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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남설 Jul 13. 2023

왜 자동차가 겨우 13% 줄었나요?

서울시의 혼잡통행료 실험에 필요한 질문

서울시가 '혼잡통행료'의 효과를 입증했다. 아이러니하게도 혼잡통행료를 없애라는 압박에 굴복해 실험한 결과로.


혼잡통행료는 강남북을 잇는 남산 1호 터널과 3호 터널 진출입 차량에 부과하는 돈이다. 금액은 2000원. 1996년 11월 11일 처음 거두기 시작했을 때부터 17년째 같은 금액이다. 혼잡통행료의 목적은 에 담겨있다. 교통이 심하게 혼잡한 지역을 통과하는 차량에 부담을 줘 이동 경로나 시간을 바꾸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Carl Kho on Unsplash

서울시는 지난 3월 17일~5월 16일 두 달 동안 혼잡통행료를 거두지 않았다. '시민들이 효과를 직접 체감하기 위해서'라는 애매한 이유를 댔다. 앞서 서초구에 지역구를 둔 한 시의원이 혼잡통행료 관련 조례를 폐지하는 조례안까지 발의하며 서울시를 압박했다. 서울시는 이를 이기지 못했다.


그 시의원은 이렇게 주장했다. "징수 초기와 비교해 혼잡통행료 효과가 현저히 줄었다는 연구 결과가 다수 발표됐고 한양도성 내부로 진입하는 차량뿐만 아니라 나가는 차량도 통행료를 징수하는 이중과세 문제, 타 지역에서 도심으로 진입하는 차량과의 형평성 문제 등 징수 정당성에 대한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도심(광화문·종로 등 4대문 안쪽) 혼잡을 방지하는 게 목적이라면 도심으로 들어오는 방향에만 혼잡통행료를 물리면 되지, 나가는 방향에는 왜 물리냐는 이야기다. 또, 4대문 안 말고도 교통혼잡이 심한 지역이 있는데, 거기에서는 왜 혼잡통행료를 안 받느냐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심지어 그는 혼잡통행료를 받는 요금소를 "나그네들의 주머니를 털던 산적"에 비유했다.


하지만, 실험 결과는 꽤 싱겁다. 혼잡통행료가 법에서 의도한 효과를 내는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혼잡통행료를 걷지 않자 남산 1·3호 터널 통행량이 약 13% 늘었다. 재미있는 건, 실험이 끝난 첫 날인 5월 17일 통행량이 고스란히 실험 이전 수준으로 돌아간 점이다.


서울시는 시민을 끌어들여 '집단 실험'을 실시해 이런 결과를 얻고도, 아직 혼잡통행료 유지 여부에 대해서는 확답하지 않았다. 연말까지 전문가와 시민의 의견을 더 들어보고 결정하겠다고 한다. 이왕 그렇게 할 거라면, 세계 전반적으로 일어나는 이런 변화에도 좀 주목해 주면 좋겠다. 변화를 추동하는 건 사람(보행자)을 중심에 둔 도시, 기후위기에 적응하는 도시라는 목표다. 혼잡통행료는 이미 '평범한' 정책이다. 스톡홀름(스웨덴), 오슬로(노르웨이), 싱가포르, 쿠알라룸푸르(말레이시아), 자카르타(인도네시아) 등 여러 대도시에서도 시행 중이다.


'자동차의 나라'라고 할만한 미국도 조만간 혼잡통행료 제도를 처음으로 실시할 예정이다. 뉴욕시 맨해튼 중심부에 진입하는 차량에 부과하는 것으로, 출퇴근 시간대에는 23달러(약 3만원), 그 밖의 시간대에는 17달러(약 2만2000원)를 받는다. 남산에서 받는 2000원보다 10배 이상 세다. 기왕 혼잡통행료를 시행하는 도시는 대개 이렇게 '화끈하게' 거둔다. 영국 런던은 2003년 혼잡통행료를 도입했다. 5파운드로 시작했는데, 점점 올라서 지금은 15파운드(약 2만4000원)이다. 오염물질을 많이 배출하는 차량에는 별도 요금을 물린다.


프랑스 파리는 도심 차량 통행량을 줄이기 위해 좀 더 화끈한 정책을 쓰고 있다. 주차장을 없애고 도로 폭을 줄이면서 아예 도시의 '하드웨어'를 바꾸는 중이다. 프랑스 시민은 도로변 주차공간을 점유해 벤치를 놓거나 돗자리를 펴는 게릴라성 이벤트를 즐긴다. 이는 '파킹 데이(Parking Day)'라고 해서 2005년 샌프란시스코에서 시작, 전 세계 180여개 도시의 시민이 참여하는 행사다. 차량 중심 도시를 향한 시위인 셈이다. 우리는 도입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안전속도 5030(차량 시속을 시내 주요 도로 50킬로미터, 이면도로 30킬로미터로 제한하는 정책)'을 사실상 물렀지만, 파리는 시속 30킬로미터를 표준으로 삼는 도시를 만들고자 한다.

도로 폭을 줄이기 전과 후(상상도) ⓒhttps://annehidalgo2020(현재 사이트 폐쇄)

이렇게 자동차를 도시에서 점점 더 비표준적인 존재로 취급하는 세계적 흐름이 생겨나고 있다. 파리 시장 안 이달고는 "도시의 창의성은 자동차에 기대지 않는다. 그것은 20세기 방식이다. 우리는 21세기에 살고 있다(A city’s creativity doesn’t depend on cars. That’s the 20th century. We’re in the 21st.)."라는 말로 이러한 시대정신을 날카롭게 표현했다.


지구촌에서 서울이라고 해서 갈라파고스처럼 지냈던 건 아니다. 공공자전거 '따릉이' 도입, '도로 다이어트'를 통한 보행로 확충 등 차량 중심 도시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짧지 않은 역사가 있다. 서울시는 지난 실험으로 확인한 '13%'를 두고 왜 효과가 이것밖에 나지 않았는지 되물어야 한다. 약 10년 전인 2014년에 이미 혼잡통행료를 물가상승률에 따라 8000원으로 올리면 차량 통행량이 60% 가까이 줄 것이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지금은 혼잡통행료의 유지 여부가 아니라 강화 여부를 따질 시점이다.


*참고자료

서울특별시, 「남산 1·3호 터널 혼잡통행료 징수 잠시 멈춤…정책 발전 방향 도모」 보도자료, 2023년 2월 20일.

서울특별시, 「남산 1·3호 터널 혼잡통행료 징수 일시정지 결과 발표보도자료, 2023년 6월 27일.

김규원, ‘4대문 안 혼잡통행료 8000원 보고서’ 3년 묵힌 이」, 『한겨레』, 2017년 7월 4일 자.

윤보람, 남산터널 통행료 26년 만에 폐지되나…시의회 조례안 발의」, 『연합뉴스』, 2022년 11월 17일 자.

최윤정, 런던 전지역 노후 공해차량 진입시 하루 2만원 내야」, 『연합뉴스』, 2022년 11월 26일 자.

Henry Mance, Paris mayor Anne Hidalgo: ‘A city’s creativity doesn’t depend on cars. That’s the 20th century’」, 『FINANCIAL TIMES』, 2023년 3월 13일 자.

이유진, 효과 있다더니···경찰, ‘안전속도 5030’ 사실상 폐기」, 『경향신문』, 2023년 3월 14일 자.

고일환, 뉴욕, 내년부터 혼잡통행료 징수…도심 진입시 2만9천원」, 『연합뉴스』, 2023년 6월 28일 자.


*이 글은 SBS라디오 「고현준의 뉴스브리핑」코너 '건축학개론' 2023년 6월 30일 방송 내용을 편집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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