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의 공기는 상쾌하고, 바다는 고요했다.
나트랑의 새벽은 언제나 조용했다. 세상이 아직 잠들어 있는 시간, 바다만이 깨어있어 끝없는 속삭임을 이어갔다.
해변을 향해 걸을 때마다 발끝으로 따뜻한 모래가 스며드는 느낌이 발끝에서부터 온몸을 타고 흐르는 듯했다. 모래가 맨발을 간질이며 전해오는 감각이 온몸을 깨웠다.
그날은 미세하게 흐린 하늘 속에서도 바다는 여전히 맑고 깨끗했다. 해수욕을 즐기려면 아침이 가장 좋은 시간이었고, 이미 몇 명의 사람들이 바다에 들어가 수영을 하고 있었다.
베트남에 온 지 벌써 두 달. 처음엔 낯선 땅에서의 적응이 쉽지 않았지만, 이제 이 아침에 해수욕하는 일상은 내 삶의 일부가 되어버렸다.
나트랑은 3월에 접어들면서 점점 더 더워진다. 낮에는 그늘을 찾아도 불편할 정도로 뜨거운 공기가 내 몸을 감싼다. 그래서 나는 대부분 아침과 저녁을 활동 시간으로 정해 놓았다. 뜨거운 낮을 피해 새벽과 저녁에만 바다를 찾는 것이 습관이었다.
그날도 나는 일찍 해변에 나갔다. 해가 뜨기도 전에, 바다의 차가운 공기를 마시며 수영을 즐길 준비를 했다. 물속에 발을 담그는 순간, 모든 것이 달라졌다. 바다에 들어서자, 파도는 부드럽게 해안선을 따라 밀려들었다. 공기는 상쾌하고, 바닷물도 시원했다.
바다는 내게 완전한 자유를 주었다. 육지에서 느끼던 모든 무게들이 물속에서는 사라졌다. 중력도, 시간도, 걱정도 모두 바닷물에 녹아들어갔다.
아침의 바다는 늘 그렇듯 평화로웠다. 바다 속에 들어가면, 그 속은 온전히 나만의 공간이 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물결이 잔잔히 일렁이며, 나는 그 속에 몸을 맡겼다. 파도가 내 몸을 감쌌다. 부드럽지만 확고한 힘으로 나를 받아주었다.
'이것이 평화구나.'
수영을 하면서도 몸이 점점 더 가벼워지고, 세상에서 나만 존재하는 듯한 느낌을 가질 수 있었다. 사람들 사이에서 벗어나, 오직 바다와 내 몸만의 리듬으로 움직였다.
파도는 부드럽게 밀려왔지만 그 속에는 항상 어느 정도의 힘이 있었다. 그 힘이 내 몸을 밀어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내 몸을 지탱해주는 듯했다. 물속에서 움직이며 나는 몸과 마음이 점점 더 편안해지고 있다는 걸 느꼈다.
수평선 너머로 희미하게 떠오르는 태양이 바다를 황금빛으로 물들이기 시작했다. 나는 그 빛 속에서 천천히 헤엄쳤다.
해변가에 사람들이 적었기에 나는 자연스럽게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주변을 돌아보니, 내가 바다에 들어오기 전에 있던 몇 명의 사람들은 이미 떠나고 보이지 않았다.
바다가 주는 고요함 속에서, 나만이 이 자리에 남아 있다는 사실이 조금 묘한 느낌을 주었다. 하지만 나는 그 고요함을 방해하지 않으려 했다. 오히려 그런 고요한 순간에 내가 존재하는 것에 대한 기쁨을 느꼈다.
수영을 즐기던 중, 조금씩 해변가를 돌아보았다. 점점 고요함이 더해가고 있었다. 내가 수영을 즐기던 그 시간에도 바다의 리듬은 여전히 부드럽고 평화로웠지만, 해변가는 점점 더 한적해졌다.
나는 내가 수영하는 동안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알 수 없었다. 어쩌면 너무 빠르게 시간이 흐른 것일지도 모른다. 해변의 모래사장 위에 사람들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모두 사라지고 나 혼자만 바다에 떠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처음에는 아무런 의심 없이 바다에 몸을 맡기고 있었다. 물속에서 흐르는 시간은 평화롭고, 파도는 그저 부드럽게 밀려왔다. 나의 몸은 그 리듬을 따라 움직였고, 해변은 점점 더 멀어졌다.
언제부터였을까. 해변이 점점 멀어지고 있다는 걸 깨달은 건.
돌아보니 모래사장 위의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다. 야자수들이 성냥개비처럼 작아 보였다.
'언제 이렇게 멀리 왔지?'
바다 속에서 나만의 세상에 빠져드는 느낌이 들었고, 나는 그 평화로움에 만족하고 있었다. 하지만, 점차 그 고요함이 이상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아무리 마음을 놓으려 해도, 내 안에서 뭔가 다른 감각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엔 별일 아니라고 생각했다. 평소보다 조금 더 나간 정도겠지. 하지만 헤엄쳐서 돌아가려는데도 해변은 더 멀어지는 것 같았다.
바다가... 나를 끌고 있었다.
보이지 않는 손이 내 발목을 잡아당기는 듯한 느낌. 아무리 팔을 저어도 제자리에서 맴도는 것만 같았다.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침착해. 당황하지 마.'
나는 물속에서 더 이상 깊이 들어가지 않으려 했다. 해변가와 너무 멀어지지 않게 하려고 의도적으로 해안가로 헤엄을 쳤다.
하지만 마음과 달리 몸은 긴장하고 있었다. 숨이 가빠졌고, 팔다리에 힘이 들어갔다. 그럴수록 물은 더 무겁게 느껴졌다. 바닷가에 있는 것이 더 이상 편안하지 않았다.
내 몸은 점점 해변으로 가까워지고 있었다. 발이 닿은 모래의 감촉은 예전과 같았지만, 그 느낌이 낯설게 다가왔다. 왜 내가 이렇게 해변으로 서둘러서 다가가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천천히 가도 될 일이었다. 바닷가에 혼자 있다는 막연한 불안이나 두려움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일찍 해수욕을 끝낼 요량이었나보다.
몸이 아닌, 다른 무언가가 나를 끌어당기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불안감이 점점 커져갔지만, 나는 바닥이 발에 닿자 천천히 해변가 모래사장을 통해 걸어갔다.
그리고 결국, 나는 해변가에 약간 떨어진 지점에 다다랐다.
너울성 파도가 부서지는 지점.
해변으로 향하려 애쓰는 동안, 나는 어느새 위험한 곳에 다가와 있었다.
그곳은 바다와 모래사장이 만나는 지점이었다. 너울성 파도가 끝나는 곳으로, 그곳에선 파도가 직선으로 떨어지며 매우 위험했다.
물의 색깔부터 달랐다. 깊고 푸른 바다에서 탁하고 하얀 거품이 일렁이는 곳으로 바뀌어 있었다. 바닥이 가팔라지면서 파도의 성질도 완전히 달라졌다. 바다가 화를 내고 있었다.
파도가 큰 물살을 일으켜 사람을 쉽게 밀어내고, 해변으로 몸을 내동댕이 칠 수 있는 곳이었다. 해변가로 다가올 수록 파도를 피해 빨리 그곳을 빠져 나와야 한다. 그래야 안전하게 모래사장으로 나갈 수 있다.
나는 바로 그곳에 서 있었다. 그런데 내가 왜 그 시점에 그곳에 있는지 알 수 없었다.
평상시에 아무리 철저하게 대비를 해도 재난은 피할 수 없는 일이 될 수도 있다. 찰나의 방심이 나를 죽일 수도 있는 그런 곳에 내가 서 있게 된 것이다.
한 달째 아침 저녁으로 해수욕을 해도 큰 파도도 없었다. 또한 매번 해수욕을 끝내고 나올 때 뒤의 파도를 주시하며 파도가 가장 잔잔할 때 걸어 나오곤 했다.
하지만 내가 스스로 자초한 사소해 보이는 실수가 나를 사지로 몰고 있었다.
바로 해변가로 나갈 바로 그 시점에 그렇게 큰 파도가 덮치리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마지막 관문같은 그곳에서 그 거대한 파도를 마주할 줄이야!!!
세상이 정지한 듯했다. 그 거대한 물의 벽 앞에서 나는 한낱 먼지에 불과했다. 도망칠 시간도, 피할 곳도 없었다.
파도는 하늘을 가렸다.
그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