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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강인규 Aug 03. 2018

핫쵸코 가게 #001

달콤함의 역사

"어? 여기 바뀌었네?"

시하는 저도 모르게 끙하는 소리를 내며 말했다.

"원래 뭐였는데?"

준성이 물었다.

"핫쵸코 가게..."
"핫쵸코?"
"아니, 그게 내가 잘 알던 커피전문점이 있던 자리인데..."
"커피전문점? 아직도 그런 게 있어?"

 이게 무슨 대단한 이야기라고 설명을 하나? 첫 문장을 끝내기도 전에 시하는 의욕이 꺾여 버렸다. 그래서 우물쭈물 말을 끝내버렸고 준성은 그다지 궁금해하지 않았다.


 시하와 준성은 종합운동장에서 농구대잔치를 보고 돌아가던 길이다. 대학 동기인 그들은 자신의 학교를 응원하느라 소리도 양껏 질렀고 그 덕분에 목도 말랐다. 5분 거리면 커피숍 열댓 개는 즐비했지만, 시하는 괜스레 농구 이야기를 하면서 한 블록을 더 걸었다. 그렇게 도착한 '핫쵸코 가게'는 렌터카 사무실로 변해 있었던 것이다.

"목마르다. 아무 데나 들어가자."

준성의 인내심도 쌀쌀함 앞에서는 보잘것없었다. 무엇보다 편안하게 앉아서 담배 한 모금 빨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둘은 가장 가까운 아무 커피숍에 들어갔다. 그리고 주문한 게 채 나오기도 전에 담뱃불을 당겼다. 시하는 깊게 마신 연기를 천장에 내뱉으며 핫쵸코 가게 이름을 떠올리려 노력해 보았다.

'그게 뜨레모아였던가?'


 시하는 기억력이 좋은 편이 아니다. 기억력뿐 아니라 학교 다닐 때 그다지 좋은 학생도 아니었다. 학생 시절 길거리를 걸으며 담배를 피곤했고 그것은 동네의 작은 소동 거리가 되기 일쑤였다. 어른들은 혀를 끌끌 차는 일이 많았고 좀 더 적극적인 사람들은 시하를 불러 세우기도 했다. 그런 소동에 휘말리는 것은 시하로서도 그다지 반가운 일은 아니었다. 굳이 자신이 잘못했다는 생각은 없었다. 다만 새벽에 신문과 우유를 같이 돌리던 그였기에 소동은 피곤하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피곤함은 시하가 가장 피하고 싶은 감정 중에 하나였다.


 그런 시하가 달콤함에 빠진 것은 신문보급소에서 커피믹스 하나를 훔쳐 나오던 어느 겨울 새벽의 일이다. 분주히 전단지를 신문 사이에 끼워 넣던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보급소장이 후후 불어 날리던 커피의 김이었다. 앞으로 두 시간은 더 신문과 씨름을 해야 하는 그에게 커피의 김과 향기는 유혹이었다. 저거 하나 먹으면 배가 부를 것 같다. 무엇보다 단내가 참기 힘들다. 배달을 나갈 시간, 꾸러미를 지고 커피믹스를 훔치기란 여간한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능숙한 도둑처럼 커피믹스 한 봉지를 주머니에 쑤셔 넣고는 밖으로 나섰다.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한 손으로 커피믹스를 꺼냈다. 입으로 끝을 주욱 찢어 입안에 아무렇게나 털어 넣었다.


 쓰다 그리고 달다.
 

 커피를 마신 시하의 입에선 하얀 김이 나온다. 보급소에서 보았던 바로 그 달콤한 김이다. 뜨거운 물과 일회용 종이컵이 있었더라면 훨씬 고상하게 커피의 맛을 즐길 수 있었으련만 시하의 첫 경험은 미숙했다. 하지만 그 단 한 번의 짜릿함이 평생 달콤함 중독으로 살게 할 줄은 그 겨울 새벽 그는 몰랐다.


 시하는 그 뒤로 커피자판기 전문가가 되었다. 어디에 몇 개의 자판기가 있는지 그리고 어느 자판기가 설탕 비율이 높고 크림 비율이 적당한지 모두 알았다. 하루에 열 잔 정도면 세 끼 식사를 하지 않아도 좋았다. 하루 천 원이면 식사는 해결하는 셈이다. 친구 녀석들은 일과를 마치면 술을 사들고 벌집으로 돌아오는데, 그는 커피믹스 몇 봉지를 가지고 돌아가곤 했다.


 시하가 중학생이 되었을 때 커피전문점이라는 것이 생겼다. 이성적으로 보면 도저히 성공할 수 없는 망해야만 하는 가게였다. 자판기 커피가 100원이었고 다방커피가 1000원이었다. 그런데 가장 싼 원두커피가 1500원이었다. 게다가 원두커피는 지독히도 썼다. 커피 중독자인 시하 마저 '이거 곧 망하겠네'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커피전문점은 대성공이었다. 망할 거라고 예언했던 시하마저도 매일 커피전문점을 들락거리게 되었으니 그 자신도 신기한 노릇이었다. 거짓말 조금 보태 거리 상가마다 2층은 전부 커피전문점이 되었다. 특히 중, 고등학교 근처 상가가 더욱 그랬다. 가게에 들어가면 중고등학생들이 테이블마다 세, 네 명씩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고 그들 모두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그렇다. 커피전문점은 중고등학생들의 흡연 전문점이었다. 그래서 1층 커피전문점들은 모두 망한 것이다.


 학생들에게 커피는 그저 담배를 피기 위한 입장료 같은 것이었다. 왜냐면 원두커피는 너무 쓰니까. 학생들끼리는 담배 피운 재떨이를 우려서 나온 물이 커피가 아니냐는 괴담이 퍼지기도 했다. 만약 신비한 레버를 꾸욱 눌러 커피를 우려내는 모습을 눈앞에서 보여주지 않았다면 다들 담배 잿물이라고 믿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학생들은 상관하지 않았다. 실제로 담뱃재를 우린 물이라도 다녔을 것이다. 흡연을 할 수 있고 삐삐를 받을 수 있는 이상.

 

 커피전문점의 또 다른 성공 비결은 수신전용전화와 삐삐였다. 커피전문점에는 테이블마다 전화기가 놓여있었는데 그것은 받을 수만 있고 걸 수는 없는 전화였다. 중앙 카운터에서는 '6984 호출하신 분'이라고 번호를 외치곤 한다. 그 소리에 수업시간에는 한 번도 손을 안 들어봤을 인상들이 번쩍번쩍 손을 든다. 그러면 그 인상들이 앉은 테이블 전화기가 울리고 그들은 신나는 통화를 시작한다.


 당시의 삐삐는 작고 불친절했다. 삐삐의 작은 창에 아무런 말도 없이 몇 개의 숫자만 덩그러니 찍힌다. 그 의미는 간단하지만 강압적이다. '너! 이 번호로 전화해!' 그러면 다들 공중전화로 달려가 기다란 줄에 동참을 한다. 그러니 삐삐는 받는 것보다 치는 것이 더 유리했다. 커피전문점에서 다리를 꼬고 앉아 전화를 받고 있는 수 십 명의 독재자들의 모습 위로 공중전화에서 뒷사람의 눈치를 보며 통화를 하는 수 십 명의 그림자가 겹쳐 보였다. 독재자들을 다 모아 놓은 시장통이 있다면 딱 커피전문점의 모습이었을 것이다.


 문화는 사람을 가르는 국경선이 된다. 아이들은 오직 담배와 삐삐를 위해 쓴맛인 커피에 자신들을 길들여 갔다. 반면 둘둘셋 다방커피의 달콤함에 익숙했던 어른들에겐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맛이었다.


그렇게 신문화의 국경에서 어른들이 밀려난 빈자리에 아이들은 자신들만의 나라를 선포했다.

 시하는 그 둘의 국경선에 걸쳐져 있는 난민 같은 존재였다. 시하에게 커피는 쓰고 단 것이었기 때문이다. 매일 커피전문점을 다니는 것은 시하에게는 그저 어른들과의 소동을 피하기 위한 임시 망명 같은 의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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