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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지나 Feb 03. 2023

피칠갑과 저주의 육두문자

탈격무부서를 계기로 지난 2년을 돌아봤더니 


이해와 배려, 인정을 바라지 말 것. 만약 이런 미덕을 행사하는 동료가 있다면 그가 우주의 기운을 거스를 정도로 대단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그 은혜를 결코 잊지 말 것. 


지난 2년을 언론사에서 격무부서로 꼽히는 정당팀에서 국민의힘 반장, 국회팀장까지 거친 뒤 내가 내린 결론이다. 내가 이렇게 고생을 하는데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 하고 분노하고 질질 짜기엔 내 정력에 한계가 분명하다. 혹시나 주위에 그런 사람이 있다면 상황 파악이 더럽게 안 되는 것이거나 쓸데없는 인간애가 아직 남아있어서다. 제발 그러지 마세요. 


이렇게 내가 씨부릴 수 있는 것도 내가 그런 모자란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지나고 보니 남은 것은 너덜너덜해진 몸과 마음뿐이다. 물론 김기현과 안철수가 당권을 두고 개싸움 하는 기사를 쓰며 희열과 보람을 느끼는 경우는 제외. 최근에도 야망을 불태우며 온갖 뒷말과 함께 내 자리로 오겠다는 자를 보며 혀를 끌끌 차는 동시에 도대체 왜 그럴까 리스펙을 보내는 중이다. 알고 보니 여기 꿀이 발라져 있던 것인가. 

 

대선을 치르는데 팀원은 딸리는 업무량을 논하기 전에, 내 개인적 조건부터 별로였다.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부모의 전폭적인 지원을 요구하는 딸내미가 있었다는 게 악조건의 핵심이었다. 나랑 같이 반장 꾸미를 하던 선배는 자녀의 입학 시기 휴직을 했고, 내 주위에서는 "그즈음에 긴 휴가를 내야 해"라는 조언들을 했다. 마침 정당기자의 꽃!이라고 잘못 알려진 대선 기간, 나는 그저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업무를 하거나 집안일로 인생을 가득 채웠다. 여의도에서 탈탈 털리게 일한 다음, 집에 와서 졸린 눈을 비벼 가며 펜 몸통과 뚜껑에 따로따로 이름표를 붙였던 하루가 기억난다. 에이 시발, 그냥 이름표 안 붙이고 잃어버리면 안 되나! (하지만 학교 공지대로 꼼꼼히 다 붙이고 등교시킴)

 

여하튼 이 기간 동안 나는 회사와 가정 모두에서 소모 또 소모, 계속해서 소모됐다. 더 닳을 게 있었을까. 여자라서, 엄마라서 저렇다는 소리를 듣는 게 싫었던 나는 회사에서 강한 척 위악도 떨고 아파도 참았으며 아쉬운 소리도 자기 검열에서 일찌감치 걸러내려 노력했다. 당연히 잦은 두통에 링거 맞아가며 골골대는 일상이 반복됐지만, 사적 영역의 이슈를 공적 공간에 싸들고 와서 찡찡대고 싶지는 않았다. 난 강하드아! 그리고 그 기간 동안 생각 아니, 거대한 착각을 했던 것 같다. 다들 내가 얼마나 이를 악물고 지내는지 알고 있겠지? 나 정도 되니까 이 정도 회사 자원으로 이만큼 퍼포먼스를 내는 걸 알고 있겠지? 


하, 알긴 뭘 알아. 나를 격려하고 응원해 주는 주위의 착한 동료들조차 다들 자기만의 영토에서 나름의 고충을 가지고 버티고 있는데, 어떻게 그들이 알 거라고 생각했을까. 알 수도 없고 알 필요도 없으며, 모른다고 잘못된 일이 아니다. 나부터도 혼자 고통 속에 몸부림치는 동료를 제때 알 수가 없다. 휴먼빙즈 따위에겐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 내가 하소연할 때 감정적으로 동조해 주는 반응 정도가 일반적인 최선이고, 무언가 도움이 되겠다며 사소하게나마 액션을 취하는 것은 우주의 기운에 정면으로 맞서는 비범한 경우다. 당연한 것 같지만 역시 휴먼빙즈 따위는 일상에서 이런 진리를 숨 쉬는 동시에 까먹는다. 


회사 업무에서 강제로 끝을 맺고 나서야 정신이 번쩍 들어 지난 시간을 반추하게 된다. 숨통이 트이는 부서에 와서 일과 시간이 끝나면 뉴스도 안 보고, 쳐내기 바빴던 딸내미 관련 업무도 진정 엄마된 마음으로 하기 시작했다. (뭐 그렇다고 결괏값이 크게 다른 것 같지는 않다는 게 나름의 충격.) 그렇다. 미천한 중생은 고달프고 힘들 때, 이해와 인정 끝에 결국 보상을 받을 것이라 기대하며 순간순간을 버티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다. 각자의 자리마다 눈치를 봐야 할 권력이 있고 꿈꿨던 야망이 있다면, 당연하게 여겨졌던 것들을 일그러뜨리는 일 따위는 크게 어려운 게 아니다. 조직에서 누군가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할 때 제일 중요한 것은 동료의 헌신이나 장기적 평판이 아니라 바로 지금, 여기서 나에게 가장 많은 것을 남길 수 있는 선택지다. 각자가 오로지 '자신에게 최선인 선택지'를 집어드는 세상에서 내가 가장 먼저 계산을 끝낸 사람이 될 수 없다면, 남은 것은 나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법뿐이다.   


그리하여 올해 나의 목표는 조직과 나, 직업과 내 삶을 철저히 분리하는 것, 나아가 이 직업과 조직에서 탈주하는 것이다. 저주하고 육두문자를 쏟아내는 것도 애정과 열정이 있을 때나 가능한 것. 몇 겹으로 피칠갑된 맘과 몸을 조금씩 씻어내면서 다짐한다. 나의 정력은 오롯이 나를 위해 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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