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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 대한 통찰

by sleepingwisdom

나는 놀라서 잠에서 깨었다.

숨쉬기는 여전히 불편해서 죽을 듯이 심장에 통증이 몰려왔다.

얕게 아주 얕게 1초도 안되게 숨을 쌕쌕거리며 쉬고 있었다.

여름 한 낮의 개가 혀를 내밀고 쌕쌕거리는 숨소리보다도 더 얕고 빠른 호흡이었다.


기억을 되살리는 일은 때로 고통스럽다. 하지만 어떤 기억은 떠올릴 때마다 기쁨을 주고, 또 어떤 기억은 아픔을 준다. 사고의 순간을 되짚는 것은 분명 고통이지만, 그 과정을 통해 새로운 시각과 깊은 통찰을 얻기도 한다.


죽어도 이상할 것 없는 사고였다.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겼고, 지금 생각해도 생과 사는 너무나 가깝다. '생사일여(生死一如)'라는 말처럼, 삶과 죽음은 하나처럼 붙어 있다. 매일 죽음과 함께 삶을 살아가는 것. 죽음을 두려워한 적은 있었지만, 이토록 현실로 다가와 가깝게 느껴진 적은 없었다. 이제는 하루하루, 매 순간을 온전히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안다.


죽음의 문턱까지 가봤다고 해서 죽음을 다 아는 건 아니다. 많은 사유와 통찰을 했다고 해서 잘 죽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면 '잘 죽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죽음을 예정할 수는 없지만, 언젠가 다가올 현실이라는 건 분명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대비하고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생각해 볼 수 있다. 막상 죽음의 문턱에 다다르면 유서를 남길 기력조차 없을 테니, 정신이 또렷하고 육체가 건강할 때 미리 준비하는 것이 좋다. 지금 이 순간, 혹은 내일 아침 눈을 뜨지 못하더라도 후회 없는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죽음을 특별히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결국, 잘 죽기 위해서는 잘 살아야 하는 것이다.

'잘 산다는 것'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몇 가지 공통점은 있다. 건강하게 사는 것. 그리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것. 물론 욕망의 크기는 다르고, 하고 싶은 일이 늘 실현 가능한 건 아니다. 하지만 욕망을 조율하며 해야 할 일을 해나가는 것. 집착하지도, 그렇다고 모든 걸 놓아버리지도 않으며 삶을 살아가는 것. 삶의 구성 요소는 건강, 돈, 가족, 일, 취미, 관계 등 다양하다. 이 모든 것을 잘하면 좋겠지만, 한두 가지만 잘해도 충분히 좋은 인생이다. 설령 운이 따르지 않거나 여건이 안 되어 한 가지도 잘되는 것이 없더라도, 그 과정 속에서 배움이 있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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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이란 때로 조작되거나 미화되기도 한다. 수술에서 깨어난 후의 기억은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내 의식은 순간순간 또렷했기에 많은 것이 남아 있다. 만약 살아난다면 이 모든 것을 꼭 글로 정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회복 중에도 어떻게 풀어갈지 여러 번 궁리했지만, 뾰족한 수는 없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저 생각나는 대로, 최대한 시간 순서에 맞춰 이 이야기들을 풀어내려 한다.


이 이야기가 어디서 끝이 날지는 알 수 없다. 사고가 난 지 8개월이 지났지만, 허리뼈 부근 근육은 여전히 통증이 있다. 어깨뼈는 어긋나게 붙어 재활 중이고, 가동 범위가 얼마나 나올지도 예측할 수 없다. 최소한의 움직임 외에는 활동도 쉽지 않다. 날이 흐리거나 비가 오는 날이면 부러진 뼈들의 통증은 배가 되고, 밤에는 통증으로 잠을 설치기 일쑤다.


몸무게가 많이 빠져 몸을 움직일 때마다 뼈가 부딪히는 소리가 난다. 아들이 샤워를 도와주다 내 엉덩이를 보더니 깜짝 놀라 엄마에게 "아빠 엉덩이가 없다"고 속삭였다고 한다. 근육이 거의 없는 상태다. 더 이상 손실되지 않도록 누워서라도 브릿지 운동과 펠덴크라이스로 허리 근육과 골반을 풀어주고 있다.


몸 전체를 이완하며 느껴줄 때 통증이 덜하다. 아직 얼마나 더 시간이 흘러야 치유될지 알 수 없지만, 노력해주는 가족, 특히 아내의 수고를 덜어주기 위해 희망을 잃지 않고 재활을 한다. 통증이 심한 날에는 몸의 움직임이 위축되고 더 안 움직이려는 경향이 있다. 누워서 앉을 때 뼈 소리와 삐걱대는 소리와 함께 통증이 몰려온다, 멀쩡하던 왼쪽 팔도 고장이 났다. 오히려 가동범위가 더 적어지고 통증이 심하다.


한 쪽으로만 누워있거나 혹은 앉으려고 할 때 그 쪽만 사용했다. 사고로 인한 스트레스와 한 쪽의 과도한 사용이 결국 양팔을 정상적으로 기능하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사고 나기 전부터 아마도 습관적으로 몸을 움츠리고 긴장하는 생활을 하고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된다. 이런 패턴이 습관화되면 무의식에 각인되어 치유가 늦어질 것이다. 그래서 앞으로 더욱 관찰과 이완의 시간을 가지며 긴장하고 있는 무의식을 계속 지우는 연습을 해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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