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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티카카 Feb 14. 2023

수영- 겨울에도 수영해요?

올 겨울은 유난히 추웠다. 몸이 움츠려 드는 겨울.  집을 나서는 것부터가 큰 용기이자 도전이다. 자전거를 탔다면 특히 더.


"겨울인데 수영 쉬는 게 어때? 자전거 위험하잖아." 남편이 묻는다.

"지금 쉬면 영법 다 잊어버릴 것 같아. 다니긴 할 건데 걸으면 너무 멀어서 고민이네"

말이 통하지 않자 남편은 질문을 바꿔 다시 묻는다.

"빙판에 넘어져서 팔이라도 부러져봐. 수영 못할걸?"

수영을 못한다고? 정신이 바짝 든다. 뼈가 붙으려면 한 달은 걸릴 텐데 그럼 접영 진도는 물 건너간다. 그건 안되지. 남편 설득에는 꿈쩍도 않던 나는 수영 못 간다는 이야기에 단번에 자전거를 포기한다. 허무한 남편의 표정.




자전거로 20분이 안 걸렸던 길은 도보로 30분이다. 인도에 살얼음이라도 끼면 시간이 40분까지도 늘어난다.

눈이 많이 오던 날 열심히 걸어 수영장에 도착하니 눈사람이 되어있다. 모자며 어깨며 심지어 가방까지 눈이 잔뜩 쌓여 있다. 체육관 입구에 도착해 몸을 터니 주변에 눈발이 날린다. 전신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꼭 부르르 털 터는 강아지 같다. 다를게 뭐람. 나는 개처럼 요란스럽게 눈을 털어내고 수영장으로 입장한다.


겨울은 탈의하는데만 한세월이다. 장갑과 모자 롱패딩을 벗으면 니트와 내복이 기다린다. 두꺼운 양말을 끙하고 벗어내면 사물함은 옷으로 가득이다. 이렇게 벗어버릴 거 멀 그리 껴입었나 싶다. 방금까지 펭귄 같았던 나는 무거운 옷을 뒤로하고 홀가분해져 샤워실로 입장한다.


샤워장은 따뜻하다. 빈자리를 찾아 익숙하게 샤워볼을 꺼내고 씻을 준비를 하는데 어라? 샤워젤이 나오지 않는다. 샴푸 통도 마찬가지다. 흔들어 봐도 소용없다. 며칠 전 가득 채워 놨는데 왜 이럴까 싶어 입구를 자세히 들여다보니 샤워용품들이 모두 얼어있다. 어플 속 기온은 영하 15도였다. 걸어오는 40분 동안 다 얼어버렸다 해도 이상하지 않을 날씨다.


따뜻한 물로 샴푸통을 녹이며 짜보니 셔벗처럼 변한 샴푸가 사각사각 얼음이 되어 나온다. 얼음 샴푸로 머리를 감으니 뒤통수가 시원하다. 얼얼하게 차가운 샴푸 거품을 헹구며 생각한다.

'이렇게 까지 운동을 해야 하나..'

누가 시켜서 했다면 시킨 사람과 절연할 일을 스스로 하고 있다. 뿌듯한 감정을 넘어 내가 낯설다.


수영장은 뽀얀 수증기가 가득이다. 외부와 온도차가 많이 날수록 수증기는 진해진다. 안개 사이로 준비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나 혼자 부지런한 것 같아 뿌듯해진 마음은 다른 회원들 모습에 겸손해진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겨울에도 운동하고 있었구나. 내가 모르던 신세계에 발을 들인 기분이다.


물속에 들어가기 전 발끝을 살짝 대보니 차갑다. ‘딱 좋네.’ 만족스러운 웃음이 난다. 처음에 적응 안 되던 차가운 물을 지금은 반긴다. 두 바퀴만 돌아도 몸이 뜨끈해지는 걸 알기 때문이다. 살짝 닭살 돋는 물은 운동하기에 딱 좋은 온도다. 이걸 아는 걸 보니 수영 좀 해본 것 같아 우쭐해진다.


수영장은 여름보다 한산하다. 그래서인지 선생님들도 한결 여유로운 모습이다. 회원들 자세도 하나하나 봐주시고 농담도 자주 하신다.


레일 끝에서 차례를 기다리며 위를 올려다보니 창문 밖으로 패딩입은 사람들이 지나간다. 헉헉 대며 운동을 하다 보니 두껍게 입은 사람들보다 수영복 하나 걸친 우리가 더 뜨겁다. 겨울 운동의 묘미. 쬐그마한 내 열정이 돋보기로 본 듯 확대된다.  


© mikafinland, 출처 Unsplash



집으로 돌아오는 길. 꼼꼼히 말렸다 생각한 머리카락이 순식간에 얼어버린다. 똑 끊어질 것 같은 머리 위에 모자를 쓰고 집으로 돌아온다. 체육관 출구에서 훅 불어오는 추위는 5분 만에 극복된다. 열심히 걷는 사이 마스크 안은 입김으로 축축해지고 패딩 안은 후끈해진다. 장갑 낀 손을 주머니에서 빼고 핫둘핫둘 열심히 흔들며 걷는다.


겨울의 공기는 늘 새벽 같다. 차분하고도 쨍하다. 전기장판에 붙은 배가 무거워 힘겹게 일어났을 겨울아침을 개운하게 시작한다. 아침에 충만한 내 시간을 보냈으니 아이들과 지지고 볶는 방학도 가뿐히 지나갈 것이다.



'겨울에 무슨 운동이야?' 했던 나는 '수영은 역시 겨울이지.' 하며 쉬지 않고 운동 중이다.
언 땅속에 웅크리고 봄을 기다리는 씨앗처럼 나도 지하 수영장에서 열심히 수련하고 있다. 늘지 않아 속상한 겨울 같은 시간이 끝나면 새싹도 피고 꽃도 피는 봄처럼 내 실력에도 따뜻한 바람이 불길 바라면서.


아침 9시 20분. 어김없이 하얀 입김을 뿜으며 씩씩하게 수영장으로 출발해 본다.

영하의 날씨가 대수겠느냐. 동장군아 비켜라.

성실한 물개님 수영장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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