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가 최근 공개한 <SEOUL, MY SOUL>은 괜찮은, 적어도 이전 <I·SEOUL·U>보다는 훨씬 나은 슬로건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런 평가가 무슨 의미가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도시 슬로건이 무엇인지는 대다수 시민과는 별 상관없는 일이니까. 그 슬로건을 종일 머리에 이고 사는 것도 아니고, 늘 다니는 길에서 눈에 밟히는 것도 아니다. <I·SEOUL·U>는 분명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슬로건이지만, 그렇다고 모파상이 에펠탑 대하듯 그 조형물을 극구 피하려고 애쓸 이유까지는 없다. '너와 나의 서울(I·SEOUL·U)'이든 '마음이 모이면 서울(SEOUL, MY SOUL)'이든 그게 대체 나와 무슨 상관일까? 어차피 한글도 아니고 영문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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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슬로건을 굳이 2002년 <HI, SEOUL>에서 2015년 <I·SEOUL·U>로, 2023년 다시 <SEOUL, MY SOUL>로 자꾸 갈아치우는 데는 나름 명분이 있을 테다.
<HI, SEOUL>은 우리나라가 일본과 함께 월드컵을 개최한 그 해 탄생했다. 2007년 서울시는 <HI, SEOUL>에 <SOUL OF ASIA>라는 슬로건을 추가했는데, 그 이유는 '외래관광객 1,200만명 달성'이었다. <I·SEOUL·U>를 만들 때는 '관광객 2,000만명'으로 목표를 좀 더 높여 잡으며 '세계 3위 국제 MICE 도시'가 되겠다고 했다.
그럼 <SEOUL, MY SOUL>은? '글로벌 탑5 도시 도약'이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입버릇처럼 강조하는 게 '도시 경쟁력'이다. '탑5'가 목표라는 건 빌보드처럼 뭔가 차트가 있다는 얘기다. 그는 여러 인터뷰를 통해 자신이 이전 재임 기간(2006~2011년)에 도시 경쟁력을 10위권으로 올려놨는데, 자리를 비운 사이 17위까지 떨어졌다고 한탄했다.
오세훈 시장이 말하는 도시 경쟁력 순위는 미국 컨설팅회사 커니(Kearney)가 발표하는 GCI(Global City Index)다. 2022년 GCI 탑5는 뉴욕, 런던, 파리, 도쿄, 베이징이다. 서울은 2010년 10위, 2015년 11위, 2020년 17위였다. 그의 말대로 서울의 위상은 추락한 게 맞다. GCI가 중시하는 자본과 투자의 흐름 측면에서는.
관광객, MICE, 해외 컨설팅기업이 매기는 도시 경쟁력…. 슬로건을 한글이 아니라 영문으로 만드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외국인이 많이 찾는 도시, 외국인이 돈을 쓰는 도시가 되는 건 물론 중요하다. 세계화, 지식산업, 4차 산업혁명은 모두 다 그런 도시가 되라고 부추기고 있다. 하지만,기왕 '탑5' 같은 목표를 잡을 거라면 이런 차트도 좀 함께 이야기하면 좋겠다. 세상에 도시를 재단하는 기준이 GCI만 있는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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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 계열인 컨설팅회사 EIU(Economist Intelligence Unit)가 매년 발표하는 Global Liveability Index(Liveability)는 140개 도시의 '거주 적합성', 즉 얼마나 살만한 곳인지를 따진다. 안정성, 의료, 문화, 근린, 교육, 기반시설 등이 주된 잣대가 된다. 서울시는 이 지표를 GCI만큼이나 주시하면서도, 그 성적표에 대해서는 좀체 거론하지 않는다.
Liveability와 GCI의 최상위권에 든 도시는 서로 사뭇 다르다. 2023년 Liveability 1~5위는 비엔나, 코펜하겐, 멜버른, 시드니, 밴쿠버다. 이 차트에서 서울의 성적은 2012년부터 올해까지 줄곧 50위 밖이다. 2022년에는 68위까지 떨어졌다. 10년 넘게 그다지 발전―정주하기 더 좋은 환경을 조성―하지 못했다는 얘기다. 당연한 얘기지만, 외국인이 많이 찾는 관광지와 내국인이 선호하는 주거지는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런데, GCI만 말한다는 건 행정당국의 관심이 다소 치우쳐 있는 건 아닌지 의구심이 들게 한다. 상식적으로 17위보다는 68위를 어떻게든 끌어올리는 게 더 시급한 과제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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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암스테르담시는 2004년 슬로건 <I amsterdam>을 만들었다. 철자 조합이 기발하면서도 나름 독특한 의미가 있다. 이 슬로건은 암스테르담 바깥이 아니라 안을 향한다. 암스테르담의 인종과 문화적 다양성, 비교적 성소수자를 배척하지 않는 환경에서 영감을 얻었고, 당신들이 모두 암스테르담 시민이라는 뜻에서 시민 스스로 '나는 암스테르담이다'라고 외치는 슬로건, <I amsterdam>이 탄생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암스테르담시는 시민의 소속감과 자긍심을 고양하기 위해 만든 <I amsterdam> 조형물을 2019년부터 하나둘씩 철거하기 시작했다. 암스테르담이 오버투어리즘을 겪으면서 이 조형물이 그 상징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I amsterdam>의 얄궂은 운명은 도시 혹은 도시 슬로건이 누구를 위해 복무하는지 생각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