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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현지 Apr 27. 2020

09. 이 죽일 놈의 인도가 좋은 이유

말로는 설명이 안 돼서 글로 표현해볼까 해



인도행 비행기를 탔던 날이 떠오른다. 


매운 겨울이었고 바깥에 사람이 없었고, 조용하고 황량했지만 그랬기 때문에 혼자만의 감상에 빠져들 수 있었던, 이르자면 적당한 감상을 갖고 떠나기 좋은 그런 날이었다. 


인도는 첫 해외여행지다. 

중학생 때 제주도 여행으로 비행기를 타본 경험은 있으나 정확히 공중을 날아 대한민국의 영토나 영해 밖으로 이탈해본 적은 없었던, 완벽한 처음. 어떤 처음은 누군가의 인생을 바꿔놓을 만큼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하는데 이 여행이 딱 내게 그랬다. 덕분에 비행의 맛을 알았으니. 워킹 홀리데이를 시도해 볼 용기가 생겼으니. 너무 좋아하는 나라가 생겼으니. 덕분에 여행작가가 되었으니. 글로 이 여행에 대해 이야기할 기회를 가졌으니. 


스물셋에서 넷으로 넘어가던 겨울. 나는 약간 섣불리 인도 여행을 결정했다. 겨울 방학이 다가왔고, 공모전에 당선돼 자금이 생겼고, 무엇보다 폭삭 쓰러졌던 집안이 3년 만에 제자리를 찾았던 시기였다. 그 3년 동안 내가 얼마나 많은 아르바이트를 해야만 했는지는 다른 글에서 여러 번 언급했기 때문에 여기서는 하지 않겠지만, 아무튼 생각보다 빨리 두툼해진 지갑과 서서히 때깔이 나기 시작한 가족들의 얼굴은 공모전으로 받은 상금을 한 번쯤은 나 자신을 위해 마구 써제껴도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들게 하기에 충분했다. 



스물셋. 바라나시에서



당시 대학에서 '인도미술의 이해'라는, 이름만 들어도 절로 하품이 날 것 같은 교양 수업을 들었다. 국문과 학생이 미대에서 열리는 세 시간짜리 미술 수업을 들었던 이유는 수강 신청 눈치 싸움에서 완벽히 패했기 때문이다. 최대한 조별 과제가 없으면서 과제도 많지 않고 교수님이 덜 깐깐하면서 한 학기 시간표를 쫀쫀하게 연결할 만큼 황금 시간대에 편성된 교양 수업들은 전공 수업을 신청하고 허겁지겁 돌아와보니 이미 내 자리가 아니었다. 꿀 빨 수 있었던 기회를 놓쳐버린 나는 어느 병신 같은 학생이 손가락을 잘못 놀려 수강 취소 버튼을 누르는 순간을 목격하는 행운이 찾아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홈페이지를 배회하다, 결국 포기하고 '어쩔 수 없이' 차 교수의 인도미술의 이해를 신청했다. 


인도와 미술이라니. 

잘 모르는 두 가지가 혼종된 끔찍한 강의 명을 쳐다보며 약간 아득해졌던 그 순간이 아직도 눈앞에 선연하다. 





차 교수는 미술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정확히 인도 미술을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뽀얀 피부에 통통한 볼살을 가진 그녀는 매 수업마다 조금씩 다른 안경을 끼고 나타났는데 그 어떤 안경을 끼든 그녀의 짧은 커트머리와 너무 잘 어울렸다. 차 교수는 사실 교수는 아니고 강사였지만 그 어떤 교수들보다도 교수법을 잘 아는 사람처럼 강의했다. 차 교수는 불교미술을 전공한 뒤 국내의 내로라하는 문화유산들을 관리하는 책임자로 활동했다. 간첩이 아니라면 절대 모를 수 없는, 아니 간첩도 그 정도는 공부해서 내려올 것 같은 큼직큼직한 것들을 관리하는 그녀는 정말이지 너무 멋있었다.


미술 수업이긴 했지만 예술과 종교는 어떻게 보면 한 몸에서 뻗어 나온 양 팔과 같았기 때문에 우리는 인도의 미술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 그 나라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서도 공부했다. 자칫 지루할 수 있는 그 파트는 차 교수의 인도 여행 이야기를 듣는 방식으로 대부분 채워졌다. 그녀는 20년 동안 불교 발상지인 네팔과 인도를 오가며 겪은 여러 천태만상에 대해 재미있게 이야기했다. 우리는 차 교수의 입에서 넘실대는 수많은 에피소드를 통해 인도의 본질에 대해, 집단성에 대해, 지역마다 다른 온도와 습도에 대해, 서남아시아 사람들이 가진 의식의 크기에 대해 짐작할 수 있었다.  차교수의 말은 여러 학생들에게 저마다의 깊이와 방향으로 흡수되었는데 놀랍게도 세 시간이 넘도록 어느 학생도 잠들지 않았다. 


그녀는 누가 봐도 인도에 미쳐있는 여자였다. 어떨 때는 근엄하거나 진지한 표정을 짓기도 했지만 인도에서 직접 겪은 어떤 이야기를 할 때는 좋아 죽겠다는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차 교수의 모든 말들은 절대 재미있을 수 없는데 이상하게 너무 재미있다는 것이었다. 에피소드의 대부분은 이런 것들이다.


"바로 그때! 그 자식이 내 가슴을 만지고 튀었어요!"

"아무것도 모르고 500원짜리를 5000원에 샀지 뭐야?"

"천장이 원래 검은색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전부 벌레였더라고요."


그녀는 과장되지 않게, 그러나 생동감 섞인 표정을 유지하며 말을 이어가는 재주가 있었는데 덕분에 우리는 가본 적도 없는 뉴델리나 뭄바이나 저 어디 남인도 땅끝 마을 어디쯤의 풍경을 쉽사리 상상하며 함께 웃거나 분노하거나 소름 끼쳐 할 수 있었다. 그녀가 겪은 여러 일들은 '에피소드'라는 말로 포장해 주기 어려운, 거의 '사건'에 가까울 정도로 심각한 것이 대부분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차 교수가 인도를 너무 사랑한다는 것을 어렵잖게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차 교수를 보며 좋아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은 자의 얼굴은, 그러니까 덕업일치를 이룬 자의 표정은 바로 저럴 수밖에 없다는 걸 눈앞에서 목도했다. 여기서 의문은 "대체 왜?"라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거기가 왜 좋은데. 그런 나라를 왜 좋아해 주는 건데. 당신은 왜 20년 동안이나 인도를 놓지 못하는 건데. 어떡하면 그런 일을 겪고도 이렇게 웃을 수 있는 건데. 어째서. 지금 그 새끼가 당신 가슴을 만지고 토꼈다는데.


11년 전. 인도의 하굣길. 파하르간즈에서



차 교수의 맹목적인 인도 사랑에 대한 의구심이 겹겹이 쌓여가던 어느 날, 나는 이슬람 건축 파트에 돌입할 때쯤 드디어 그것을 만나 고야 말았다. 커다랗고 하얀, 뭔지는 알지만 정확히 뭔지는 모르는, 누군가에게는 상식이고 어느 누군가에겐 지식일 그 거대한 돌덩어리를.


"이게 타지마할이에요 여러분."


그 녀석은 불 꺼진 강의실 한 면을 새하얗게 채우며 극적인 모습으로 등장했다. 짜잔! 하듯이. 안녕! 하듯이. 커다란 스크린에 그것이 나타난 순간, 나는 어쩐지 인도에 대한 차 교수의 마음을 약간은 이해해버리고 말았다. 너무 좋은데 왜 좋은지 도무지 설명이 안 되는 그 감정을. 왠지 모르겠지만 죽기 전에 저건 꼭 한 번 내 눈으로 봐야 할 것 같은 알 수 없는 기분을. 


그리고 태어나 처음으로 상상해보았다. 

비행기에 앉아 있는 나를. 인도의 어느 번잡한 거리를 걷고 있는 나를. 스크린 속 타지마할이 아니라, 실제 하는 그것을 눈앞에서 보고 있을 나를. 이때만 해도 몰랐다. 머지않아 내가 공모전에 1등으로 당선할 거란 걸. 그래서 인도 여행을 할 정도의 돈이 주어지게 될 거란 걸. 그리고 내 엄마가 그 여행을 흔쾌히 허락해 줄 거란 걸. 상상이 현실로 이루어지는 기쁨을, 머지않아 내가 맛보게 될 거라는 사실을.




비행기 좌석에 등을 기댔다


심장이 불필요할 정도로 크게 뛰었다. 

촌스럽게 왜 이래. 제발 처음인 티 내지 마! 


나는 해외여행 처음 가보는 사람 티를 안 내고 싶어 하는 티를 무지하게 내며 드디어 이륙했다. 발밑에서 까마득하게 멀어지는 대한민국을 보며. 잠깐 잊어도 되는 현실과 안녕하며, 차 교수의 입을 통과해 내게로 전해진 인도의 모습이, 날씨가, 사람이, 타지마할이 정말로 그 자리에 우두커니 있을지를 무수히 상상하며 아득히 멀어지는 내 나라의 겨울을 내려다보았던 것 같다.




* 작가의 말 *

차 교수에 대한 이야기를 말이 아닌 글로 표현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여행 강연을 진행하는 동안 나의 첫 해외여행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인도가 내게 왜 특별한지에 대한 질문을 셀 수 없이 받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차 교수에 대한 이야기를 빼고는 그 어떤 것도 설명되지 않았다. 글로 쓰는 내내 마음이 묵직했던 이유도 어쩌면 그녀에 대한 나의 기억을 훼손하거나 지나치게 과장하지 않기 위한 무던한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리라.

먼지처럼 조금씩 쌓인 인도에 대한 궁금증과, (나중에야 깨달았지만) 차 교수에 대한 동경과, 어렸고 뭘 몰랐기 때문에 저지를 수 있었던 인도 여행은 바로 이런 과정과 이유로 시작되었다. 


나는 차 교수를 알지만 그녀는 나를 모르기에, 지금 이 자리에서 약간은 헌정하는 마음으로 언급해본다. 2010년, 경북대학교 예술대학에서 인도미술의 이해 수업을 두 차례 진행했던 차 씨 성을 가진 여성. 지금은 중년의 나이가 되었을 그녀. 당신 덕분에 스물셋이던 어느 학생이 지금은 인도를 너무 사랑하는 여행작가가 되었다고. 나 역시 당신처럼 인도를 너무 사랑하게 되었다고. 나의 세계를 이토록 넓혀준 당신을, 그 빛나는 얼굴을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기억하는 어느 이가 대한민국에 존재하고 있다고 말이다.



스물세 살의 바라나시
마음도 어렸던 나


그리고 10년 뒤. 서른셋. 여섯 번째 인도 여행에서


10년 동안 변함없는 바라나시와, 얼마나 변한지 알 수 없는 나


이런 사진도 물론 좋지만


10년 전 사진은 또 다른 느낌이 있죠


너무 힘들겠지만 힘든 만큼 돈을 더 버는 사이클 릭샤. 이것을 보고 여행자들은 '릭샤왈라의 딜레마'라고 부른다.


10년 전 바라나시 사진이지만, 어제 찍었다고 해도 아무도 의심하지 않겠지


와씨...하물며 소도 쌍꺼풀이 있는데!!라고 생각하며 찍었던 사진


여섯 번의 인도 모두 좋았지만
아무래도 처음의 기억을 넘진 못하더라구요


그럼, 다음 편에서 만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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