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조율되지 않은 피아노였다

외로운 손끝들, 니나 시몬

by 김주영

무대 위의 조명은 너무 밝았다.

피아노 앞에 앉을 때면 언제나 그랬다. 누군가는 나더러 천재라고 했고, 또 누군가는 "너무 시끄러운 흑인 여자"라고 했다.

어린 나는 원래 클래식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었다. 바흐, 베토벤, 쇼팽.

하지만 대학 문은 내 피부색 앞에 꽉 닫혀 있었다.

그날 이후, 나는 바흐 대신 블루스를, 쇼팽 대신 피의 역사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나는 나를 사랑하지 못했다.

무대 위에서는 신처럼 군림했지만, 무대 아래에선 스스로를 질책하고 때로는 미워했다.

사랑했던 남자는 나를 때렸고, 나는 피아노에 손을 얹은 채 조용히 울었다.

사람들은 "그녀는 강하다"고 했지만, 나는 강한 적이 없었다.

그저 버티는 법만 배웠을 뿐이다.

“Mississippi Goddam”을 불렀을 때, 라디오들은 내 음반을 부숴 버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진실을 노래했을 뿐이다.

내가 싸운 것은 백인만이 아니었다.

사이렌처럼 속삭이는 절망, 뼈에 새겨진 고독, 때로는 내 안의 분노조차도…

나는 그것들과 싸우며 피아노를 두드렸다.

그게 내 전부였으니까.

지금 누군가 내 노래를 듣고 울고 있다면,

그건 아마도 내가 울면서 노래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음악으로 사랑받고 싶었고, 동시에 세상을 바꾸고 싶었다.

하지만 둘 다 이루기엔, 이 세상은 너무 완고했고, 나는 너무 부서져 있었다.

그렇게 나는 조율되지 않은 피아노였다.

완벽하진 않았지만, 진실했던.


1976년, 몽트뢰.

담배 끝에 불을 붙이자마자 어딘가에서 브람스의 한 조각이 흘러들었다. 너무 맑아서 속이 쓰렸다.

나는 무대에서 내려온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손끝은 아직도 진동하고 있었고, 누군가는 “미쳤다”고 수군거렸고, 또 어떤 백인 남자는 "예의가 없다"고 소리를 질렀다. 그녀는 피아노 위에서 진실을 노래했을 뿐인데.

“그렇게 하면 청중이 불편해진다고?”

나는 허공을 향해 말했다.

“그건 네가 불편한 거겠지. 내 목소리가 아니라, 내가 흑인이기 때문일 거야.”

기획사 직원이 헐레벌떡 백스테이지로 뛰어왔다.

“니나, 제발. 오늘처럼 하면 다음 투어가 무산될 수도 있어요.”

“좋아. 무산돼. 그게 뭐 어때서?”

“우리는 여전히 미국 시장을 신경 써야 하잖아요.”

“나는 신경 안 써. 난 더 이상 거기서 연주하고 싶지 않아.

거긴 내 부모를 무대 뒤로 쫓아낸 나라야. 내 손을 처음으로 피아노에 올려준 사람들을.”

나는 다시 담배를 깊게 빨았다. 불씨가 빨갛게 타올랐다가 곧 사그라졌다.

복도 끝에서 술에 취한 백인 남자 셋이 나를 힐끗 보며 비웃고 있었다.

“에이, 진지 좀 그만 떨어요. 그냥 재즈하라고요, 재즈.”

그 중 하나가 말했다.

“투쟁이 듣고 싶으면 연설회를 가야지, 페스티벌엔 음악을 들으러 오는 거라고.”

나는 천천히 그들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투쟁을 연주해. 내가 피아노를 두드릴 때마다, 그건 내 조상들이 땅을 치며 울부짖던 소리야.

네가 듣고 있는 건, 음악이 아니라 고통이야.”

그들은 잠시 움찔했지만, 이내 비웃음을 감추지 않았다.

나는 미소도 짓지 않은 채 돌아섰다.

“너희가 날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곤 생각도 안 해.

하지만 무대 위에선 내 것이야. 무대 위만은.”

담배 한 개비가 다 타들어가고 있었다.

나는 그 재를 손가락으로 톡 털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어쩌면 나는 유럽에서도 평화를 찾지 못할 거야.

그럼에도 여긴, 미국보단 낫다.

여긴 적어도, 내 분노를 가짜가 아니라고는 인정해 주니까.

나는 조용히 무대로 돌아갔다.

조명이 켜지기 전, 단 하나의 말이 내 머릿속에 울렸다.

“나는 가수가 아니야.

나는 혁명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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