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이 내 몸을 꽉 붙잡고 있었다.
해변은 바로 저기, 손만 뻗으면 닿을 것 같은데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물속에서 몸을 움직여 해변으로 향하려 했지만,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다.
몸은 바다에 붙잡힌 채 점점 더 깊은 곳으로 끌려갔다. 힘이 빠져나가고, 숨이 차고,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팔꿈치와 발끝에서 보내는 고통의 신호는 점점 더 강렬해졌다.
‘여기서 죽는 건가!’
‘가족들에게 작별 인사도 못하고 여기서 죽는구나!’
‘이렇게 다들 사고로 순식간에 죽어가는구나!’
이런 일이 나에게 발생할 줄이야?
사고는 남의 일이고 뉴스에나 나오는 이야기인 줄 알았다.
어느새 당장 눈앞에 닥친 나의 일이 되어있었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 오직 바다에 끌려 들어가는 느낌만이 끊임없이 밀려왔다.
파도가 밀려올 때마다 몸은 그 거대한 흐름에 휘말렸다.
해변 쪽으로 다가가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기도 했지만, 곧 다른 파도가 나를 더 멀리 밀어냈다.
더 이상 움직일 힘도 없었고, 완전히 고립된 기분이었다.
내 몸은 납덩이처럼 무거워졌다. 물속에서 발을 움직여도 더 이상 속도가 나지 않았다.
실제로 움질 일수도 없었을 것이다.
척추가 부러져서 그냥 미세한 발버둥만 가능했을 것이다.
어느덧 내가 떠밀려 온 곳은 또다시 최악의 장소였다.
해변 끝부분, 너울성 파도가 끝나는 가장 위험한 지점.
바다와 해변이 교차하는 가장 치명적인 곳.
'알고 있었는데... 왜 여기로...'
그걸 알고 있었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또다시 큰 파도가 온다면 영락없이 죽을 운명이었다.
모든 것을 운에 맡겨야 했다. 큰 파도가 오면 죽을 것이고,
작은 파도가 오면 나를 해변으로 데려다줄 것이었다.
파도가 하나씩 다가올 때마다, 나는 그저 기다리며 몸을 움직이려 했다.
그 작은 움직임조차 버거웠다. 해변가가 가까운 거리일 텐데 한없이 멀게만 느껴졌다.
고작 5미터 정도도 안 되는 거리가 몸의 뼈가 이곳저곳 뿌려져서 옴짝달싹 하지 못하고 있었다.
물속에서 발버둥 쳤다. 파도가 나를 집어삼킬 듯 밀어붙였다.
허겁지겁 손과 발을 휘저으며 해변 쪽으로 다가가려 했지만, 내 몸은 하나의 물체처럼 휩쓸려갔다.
손과 발을 제대로 움직일 수도 없었을 텐데 내 의식은 계속해서 모래사장으로 향했다.
물속에서 몸을 뒤척이며 간신히 해변으로 이동하려는 시도는 파도의 세기에 밀려 조각조각 부서지는 듯했다.
숨이 가빠지고, 머리가 핑핑 돌았다. 몸은 점점 더 무거워지고, 시야는 불투명해졌다.
물과 모래가 입과 코를 막아 숨을 쉴 수 없었다.
나는 그저 본능적으로 몸을 움직였다.
죽음은 아주 가까운 곳에 있었다. 하지만 살아야 했다. 그 생각만을 붙잡고 있었다.
'여기서 살아나 나가려면 어떡해야 할까?'
‘정신을 차려야 한다. 이럴수록 몸에 힘 빼고 침착해야 한다.
침착해야 한다. 괜히 헛심을 빼면 허둥거리다가 여기서 이렇게 죽게 될 것이다.’
내 안의 질문하고 자와 대답하는 자가 각각 존재했다.
‘죽지 않으려면 침착해야 해’ ‘겁을 먹거나 급하게 발버둥 치면 에너지 고갈로 죽게 될 거야.’
이 생각을 되뇌며, 또 한 번 힘을 냈다.
몸은 거의 움직일 수 없었지만, 위급한 상황에서 내 몸과 의식은 스스로의 힘으로 나를 구할 방도를 찾아내고 있었다.
이것은 내 생각이나 이성의 힘이 아니다.
그런 상황에서 이성은 작동할 수가 없다.
사고도 제대로 할 수 없다. 스스로 본능이 튀어나와 나에게 말을 걸고 답해주고 있었다.
어떻게 그런 상황에서 생각을 할 수 있겠는가?
그 순간,
몸이 저절로 기억했다.
수영을 좋아했고 바닷가를 좋아했기에 기본적으로 숨을 참고 내쉬는 방법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여러 호흡법을 여러 수련단체를 전전하며 배운 것이 그나마 이런 절체절명의 순간에 도움이 되었다.
위험한 순간이 닥쳤을 때, 나는 자동으로 그동안 익혀온 호흡법을 떠올렸다.
그것은 어쩌면 머리로 생각하기 전에 몸이 기억하는 자동반사 같은 것이었다.
상처와 후회만 남길 줄 알았던 여러 수련단체에서 익혔던 호흡법이 이곳에서 쓰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파도가 올라오면 숨을 참고, 파도가 내려가면 천천히 숨을 내뱉었다.
마치 바다와 한 몸이 되어 흐름에 자신을 맡겼다.
거대한 물벽이 덮쳐왔다.
나는 온몸으로 파도의 리듬을 느꼈다.
마치 거대한 심장박동처럼, 파도에도 호흡이 있었다.
물을 먹지 않으려고 숨을 참았다.
그리고 파도가 잔잔해지는 소리가 나면 다시 숨을 길게 들이쉬었다.
중간중간에 내 의지와 상관없이 모래와 물이 기도를 타고 폐와 위로 흘러들어 갔다.
물살이 거세어 숨을 참아도 파도의 거대한 압력이 내 코와 입을 뚫고 밀려들어온 것이다.
그래도 계속 밀물과 썰물, 파도의 고저의 맞추어 호흡을 하며 탈출할 기회의 시간을 엿보았다.
나는 더 이상 파도와 싸우지 않았다.
대신 그보다 그냥 파도 그 자체가 되어야 했다.
완벽한 동화만이 파도를 가장 잘 느끼며, 파도 자체가 되어 나를 해변까지 데려가줄 것이기에...
지금 생각해도 어디서 그런 지혜가 불쑥 나왔는지 신기할 뿐이다.
나는 계속 속으로 그 말을 되뇌었다.
파도의 움직임을 따라 내 몸의 움직임을 일치시키기 위해 최대한 집중했다.
숨을 참으면서도 파도의 움직임을 느끼고, 그 흐름에 맞춰 내 몸을 맡겼다.
호랑이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차리면 살 수 있다는 말이 그런 것일 테다.
이상했다.
몸은 여기저기 부서져가고 있는데, 마음은 점점 고요해졌다.
고통과 평온이 동시에 밀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