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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과 촉

배움과 증득

by sleepingwisdom

횟집에서 회를 먹었다. 그냥 맛있다는 정도가 아니었다.

한 점을 입에 넣는 순간, 아무 말 없이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건 기술이라기보다 감각이었다. 설명할 수 없는 완성도.

칼질 하나, 회의 결이 흐르는 방향, 입에 닿는 질감까지 섬세하게 통제되어 있었다.


말을 건넸다.

“이렇게까지 다르기 쉽지 않죠. 정말 대단하세요.”

사장은 겸손하게 웃으며 말했다.

“참치 손질은 간단해 보여도, 제일 어렵습니다. 겉은 똑같은데 속은 제각각이에요.

지방이 어디에 몰렸는지, 손에 잡아봐야 알아요.

그날그날 감이 달라요. 손으로 느껴야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이어 조용히 말했다.

“가르쳐드린 제자들이 많습니다. 그대로 따라해도 이상하게 그 맛은 안 나요.

형태는 흉내 내도 감은 못 따라오더군요.

손끝으로 느끼는 건 설명이 안 됩니다.

제가 말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 그 사람 손이 알아야 하거든요.”


그 말이 마음에 깊이 박혔다.

형태는 흉내 낼 수 있지만, 본질은 따라 할 수 없다.

그 사람의 시간, 감각, 집중, 손끝에서만 나오는 것이 있다.


그 순간 오래전 기억이 하나 떠올랐다.

서울 노원에서 살던 시절, 자주 가던 횟집이 있었다.

한 군데밖에 없었고, 늘 맛이 좋았다.

그 집 회는 계절이 바뀔 때마다 감각도 달랐다.

겨울에는 차고 단단했으며, 여름에는 조금 더 부드럽고 유연했다.

입에 넣으면 그날의 바다와 손의 결심이 함께 느껴졌다.


그 집이 유명해지자 전국에 지점을 냈다.

이름도, 메뉴도, 인테리어도 그대로였다.

하지만 맛은 달랐다. 회의 형태는 같았지만 결이 없었다.

한 점을 먹고 나면 알 수 있었다. 손이 다르다는 걸.

기술이 아니라 감각의 차이.

본점에 있던 그 손끝의 감이, 어디에도 없었다.


그건 단순한 숙련의 문제가 아니었다.

감각은 설명되지 않는다. 복제되지 않는다.

손끝이 기억하는 감정, 몸이 알아채는 흐름, 본인의 시간으로만 쌓아올린 직관.

그건 배울 수 있는 게 아니라, 느껴야 할 일이었다.


이 생각은 어느 고사와도 닿아 있다.

중국 전국시대, 위나라 왕이 책을 읽고 있을 때 바퀴를 깎는 노인이 말을 걸었다.

“폐하께서 읽으시는 책은 누구의 말씀입니까?”

왕은 답했다. “성인의 말이다.”

노인이 다시 물었다. “그 성인은 지금 살아 계십니까?”

왕은 대답했다. “아니, 이미 죽은 자다.”

그러자 노인은 말했다. “그렇다면 폐하께서 읽는 것은 죽은 자의 찌꺼기에 불과합니다.”


왕이 분노하자, 노인은 담담히 이야기했다.

“저는 바퀴를 깎아온 지 수십 년입니다.

세게 치면 헐겁고, 약하게 치면 들어가지 않죠.

그 미묘한 힘 조절은 손끝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제가 아들에게도 가르쳐보려 했지만, 말로는 전해지지 않더군요.

그래서 저는 그 감각을 평생 혼자 감내하며 다듬어왔습니다.

성인의 말도 결국은 누군가의 감각을 글로 옮긴 것입니다.

그 감각은, 직접 느끼지 않으면 결코 알 수 없습니다.”


감각은 말로 전달되지 않는다.

이해는 될 수 있어도, 내 것이 되지는 않는다.

형태는 모방할 수 있지만, 본질은 그 사람 안에서만 자란다.

그것이 삶에서 만들어진 감이다.


요즘은 많은 것들이 빠르게 전해진다.

기술은 유튜브로 배우고, 지식은 검색하면 된다.

하지만 손끝에서 느끼는 감은 검색되지 않는다.

그건 오직 시간 속에서 만들어진다.

같은 도구를 써도, 같은 방식으로 해도,

그 사람의 감이 없다면 결과는 다르다.


진짜는 손끝에 있다.

그 손끝은 수많은 실패와 집중, 반복과 미세한 차이를 느끼려는 노력 끝에 깨어난다.

그래서 어떤 일에서든 결국은 자기 감을 길러야 한다.

남이 어떻게 하는지를 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본인이 느끼고, 본인이 그 안에 들어가야 한다.


감각은 고유하다.

그 고유한 감은, 하루아침에 생기지 않는다.

조용히 쌓이고, 다듬어지고, 그러다 어느 순간 자기 것이 된다.

그리고 그 순간에만, 진짜는 만들어진다.


남의 것을 따라할 수는 있다. 하지만 소용없다.

내 감각은 나만의 것이다.

나만이 나를 가르치고 안내하고 깨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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