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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남설 Nov 08. 2023

한물간 메가시티

우리는 이미 메가시티를 건설했다.

지금 김포를 서울에 합치겠다는 분들은 '메가시티'가 세계적 트렌드라고 한다. 그래서 서울도 더 커져야 한다고 말한다. 반만 맞는 말 혹은 한쪽 눈을 감은 말이다.


'샌샌'이란 말이 있다. 미국 서부의 샌 프란시스코와 샌 디에이고를 합쳐서 부르는 말이다. 두 지역은 차로만 냅다 달려도 7~8시간은 족히 걸리는데, 이걸 묶어 하나의 광역권으로 본다. 미국 영토가 좀 광활한 게 아니니 우리와 시간과 거리 개념이 많이 다르긴 할 테지만, 어쨌든 그렇다.


그런가 하면 '보스워시'라는 말도 있다. 보스턴과 워싱턴을 통틀어 부르는 말이다. 아예 국경도 넘나든다. '시피츠'는 시카고와 피츠버그를 합친 말인데, 보통 디트로이트 같은 미국 도시뿐만 아니라 토론토 같은 캐나다 도시까지 여기에 포함하는 걸로 생각한다.

샌 프란시스코와 샌 디에고를 엮어 '샌샌'이라고 부른다. ⓒ구글맵 편집

이렇게 국민국가의 존재감은 점점 옅어지고, 그 자리를 광역도시권이 대체하고 있다. 런던이나 파리도 메가시티의 흐름을 탄 예로 강조된다.


하지만, "메가시티가 세계적 트렌드"라는 말이 반만 맞는 이유는 그 메가시티의 저변에서는 오히려 심각한 부작용을 반성하는 차원에서 또 다른 트렌드가 꿈틀대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시간-도시' 개념이다.


시간-도시 개념은 인구, 밀도, 거리, 면적 등 도시의 규모를 재는 전통적 잣대를 거부한다. 김포 등 수도권 시민들이 고통을 호소하는 부분이 지옥 같은 출퇴근길인데, 갑자기 '서울시 ○○구'가 된다고 물리적 거리가 줄어드는 것도 아니고, 여전히 출퇴근에 2~3시간을 써야 하는 삶은 변하지 않는다. GTX-A, GTX-B, GTX-C로도 안 되면 GTX-X, GTX-Y, GTX-Z까지 파야 하나? 이 '2~3시간'을 당연시하지 않고 도시를 재설계하자는 관점이 시간-도시 개념이다.


우리나라에서 요즘 이걸 열심히 시도 중인 분이 계신데, 바로 '서울시 김포구'를 외치는 분들과 같은 편에 속한 박형준 부산시장이다. 부산시는 2021년부터 시민 누구나 집에서 15분 안에 업무, 소비, 의료, 녹지 등 생활 필수 공간에 닿게 하겠다는 '15분 도시 부산'을 내걸었다. 15분 단위로 도시를 재조직한다는 계획은 무조건 서울이란 행정구역의 덩치만 키우고 보겠다는 식의 접근법과는 차원이 다르다.


파리의 15분 도시, 런던의 15분 도시, 마드리드의 20분 도시, 밀란의 15분 도시, 시드니의 30분 도시, 상하이의 15분 도시, 멜버른의 20분 도시, 포틀랜드의 20분 도시, 디트로이트의 20분 도시 등등 세계적으로 비슷한 시도가 엄청 많다.

2020년 프랑스 지방선거 당시 안 이달고 파리시장 후보의 '15분 도시' 공약을 설명하는 삽화. ⓒ안 이달고 캠프

이것은 단순히 행정구역을 합치고 어쩌고 하는 게 아니라, 노동 및 주거 정책에 대한 고민을 요구한다. 적어도 사무직에게는 재택이나 공유오피스 출근 등 다양하고 유연한 근무 형태를 허용하거나, 출퇴근이 불가피한 서비스직 등에게는 일터 근처에 저렴하고 괜찮은 주거 선택지를 다양하게 주는 방법을 설계해야 한다. 일정한 구역마다 존재하는 학교의 용도 다변화도 주요 수단이 된다. 지금 부산시가 준비하는 바다.


'서울시 김포구'를 던지면서 '메가시티'란 말 자체도 혼탁해졌다. 김포나 고양, 하남, 광명을 서울에 합치지 않으면 서울이 메가시티가 안 되는가? 꼭 행정구역을 하나로 합쳐야만 메가시티가 되는가? 위키피디아 메가시티 항목에 서울은 인구 2650만의 대도시권으로 나온다. 서울 인구는 이제 1000만이 채 안 되지만, 수도권 인구를 합쳐 나오는 숫자다. 이미 서울과 수도권을 통틀어 하나의 생활권이자 경제권, 즉 메가시티로 보고 있다. 그런데 느닷없이 이제 와서 메가시티로 가자니.


우리는 이미 메가시티를 건설했다. 앞으로는 좀 다른 걸 이룩해 보자, 부산처럼.


*참고자료

카를로스 모레노, 「도시에 살 권리」, 정예씨 출판사, 2023

박상필 등, 「부산형 15분 도시 계획 구상」, 부산연구원,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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