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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윤숙 Feb 12. 2022

순간이 아닌 영원, 우연이 아닌 규칙

이집트 미술 (1) 영원한 삶을 위한 양식(style)

“당신은 영원히 살 거예요.”


누군가 당신에게 이렇게 말한다면, 이것은 축복일까, 저주일까? 덧없는 삶을 탄식하는 인간에게 영원한 삶은 축복인 듯 보인다. 하지만 100세 시대를 준비하기도 벅찬 우리에게 영원이란 현실적으로 너무 가혹하다. ‘영원히 산다면 보험은 도대체 몇 개나 들어야 할까?’ 사실 이런 걱정은 다 쓸데없다. 우린 다행히 죽을 것이다. 그런데 고대 이집트의 왕들은 이와 비슷한 고민을 아주 진지하게 했다.


고대 이집트의 왕은 백성을 지배하는 신적인 존재로 여겨졌기에 이 세상을 떠난 뒤에 다시 살아나 영원히 살 것이라고 믿었다. 사막 한가운데 솟아있는 피라미드와 그 안을 채우고 있는 온갖 보물들은 죽은 왕의 사후의 삶을 위해 만들어졌다. 그렇기에 고대 이집트의 건축물과 예술품들은 심미적인 목적을 위해 만들어진 미술품이 아니었다. 그것은 죽은 왕의 영원한 삶을 위한 실용적 물품이었다.


피라미드 : 파라오의 영생 보험


피라미드의 건설은 한 변이 약 230m인 완벽한 정사각형의 땅을 고르게 다듬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대지가 준비되면 초보적인 도구만을 가지고 돌을 자른다. 그리고 오로지 인력만으로 무려 2.5톤에 달하는 석회암 230만 개를 쌓아올린다. 4천 명의 인원이 동원이 동원되는 피라미드 공사는 보통 23년간 이어졌다.  


<피라미드>, 이집트, 가자https://en.wikipedia.org


고고학자들에게 피라미드는 타임캡슐과 같은 것이었다. 수천 년간 봉인되었던 무덤이 열리면서 고대의 생활모습이 세상에 드러났다. 왕의 미라와 조각상, 벽화 등은 실로 놀라운 것이었다. 그 중에 현대인의 눈에 가장 기이한 것은 단연 미라이다.


이집트인들이 미라를 만들 때 처음 하는 작업은 시신의 콧구멍으로 금속 꼬챙이를 집어넣어 뇌를 뽑아내는 것이다. 그 후에 내장 기관을 꺼내어 항아리에 담아 별도의 관에 보관한다. 남은 시신은 소금물에 1달 정도 절인 후에 건조시킨다. 완전히 건조가 된 시신은 솜 등으로 비어있는 속을 채워 모양을 만든 뒤에 붕대로 완전히 감싸서 관에 안치한다. 이집트인들이 이렇게 복잡한 과정을 마다 않고 시신을 보존하는 이유는 한 가지이다. 카(Ka)라고 불리는 생명의 힘이 머물 곳이 필요하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정교한 방부처리 기술과 이집트 특유의 건조한 날씨 덕에 미라는 잘 보존되었다. 하지만 어떤 기술도 영원을 담보할 수 없기에 시신이 부패했을 때를 대비해두어야 했다. 그들은 만약을 대비해 생명의 힘이 머물 수 있는 석상을 준비했다. 조각상은 왕이 영원히 살 수 있게 만드는 불멸의 도구였다. 그래서 조각가는 ‘계속 살아 있도록 하는 자(He-who-keeps-alive)’라고 불리기도 했다.


<석회 두상>, 기원전 2551~2528년경, 기자의 한 고분에서 출토, 빈 미술사 박물관 https://www.art-prints-on-demand.com


이런 의식은 한 때 왕의 전유물이었으나 얼마 후엔 왕실의 귀족들도 이와 비슷한 작은 무덤들을 가지게 되었다. 그중 한 무덤에서 발굴된 <석회석 두상>은 독특한 분위기를 가진 걸작이다. 이 조각상의 얼굴에는 무상하게 스쳐가는 표정이 없다. 가장 기본적인 형태에만 집중하면서 사소한 세부는 모두 걷어낸 형태의 두상은 자연스러우면서도 매우 엄숙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 때문에 이 두상은 살아 있는 듯하지만, 특정인의 개성적인 얼굴이라기보다 보편적인 인간의 영원한 형상처럼 느껴진다.



완전함을 위한 미술


비밀의 문이 열리기 전까지 미라와 조각상은 피라미드의 중심에 마련된 석실에 안치되어 있었다. 피라미드엔 3-4개의 방이 마련되어 있었는데 각 방의 벽면에는 부조와 벽화가 있었다. 하지만 이 아름다운 그림들을 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것 역시 죽은 자를 위한 것이었다.


<네바문의 무덤 벽화-새 사냥>, 기원전1450년, 런던 대영 박물관 https://en.wikipedia.org


벽화에는 무덤 주인의 생생한 생활 모습이 담겨졌다. 연회, 사냥, 장례 등 다양한 주제로 그려진 벽화들은 매우 전문적인 솜씨로 그려졌다. 그 중 공식 서기관이자 곡물 관리자였던 네바문(Nebamun)의 무덤에 그려진 <새 사냥>은 매우 뛰어난 작품이다. 하지만 어떤 이들에겐 매우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다.


일반적인 회화와 달리 이 벽화엔 상형문자와 그림이 공존한다. 어디까지가 그림이고 어디부터 글씨인지 문외한의 눈으로는 구분하기 어렵다. 동물들은 매우 생생하고 자연스럽게 그려진데 반해 인물들은 어딘가 어색하게 그려졌다. 뿐만 아니라 인물들은 그 크기도 제각각이다. 이렇게 무덤의 벽화가 그려진 이유는 이집트 회화가 갖고 있는 몇 가지 원칙 때문이다.


이집트 회화에 등장하는 인물의 크기는 사회적 지위와 중요도에 따라 결정되었다. 무덤의 주인은 그림 가운데에 가장 크게 등장한다. 그는 간단한 도구를 이용해 벌써 새를 3마리나 잡았는데, 오른쪽 어깨에 향낭香囊처럼 쓰던 연꽃을 걸고 있다. 네바문의 부인은 역시 같은 꽃을 들고 우아하게 서있는데 주인공보다는 작게 그려졌다. 그리고 그의 다리 아래에는 한 여인이 물에서 그 꽃을 따고 있다. 그 크기로 보아 신분이 낮은 하인일 것이다.


이집트인들은 그림에 등장하는 모든 것들을 가장 명확하게 보여주어야 한다는 규칙을 가지고 있었다. 얼굴은 옆에서 보아야 코의 윤곽 등이 드러나 분명해 보인다. 반면에 눈은 정면에서 보아야 가장 눈다워 보인다. 상체는 정면으로 그려야 양팔이 붙은 모양을 정확하게 보여줄 수 있고, 발은 엄지발가락이 보이는 옆면이 가장 발답게 보인다. 이 때문에 이 남자는 오른발만 두 개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고대 이집트인들은 인체를 표현하는 이런 규칙을 삼천 년간 유지했다.


이집트 회화의 이런 규칙들에는 명확한 이유가 있었다.    

  

“그들에게 가장 중요시되었던 것은 아름다움이 아니라 완전함이었다. 모든 것을 가능한 한 아주 분명하게, 그리고 영원히 보존하는 것이 미술가의 과업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처음부터 어떤 우연한 각도에서 보이는 대로 자연의 모습을 그리려 하지 않았다.” - E. H. 곰브리치, 『서양미술사』     


이집트인들은 그림에 순간이 아닌 영원, 우연이 아닌 규칙을 담아냈다. 물론 크고 작은 변화들은 존재했다. 그럼에도 그들에겐 독창성이 아니라 완전함이 필요했기에 한번 완성된 양식을 바꾸려하지 않았다.


고대 이집트인의 눈으로 그림을 다시 바라보자. 글씨와 그림으로 빼곡히 채워진 평면이 답답하기는커녕 흥미로운 볼거리로 가득하다. 중앙에 새를 잡는 고양이는 얼마나 생동감 있게 표현되었는가! 크고 작은 인물들은 그 크기 상이한데도 얼마나 조화롭게 그려졌는가! 그렇게 멋진 작품이 수천 년의 시간을 가로질러 우리 눈앞에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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