 크게 만들었다. 자연적인 비례와 규준을 파악하는 이성과 더불어 인간의 시각적 감각이 권리를 인정받게 된 것이다.
플라톤 같은 철학자들은 미술가들의 이런 시도를 탐탁하지 않게 여겼다. 이런 미술이 인간의 눈을 속이고 진실을 왜곡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그리스 미술은 이와 같은 위대한 도약을 포기 하지 않고 발전시켰고, 후세의 찬사를 받았다. 고대 로마가 그리스를 예찬했고, 르네상스의 거장들이 그리스 미술을 아름다움의 전범으로 여겼다. 그리고 이런 감각은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게도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