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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현지 Feb 28. 2020

06. 완전 망한 캄보디아 패키지여행

내 돈 내고 박대 받는 방법과 캄보디아 야시장


김해 공항에는 사람이 많았다


대구 공항보다 크고 인천 공항보다 작은 공항에는 낮은 천장 아래로 비슷한 경상도 말씨를 쓰는 사람들이 바쁘게 도착하거나 출발했다. 지정된 게이트 앞에서 만나기로 한 인솔자와 나머지 멤버들의 도착은 아직이었다. 바퀴 두 개 달린 캐리어를 끌고 내부를 천천히 걸었다. 4박 5일짜리 짐은 김해 공항의 편의점과 화장실과 대합실 곳곳을 차례로 끌려다녔다. 이상하게 공항만 오만 배가 고팠다. 대구에서 부산까지 오는 동안 곡식에서 추출한 열 입곱가지 성분이 들었다는 음료와 삼각김밥을 아침으로 먹었지만 그래도 배가 고파 음식 냄새를 찾아 곳곳을 기웃거렸다.


캄보디아 여행은 갑자기 결정됐다. 

퇴사 후 시간이 남아도는 자의 마땅한 선택인 SNS질을 하다 우연히 여행 광고 하나를 발견한 것이다.


- 캄보디아 씨엠립 4박 5일. 29만 원.


29만 원 안에는 왕복 항공권과 호텔, 앙코르 와트 투어와 세 끼 식사가 모두 포함돼 있었다. 말도 안 되게 저렴한 대신 출발 기간이 촉박했고 한 번 결제하면 환불은 불가했다. 상세 페이지를 조금 더 자세히 읽었다. 매력적인 앙코르와트의 석양과 맛있어 보이는 파인애플 밥이 차례로 나타났고 체험해보지 않고는 못 베길 정도로 궁금증을 자아내는 수상가옥이 연이어 모습을 드러냈다. 몇 가지 옵션은 추가금을 내야 하지만 개당 4만 원이기 때문에 해볼 만했다. 두둑하게 받은 퇴직금에서 캄보디아 여행 경비를 가만히 셈해보았다. 가이드 팁과 몇 가지 추가금을 더하더라도 충분히 남는 장사였다. 저렴하고 알찬 구성은 너무 매력적이었기 때문에 나는 잠깐만 고민한 뒤 결제를 진행했다. 떠나기로 결정한 순간부터 이미 여행이 시작된 것 같았다.


다음날 여행사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10명짜리 상품이라 2인 객실 다섯 개를 확보해놨는데 내가 혼자 예약하는 바람에 방 구성이 애매해졌다는 내용이었다. 여행사는 모르는 사람과 합방하는 방법과 한 사람분 객실료를 더 내고 독방을 쓰는 방법 두 가지 대안을 제시했다. 방을 쉐어하는 건 상관없지만 상대가 남자일 수도 있다는 건 아무래도 곤란했다. 독방을 쓰려면 1박당 3만 원을 추가로 내야 했다. 나는 후자를 택하고 12만 원을 추가 결제했다. 예상 못 한 지출이지만 그래도 충분히 좋았다. 캄보디아 여행은 여전히 이득인 것 같았다.




게이트에는 사람이 빠르게 모였다


여행사 로고가 찍힌 옷을 입은 남자가 피켓을 들고 서 있었다. 4박 5일 동안 함께 할 메이트들은 각자 오는 순서대로 반갑게 고개를 꾸벅였다. 다들 여행에 대한 기대로 표정이 밝았다. 여행자는 나까지 아홉 명이었다. 대부분 중장년층이지만 내 또래 여성도 두 명 있었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나이대별로 6:3으로 뭉쳐 비행기에 탑승했다. 인솔자가 잘 다녀오라며 손을 흔들었다. 가이드는 캄보디아 공항에서 따로 만날 것이었다. 매일 공항으로 출근하지만 비행기에 오르지는 않는 남자를 남겨둔 채 우리는 천천히 이륙했다.


캄보디아로 날아가는 동안 또래 두 여자와 여러 가지 정보를 공유했다. 두 사람은 자매였다. 나보다 각각 6살과 4살이 많은 둘은 서로 안 닮았지만 각자 예뻤다. 까만 피부가 매력적인 첫째 언니는 말수가 적지만 성격이 화끈했고 하얗고 마른 둘째 언니는 그냥 너무 착했다. 착할 선(善)자가 사람으로 태어나면 이런 모습일 것 같았다. 두 사람은 언니의 결혼을 앞두고 마지막 싱글 여행으로 캄보디아를 택했다. 왜 하필 캄보디아를 골랐냐는 말에 둘째 언니가 당연하게 대답했다.


"싸니까요."


저렴한 가격에 끌린 게 나뿐 만이 아니라는 사실은 묘한 안도감을 주었다. 싸다는 말은 왠지 발음조차 가볍고 경쾌하게 들렸다. 우리는 먹거나 이야기를 하는 방식으로 시간을 보냈다. 언니들과 나는 인도를 좋아한다는 공통점이 있었는데 뉴델리의 더러움과 번잡스러움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셋 다 너무 싫지만 좋은 표정을 지었다. 가본 사람끼리만 공유되는 표정과 맞장구가 오가는 동안 에너지가 적당히 기분 좋게 소진되었다. 서로 모르기 때문에 더 편하게 할 수 있는 대화가 비행기 곳곳에서 탄생했다 사라졌다.  



도착해서는 많은 것들이 바쁘게 진행됐다. 돈을 내고, 비자를 만들고, 짐을 찾아 바깥으로 나가는 동안 공항 안으로 밀고 들어온 동남아의 홧홧함이 빠르게 체온을 올렸다. 씨엠립 공항은 내가 가본 공항 중 가장 작은 바라나시 공항보다도 작았는데 그러면서도 사람은 많았기 때문에 금방 지쳤다. 캄보디아 공항법상 가이드들은 내부 진입이 불가능했다. 때문에 언니들과 나는 나머지 여섯 어른들의 비자 절차를 각자의 방식으로 도왔다. 영어 할 줄 아는 젊은이들에게 어른들은 무럭 기댔다. 나와 언니들이 여기저기 뛰어다니는 동안 어른들은 우리의 짐과 핸드폰을 안전하게 맡아주었다.


밖으로 나오자 한국인 가이드가 기다리고 있었다.

풍채가 좋고 서글한 인상의 그는 더웠는지 땀을 아주 많이 흘렸다.


"부산에서 오신 분들이죠? 반갑습니다."


가까이서 본 얼굴은 캄보디아 현지인들 만큼 까맸다. 두께와 색상이 달라진 피부는 타국에서 보낸 세월의 농도를 짐작게 했다. 준비된 관광버스에 타자 가이드는 여권을 제출하라고 말했다. 분실 시 모두의 일정에 피해를 줄 수 있으니 4박 5일 동안 본인이 맡아주겠다는 것이다. 조금 찝찝했지만 일리는 있었기 때문에 여권을 꺼냈다. 패키지여행이란 건 한 울타리에서 함께 굴러가는 것임을 새삼 실감했다. 여권 제출 후 가이드는 몇 장 짜리 서류를 나눠주었다. 주의할 사항들과 옵션에 대한 내용이 적혀 있었다. 옵션은 10개 정도 있었는데 어쩐지 미리 체크가 되어 있었다.


"옵션은 제가 미리 표시해뒀습니다. 다들 이 정도는 하시니까 빨리 읽어보시고 맨 뒤에 사인해주세요."


옵션에는 납득되는 것도 있었지만 의문스러운 것도 있었다. 평양냉면 먹기 항목에서 언니들은 특히 고개를 갸웃했다. 별 흥미롭지 않은 옵션들이 각 항목당 4만 원에서 비싼 건 5만 원까지 책정돼있었다. 사인하는 순간 최소 40만 원이 그냥 추가되는 일이었다. 가이드는 당장 출발해야하니 얼른 제출해달라고 재차 말했다. 어른들은 읽어보지도 않고 마지막 장을 펴 대충 이름을 적었다. 추가금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는 게 분명한데도 구렁이 담 넘듯 분위기가 흘러갔다. 이건 아닌 것 같다고 느끼는 도중 첫째 언니가 말했다.


"저희는 옵션 여섯 개만 할게요."


언니들이 선택한 항목은 내가 흥미를 가진 것들과 거의 일치했다. 가이드는 굳은 얼굴로 평양냉면 정말 안 먹어봐도 괜찮겠냐고 물었다. 언니는 캄보디아에서 4만 원이나 주고 평양냉면을 먹고 싶지는 않다고. 그리고 옵션 40만 원은 너무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듣고 있던 어른들이 깜짝 놀랐다.


"네? 40만 원이나 해요?"


그제야 허겁지겁 내용을 확인했다. 들떴던 공기가 묘하게 가라앉았다. 속인 건 아니지만 어쨌든 속을 뻔한 것에 배신감을 느끼는 게 분명했다. 합의될 뻔한 옵션이 몇 개씩 지워졌다. 그동안 가이드가 무서운 눈으로 첫째 언니의 정수리를 노려보는 것을 목격했다.


어쨌든 여행은 시작되었다. 옵션으로 25만 원이 추가됐지만 괜찮았다. 불필요한 지출은 더는 없을 것이었다. 일정이 빡빡했기 때문에 바쁘게 움직였다. 우리는 정해진 한식당에서 밥을 먹고 일정을 소화했다. 가이드는 함께 밥을 먹지도 첫 만남 때처럼 웃지도 않았다. 그래도 어쨌든 첫 날의 일정은 잘 굴러가는 듯 했다.





문제는 둘째 날 라텍스 매장에서 시작됐다. 의무로 들러는 쇼핑 코스 중 하나였는데 호객이 짜증 날 정도로 심했다. 매장 직원들은 나이 좀 있는 어른들만 노렸다. 작게는 몇 십부터 크게는 몇 백이 넘는 제품들을 몇 명은 사고 또 몇 명은 거절했다. 집에 있다고도 해보고, 현금이 없다고도 해보고, 집에 들고 가기 벅차다거나 들고 가봤자 둘 곳이 없다는 말로 계속 거절했다. 그러면 직원들은 라텍스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고, 현금이 없으면 카드도 된다고, 한국까지 국제 배송도 해드리며 공간에 맞춰 맞춤 제작도 가능하다고 달라붙었다. 정말이지 끈질기게 달라붙었다. 결국 큰소리가 나자 그제야 지켜보고 있던 가이드가 다가와 소극적인 태도로 말렸다. 가이드는 어제보다 더 기분이 안 좋아 보였다.

남은 일정을 이런 상태로 보내야 한다니. 어쩐지 좀 체한 것 같았다. 문득 씨엠립의 쨍한 햇살이 미치도록 아까웠다. 현지인들 사이에서 앉아 쌀국수나 한 그릇 하고 싶었다. 맛이 죽도록 없어도 상관없을 것 같았다. 패키지만 아니었다면 누릴 수 있는 자유가 무수했을 것이다. 저렴한 패키지 가격에 홀린 대가는 생각보다 가혹했다. 이탈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는데 생각해보니 여권이 가이드한테 있었다. 만나자마자 여권부터 걷은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보다 정신이 아득해졌다.


앙코르와트도 멋있고 밥도 맛있었지만 마음은 한시도 쉬지 않고 꾸준히 불편했다. 가이드는 예정에 없던 현지인 사진사를 불러다 관광지를 배경으로 사진 찍을 것을 강요했다. 사진사 고용비와 인화비도 우리가 내야 했다. 사진사가 갖고 있는 카메라보다 훨씬 좋은 DSLR이 내게 있었지만 험악한 분위기에 못 이겨 결국 옵션을 추가했다. 내 돈 주고 하는 여행인데도 기분이 무지 나빴다. 다들 같은 생각인지 이동하는 동안 점점 말하지도 웃지도 않았다. 공항에서의 설렘은 사라진 지 오래고 모두 여행이 끝나기만을 기다리는 것 같았다. 옵션 열 개 중 여섯 개만 선택한 여행자들은 몽땅 이런 취급을 받는 걸까. 가이드 팁과 침실 팁, 마사지사와 뱃사공과 사진사와 공연 연주자들의 팁까지 주라는 대로 다 주고도 푸대접은 계속됐다.





화룡점정을 찍은 건 넷째 날 상황버섯 쇼핑센터에서였다. 직원이 버섯 효능에 대해 설명했는데 말을 어찌나 잘 하던지 갑자기 하나쯤 사고 싶어졌다. 그녀는 한국에서는 절대 구하지 못할 특상품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그럴수록 할머니께 선물로 드리고 싶어졌다. 우리 손녀 장하다고 동네방네 자랑하겠지. 하지만 마지막에 가격을 듣고 깜짝 놀랐다. 버섯 한 팩에 100만 원이 넘었다. 그것도 1개월 분 가격이고 효과를 보려면 최소 3개월은 먹어야 한다고 했다. 그보다 적게 먹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고도 했다. 300만 원어치의 버섯이 부담스러운 손녀는 너무 무능한 것 같았다. 시무룩해하는 동안 직원이 나랑 언니들을 보며 말했다.


"다들 댁에 부모님 계시죠? 아휴, 부모님 오래오래 건강하게 사셔야죠. 직장인이실텐데 이번 기회에 효도 한 번 제대로 하세요. 부모님 그리 오래 사시는 것 아닙니다. 언제나 여러분들 곁에 계시는 게 아니예요. 있을 때 잘 하셔야죠."


이런 소리까지 들을 일인가. 뭔가 되게 불효막심한 딸이 된 것 같았다. 직원은 어른들도 노렸다. 갈수록 말을 심하게 했다. 요즘 백세 시대 아니냐고. 그런데 백 년을 건강하게 사셔야지 아파서 골골 거리면 무슨 소용이냐고. 슬픈 말이지만 자식들도 아픈 부모 있으면 힘들다고. 길게 보면 300만 원이 결코 비싼 게 아니라고. 도저히 듣고 있기 힘들어 이만 나가보겠다고 했다. 조금이라도 더 있었다가는 분명히 험한 소리를 할 것 같았다. 내가 일어서자 언니들과 어른들도 슬금슬금 따라 나왔다. 직원은 당황한 것 같았지만 잡지는 않았다. 문을 열자 가게 앞에 가이드가 서 있었다. 그는 대놓고 짜증난다는 표정을 지었다. 따라나온 센터 직원은 짓뭉개진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날 저녁, 나는 야시장 투어를 계획했다


언니들도 함께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여행을 버섯으로 끝낼 수는 없었다. 캄보디아를 증명할 무엇을 남기고 싶었다. 야시장은 숙소와 멀지 않았다. 걸어서도 갈 수 있지만 달리고 싶었기 때문에 뭔가 타기로 했다. 왕복 20달러에 뚝뚝을 섭외했는데 기사가 너무 좋아했다. 시세에서 3배를 줬기 때문이다. 우리를 보고 웃어주는 사람은 오랜만이었다. 출발하려는데 호텔에서 어른 한 분이 뛰어나왔다.


"아가씨들 잠깐만요!"


반강제로 라텍스 제품을 구매한 사람 중 한 분이었다. 고운 얼굴을 한 어른은 혹시 어디 가냐고, 놀러 가는 거면 따라가고 싶다고 했다. 여행을 이렇게 끝내고 싶지 않은 사람은 우리뿐만이 아닌 듯했다. 어른은 비누 냄새를 풍기며 뚝뚝에 올라탔다. 아이처럼 웃는 얼굴은 너무 좋아 보였다.  


뚝뚝은 도로 위를 빠르게 달렸다. 엔진 소리가 커질수록 맞바람도 세게 불었다. 밤 장사를 시작한 가판 상인들이 거리에 불빛을 밝혔다. 집으로 돌아가는 여자들이 한 손엔 보따리를 한 손엔 어린 아이의 손을 잡았다. 담배를 태우는 남자와 구걸하는 할머니와 구운 옥수수와 현금을 교환하는 학생들이 빠르게 지나갔다. 달리면 달릴수록 숨통이 트였다. 언니들 사이에 끼여 앉은 어른은 손잡이를 꽉 잡았다. 우리는 어쩐지 그분을 선생님으로 부르고 있었다.


"선생님! 재미있죠?"

큰 소리로 물으니 선생님은 깊이 끄덕였다.

"이렇게 나와보는 거 처음이에요! 맨날 무서워서 방에만 있었거든요!"


뭐라고 더 말했지만 듣지 못했다. 옆에서 첫째 언니가 뚝뚝 밖으로 팔을 내밀고 으아아 소리를 질렀기 때문이다. 듣기만해도 속이 시원해졌다. 그래도 선생님은 계속 말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계속 알아들은 척 하하 웃었다. 엔진이 탈탈 울리고 언니가 소리를 지르고 선생님이 말하는 동안 뚝뚝은 계속해서 앞으로 앞으로 달렸다.

야시장에는 사람이 많았다. 우리는 도착하자마자 이것저것을 샀다. 선생님이 가족들에게 줄 선물을 쓸어 담는 동안 언니들과 나는 각자 관심 있는 것을 했다. 언니들은 원피스나 신발을 구경했고 나는 오렌지 주스를 홀짝이며 자취방에 걸어두면 좋을 그림들을 구경했다. 화가들의 손에서 탄생한 캄보디아의 여러 풍경들이 캔버스 안에 물끄러미 담겨있었다. 조금 비싸게 주고 그림 하나를 샀다. 톤레삽 수상가옥 위로 샛노란 노을이 떨어지고 있었다. 노란색은 행복했던 것만 기억하기에 좋은 색깔인 것 같았다.


선물 보따리를 잔뜩 끌어안고 펍에 들어갔다. 작정하고 돈 쓰러 온 여행객들에게 캄보디아 사람들은 친절했다. 펍에는 누구나 알만한 팝송이 흘러나왔다. 우리 말고도 외국인은 많았다. 그들은 각자의 언어로 떠들었다. 적당히 더운 저녁은 매력있었다. 영어를 세련되게 구사하는 직원이 다가와 주문을 받았다. 선생님이 한 턱 쏘겠다고 했다. 나이 든 사람이 껴서 미안하다고. 그럼에도 아가씨들이랑 노니 너무 좋다고. 캄보디아가 이렇게 재미있는 줄 몰랐다고. 네 사람의 머리 위로 커다란 선풍기가 힘차게 돌아갔다. 시원한 맥주와 먹음직스러운 안주가 나왔다가 천천히 사라졌다. 기분 상할 이야기는 안 하고 싶었지만 아예 안 할 수는 없었다. 언니들은 다시는 패키지여행을 하지 않겠다고 했다. 선생님은 다음번엔 아주 비싼 패키지를 하겠다고 했다. 그 사이에서 나는 언니들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선생님은 많이 마셔도 안 취했지만 취한 사람처럼 잘 놀았다. 그리고 많은 말을 했다. 자식 이야기, 남편 이야기 그리고 마음이 상한 채 숙소에서 잠들어버린 여행 메이트 이야기. 내가 이 나이에 언제 캄보디아에 다시 오겠어요. 아마 죽기 전에 다시 올 기회는 없겠죠. 아무리 생각해도 시간이 너무 아까운 거예요. 그래서 산책이라도 하려고 나왔는데 아가씨들이 딱 있는 거야. 얼마나 반갑던지. 우리는 그러냐고. 잘하셨다고. 우리 안 좋았던 일 다 잊고 오늘 저녁만 기억하자며 잔을 부딪혔다.


시간이 지날수록 손님은 더 많이 왔다. 인파에 섞여 나이를 잊고 마구 웃었다. 그러는 동안 맥주잔들이 수없이 올라갔다 내려왔다. 빛을 받은 맥주가 노랗게 반짝였다. 노랑은 역시 좋은 색이라고. 캄보디아와 참 잘 어울리는 색이라고. 그걸 늦게 안 것 만이 오로지 아쉬울 뿐이라고 생각하는 동안 캄보디아의 마지막 밤이 천천히 천천히 지나갔다.





앙코르와트는 그래도 멋졌습니다
나름의 소원도 빌었어요
마음의 평안을 찾기 위해 했던 노력
아주 잠깐씩 주어진 자유시간. 그 틈에 만난 현지인
캄보디아의 날씨
가슴에 바람을 일으킨 톤레삽 호수에서
어느 국적도 아닌 사람들
그 위에 함께 떠있어 보았습니다
추가금을 내고 묵었던 내 방. 독방이라서 좋았습니다
톤레삽 가는 길
달리는 버스 안에서. 내리고 싶다고 100번 생각하며.
마지막 날 아침. 아주 일찍 일어나 새벽 시장에 다녀왔습니다.
새벽시장
파인애플 밥
외국에서는 언제나 반가운 한식
캄보디아 어린이들의 간식
비오는 아침. 캄보디아에서의 마지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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