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추울 때 태어났으니 꼭 추운 나라에서 생일을 보내라고
블라디보스톡을 방문한 건
몇 년 전, 그러니까 내가
본격적으로 아프기 전인
어느 겨울이었다
블라디보스톡을 방문한 건 몇 년 전, 그러니까 내가 본격적으로 아프기 전 어느 겨울이었다. 생일이 다가오고 있었고 그래서 친구들이 돈을 모아 비행기 표를 선물했다. 너는 추울 때 태어났으니 꼭 추운 나라에서 생일을 보내라고. 기왕이면 1년 내내 겨울인 나라였으면 좋겠다고도 덧붙였다. 사실 내 생일은 절기상 가을이었으나 어쨌거나 친구들의 성의는 고마웠기 때문에 가만히 받았다. 잘 다녀오겠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러시아 사람들이 그다지 친절하진 않다는 설명은 여러 번 듣거나 읽었다. 다녀와 본 동료가. 먼저 겪어본 여행자들이. 그래선지 공항에 내려 택시를 탈 때도, 내려서 숙소까지 찾아가는 길을 헤맬 때도 신기와 경멸이 반반씩 섞인 낯선 눈길을 자주 받았으나 아무렇지 않았다. 내가 아무렇지 않으면 정말 아무렇지 않을 일이 될 것이었다.
숙소는 광장과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걷는 걸 좋아하지만 너무 많이 걷는 건 싫기 때문에 일부러 어디서나 보이고 어디든 찾아갈 수 있는 곳으로 선택했다. 11월의 러시아는 추웠다. 보온 역할을 한다는 얇은 내복과 레깅스를 겹겹이 입었는데도 그랬다. 러시아인들은 숨길 것이 많은 사람들처럼 발목이나 손, 목 등을 이런저런 것들로 감쌌다. 그 사이에서 나는 코드 한 장을 두른, 뭘 모르는 동아시아인인 채 숙소를 향해 걸었다. 내 옷이 러시아를 여행하기에 지나치게 부주의하다는 건 게스트하우스 직원이 깜짝 놀란 표정으로 말해주어 더욱 확실히 알 수 있었다.
"헤이 코리안. 너 그러다 얼어 죽어."
직원은 영어에 능숙했고 외국인에게 친절히 말 거는 법을 잘 알았다. 큰 키에 하얀 얼굴, 작은 얼굴, 밝은 색 머리. 직원은 우리가 서양인을 생각했을 때 흔히 떠올리는 대부분의 것을 가진 여자였다. 그녀는 한국에서 김치를 먹어본 적이 있다고, 블라디보스톡에는 괜찮은 한국 식당이 아주 많다고 설명해 주었다. 그녀의 안내에 따라 복도를 걸어 방으로 향했다. 숙소에는 네 명이나 여덟 명이 머물 수 있는 도미토리도 있었지만 나는 홀로 방을 쓰기로 결정했다. (그때는 몰랐으나) 나는 극심한 불면증을 앓기 직전이었고 때문에 잠자리가 바뀌면 곧장 가위에 눌렸다. 깊게 잠들지 못하는 사람은 쉽게 지쳤고, 때문에 나는 방에 들어가자마자 옷만 대충 갈아입은 채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로비와 복도는 외국 같았는데 막상 방으로 들어오니 한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저그런 여관방 같았다. 눈에 익은 몰딩. 센스 없는 이불 색. 그리고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 창문. 아무리 생각해도 실내 설계를 한국인이 맡은 게 틀림없어. 나는 약간 심드렁해진 마음으로 인스타그램을 열었다.
- 러시아 도착
몇 장의 사진을 올리고, 밀린 카톡에 답장을 하고, 커뮤니티에 들어가 이런저런 글들을 읽다 잠이 들었고 이날도 나는 어김없이 가위에 눌렸다.
약 네 시간 정도 잔 뒤, 조금 찌부드드한 몸으로 아침을 시작했다. 숙소비에는 조식이 포함되어 있지만 외국에서의 첫 끼니를 그렇게 해결하고 싶지는 않았다. 샤워를 하고, 적당한 화장을 한 채 조금은 그럴 듯 한 곳에서 이국의 무엇을 먹어야지. 숙소는 따뜻했고 뜨거운 물도 잘 나왔기 때문에 나는 오래오래 꼼꼼히 씻었다. 머리를 바짝 말리지 않고 나왔다는 사실은 숙소 현관을 열자마자 곧장 깨달았다. 물기가 남은 두피 속으로 러시아의 칼바람이 날아왔고 나는 피부가 약간 벗겨질 것 같은 느낌을 받으며 모닝 담배를 태웠다. 나처럼 숙소를 나서기 전 연초를 피우는 사람은 많았다. 계단 겸 흡연실인 공간에는 각기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앉거나 선 채로 연기를 뻐끔거렸다. 누구는 멘솔. 누구는 시가. 냄새도 모양도 달랐지만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아침 의식을 치른 뒤 인사 없이 헤어졌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피부로는 느낄 수 있는 비였다. 생각해보니 애초에 머리를 다 말릴 필요가 없었다. 러시아는 여러모로 불친절한 곳이니까. 사람도. 날씨도.
막상 걸으니 생각만큼 춥지는 않았다. 어제보다 많은 옷을 껴입었기 때문이다. 이런 기온을 가진 나라일수록 두껍게 한 겹을 입는 것보다 얇게 여러 겹을 입는 것이 도움이 된다. 캐나다와 미국 여행을 할 때도 이 사실을 알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스물다섯보다 7년의 세월을 더 살아낸 나는 더운 나라와 추운 나라를 조금 더 잘 여행할 줄 알게 되었고, 영어를 할 때 겁먹지 않았으며 잘 못 된 길로 들어섰을 때의 긴장과 설렘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이런 게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라면 나는 착실히 올바른 길로 가고 있으리라. 이런 생각을 하는 동안 여러 러시아 사람들이 곁을 지나갔고, 한 명의 동아시아인이 영어로 길을 물었고, 낯선 글자들이 가득 적힌 간판들이 무수히 나타났다 사라졌다. 러시아어는 글자라기보다는 거의 그림에 가까웠는데 어떤 것은 영어와 생김이 비슷해 괜히 따라 읽어보게 되는 매력을 가졌다.
아점을 먹기로 결정한 식당은 넓고 낡았고 직원도 친절하지 않았지만 내부가 따뜻했기 때문에 모든 부족함을 상쇄했다. 그곳에서 나는 메뉴판을 받았고, 그림만 보고 오징어 구이와 만둣국을 주문했다. 온통 러시아어로만 적힌 메뉴판에서 그나마 생김이 친숙한 음식들이었다. 러시아 전통 음식이라는 만둣국은 중국집에서 먹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만두와 국물이 따로 나온다는 점이 신기했다. 나는 젓가락으로 만두를 하나씩 집어먹다 이따금씩 숟가락으로 국물을 떠먹었는데 나중에 직원이 '여기에 육수를 부어 먹는 거예요'라고 설명해 준 뒤에야 제대로 된 '러시아 만둣국'을 완성할 수 있었다. 직원은 그릇에 만두와 국물이 온전히 담긴 것을 확인한 후에야 만족했다는 듯 카운터로 돌아갔다.
따뜻한 것을 먹고 나오자 조금 든든한 기분이 되었다. 아까보다 훨씬 덜 추운 것 같기도 했다. 나는 길이 난 곳으로 걷거나 마음에 드는 곳에서 커피를 마시거나 케이크를 먹는 방식으로 시간을 보냈다. 광장은 생각보다 좁았기 때문에 의도치 않게 동네의 랜드마크들을 자주 만났다. 우두커니 선 동상. 바다. 백화점. 간판이 익숙한 음식점들. 나는 여행을 떠나기 전 책이나 블로그를 통해 미리 그 나라를 맛보는 걸 그다지 선호하지 않지만 최소 국제 미아가 되지 않기 위한 간단한 노력 정도는 했다. 대표 관광지의 위치나 의미를 알아보는 건 그중 가장 기본적인 일이었고 덕분에 걷는 동안 트래블과 투어를 동시에 진행할 수 있었다.
러시아는 확실히 다른 나라들과는 달랐다. 인도나 스리랑카처럼 먼저 다가오는 이도 없었고 외국인을 신기해하지도 않았으며 때문에 누군가와 대화할 기회 역시 주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우연히 눈을 마주쳤을 때 웃어주는 것만큼은 여타 나라들과 다르지 않았다. 활짝 웃는 건 아니지만. 딱히 반가워하는 것 같지도 않았지만 어쨌든. 어쨌든 말이다. 첫날 나에게 말을 건 사람은 딱 두 명. 놀이터 만난 러시아 아이들이었다. 피부색이라든가 언어의 차이 같은 것에 골몰하지 않을 나이. 그리고 충분히 외국인을 신기해할 나이. 그 아이들과 나는 그네에 앉거나 같이 미끄럼틀을 타는 식으로 시간을 보냈다. 아이들은 나에게 뭔가 말을 걸고 싶은 듯 우물쭈물했는데 나는 시간이 조금 지나고서야 그들이 내 이름을 궁금해한다는 것을 알았다. 가방에서 종이와 볼펜을 꺼내 영어 이름을 적어주었다. JI-A. 한국어로는 '지아'라고 읽지만 러시아로는 어떤 발음인지 알 수 없었다. 아이들은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소리 없이 웃었다. 어느 나라를 가든 아이들은 순수하다. 어떠한 기준도 없이 보이는 대로만 보기 때문이리라. 나는 그들에게 만둣국을 제대로 먹을 줄 모르는 한국인도, 코트만 걸치고 러시아로 날아온 외국인도 아닌 그저 지아이기만을 바랐다.
둘째 날과 셋째 날은 약속이 있었다. SNS를 통해 알게 된 독자가 마침 블라디보스톡을 여행 중이라고 메시지를 보내왔기 때문이다. 그는 나와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했고 원한다면 러시아를 배경으로 스냅사진도 찍어주겠다고 했다. 그리고 내가 불편해할 것을 우려했는지 여자 여행자도 한 명 동행할 예정이니 걱정하지 말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흔쾌히 그의 청에 응했다. 웬만한 투어는 전 날 모두 마쳤고, 무엇보다도 조금 외로웠기 때문이다. 약속 장소에는 프로필 사진에서 보았던 남자와 처음 보는 여자가 앉아 있었다. 두 사람은 원래 한국에서도 아는 사이였는데 우연히 러시아 여행 일정이 겹쳐 며칠간 함께 있기로 했다고 했다. 두 사람이 머문다는 숙소는 광장에서 버스를 타고 가야 할 정도로 아주 먼 곳에 있었다. 우리는 블라디보스톡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해적커피에 앉아 아메리카노와 티라미수를 나누어 먹었다. 두 사람은 며칠 뒤 모스크바로 향하는 횡단열차를 탈 예정이라고 했다. 가는 길에 바이칼 호수도 볼 거예요 언니. 이제는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여자는 무람없이 맑았고 때문에 나는 조금 더 편하게 두 사람 사이에 스며들었다.
여행할 때 딱히 일정을 정해두지 않는 나와 달리 두 사람은 계획된 플랜대로 움직여야 하는 스타일이었다. 그 이유에는 며칠 뒤 모스크바로 향하는 기차를 타야 한다는 사실과, 한 번 이곳을 떠나면 언제 다시 올지 모른다는 아쉬운 마음이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두 사람은 블라디보스톡 근교에 있는 여행지와 맛집으로 알려진 레스토랑 리스트를 갖고 있었고 이 중 어디를 포기하고 어디를 선택할 것인지를 두고 자주 고민했다. 나는 이틀 동안 두 사람이 이끄는 대로 맛있는 것을 먹었고, 남자의 제안대로 스냅 사진을 찍었고, 혼자였다면 절대로 가보지 않았을 것 같은 여러 관광지에도 들렀다.
여자는 여행하는 내내 예쁜 마트료시카만 발견하면 눈을 반짝이며 쇼윈도에서 한참을 서성였다. 전 얘가 너무 좋아요 언니. 마트료시카는 나무로 만든 러시아 전통 인형인데 인형을 위아래로 가르면 똑같이 생긴 인형이 여러 개 반복해서 나오는 구조였다. 비싼 것은 열 개도 넘게 나왔고 싼 것은 세 개에서 그쳤다. 인형 가게 주인은 크기가 클수록 비싸며 공장에서 찍어내는 것과 손으로 직접 제작하는 것 사이에서도 가격 차가 크게 난다고 설명했다. 어떤 것이 공장 인형이고 어떤 것이 공들인 인형인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저렴한 것들은 양손이 짝짝이거나 아이라인이 삐져나오거나 위아래 패턴이 어긋 나는 식으로 부실함을 드러냈고, 크기가 아주 크거나 반짝이를 많이 붙인 인형들은 한눈에 보아도 값이 꽤 나가 보였다. 여자는 그중 보랏빛 반짝이를 잔뜩 칠한 인형을 가리키며 가격을 물었다. 사장은 무심한 표정으로 계산기를 들어 숫자를 찍어 보여주었다. 우와. 인형의 몸값은 전날 우리가 먹은 랍스터와 파스타와 맥주 값을 합친 것의 다섯 배를 웃돌았다. 여자는 조금 시무룩해진 마음으로 걸음을 돌렸다. 애초에 살 계획이 없었던 남자와 나는 전날 찍지 못한 스냅샷을 전봇대 아래서, 다리 위에서 마음껏 찍으며 낮 시간을 보냈다. 다행히 이틀 내내 비가 내리지 않았고, 때문에 우리는 마지막으로 에끌레어를 먹고 헤어질 때까지 젖지 않은 상태로 여행할 수 있었다.
두 사람이 떠나고 다시 혼자가 된 날, 나는 점심을 먹으러 한식당으로 향했다. 러시아는 너무 추웠고 때문에 시도 때도 없이 뜨끈한 국물이 당겼다. 러시아 만둣국은 맛있었지만 여러 번 먹으니 조금 느끼했고 무엇보다 새콤한 김치가 너무 먹고 싶었다. 김치나 된장이 얼마나 양질의 만족을 주는 음식인지는 한국을 떠나본 자라면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다. 타국에서 만나는 내 나라 음식. 그 냄새와 맛과 정서. 나는 혼자가 되자마자 부족해진 무엇을 채우러 이 동네에서 제일 비싸고 유명하다는 한식당을 찾아가기로 결정했다.
식당에 도착하자 안쪽에서 직원이 문을 열어주었다. 나이가 지긋한 러시아 직원은 내게 옷을 맡기겠냐고 물었다. 러시아에는 현관에서 코트나 점퍼를 벗어 직원에게 맡기는 특이한 문화가 있었다. 아무래도 추운 나라고 내부에는 두꺼운 옷을 보관할 정도로 공간이 넓지 않기 때문에 편의적 차원에서 생긴 관습인 것 같았다. 나는 종아리까지 내려오는 롱 코트를 벗어 직원에게 넘겼다. 직원은 별다른 말없이 코트를 옷걸이에 건 뒤 자리로 안내했다. 며칠 사이에 나는 러시아인들 특유의 무뚝뚝함에 적응해 있었는데 이것도 받아들이고 나니 편한 점이 많았다. 우선 불필요한 말을 하지 않아도 되어서 좋았고, 때문에 억지로 웃거나 괜찮은 척하거나 즐거운 척 필요가 없었다. 제2외국어를 써야 하는 나로서는 말을 하지 않음으로써 생각할 시간을 아주 많이 얻었고 때문에 뭔가를 썼다 지웠다 하는 방식으로 여행을 기록할 기회를 무수히 가졌다. 러시아인들은 필요할 때만 친절했고 그런 식의 교감은 이 나라만의 어떤 매력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이때 나는 한식방에 앉아 노트를 꺼내 이렇게 썼다.
- 아가리 묵념하는 시간. 너무 좋다.
김치찌개와 새우튀김을 마구 먹어치운 뒤 든든해진 마음으로 식당을 나섰다. 옷을 맡아준 직원에게 두둑이 팁을 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따뜻하고 맛있는 음식은 여행자에게 무엇을 보거나 어디론가 걸을 힘을 주었고 때문에 나는 전날이나 그 전날 가보지 못한 골목 어귀를 열심히 돌아다녔다.
떠나기 전날에는 비가 많이 내렸다. 혹시 몰라 챙겨온 페도라를 머리 위에 눌러썼지만 곧 정수리가 축축해졌다. 갈 곳이 없어진 데다 몹시 추워진 나는 광장에서 가장 큰 쇼핑몰로 들어갔다. 남자와 여자가 모스크바로 떠나기 전, 여행객들이 기념품을 사기 위해 자주 들리는 곳이라 설명해 준 그 쇼핑몰이었다. 러시아 쇼핑센터는 한국과 딱히 다를 것 없는 모습이었지만 가격만큼은 크게 달랐다. 한국에서는 삼천 원을 넘게 줘야 먹을 수 있는 알룐까 초콜릿이 고작 천 원에 판매되고 있었다. 당시만 해도 한국에서 보기 힘들었던 당근 크림도 있었고, 유명하다는 풋 크림도 저렴한 가격에 올라와 있었다. 나는 남은 러시아 현금과 선물을 건넬만한 인물들의 머릿수를 가만히 셈해보며 카트에 이런저런 물품을 담았다. 오늘 저녁에 먹을 컵라면과 생수, 그리고 알 수 없는 언어가 적힌 젤리와 캔디도 샀다. 러시아 물가는 정말 저렴했고 때문에 많은 것을 샀음에도 현금이 넉넉히 남았다. 공항으로 돌아갈 택시비와 다음날 식비를 제하고도 충분히 남을 금액이었다. 현금을 두둑이 가진 여행자는 조금 우쭐해진 마음으로 숙소로 돌아갔다. 블라디보스톡에서의 마지막 밤이었다.
오후 비행기를 타야 했기 때문에 마지막 날은 조금 분주했다. 체크아웃 시간을 계산해 일찍 일어나야 했고, 수하물 무게를 고려해 짐을 여기저기로 잘 분배해 정리해야 했다. 기념품을 너무 많이 샀기 때문에 캐리어에 공간이 부족했고 때문에 나는 코트 두 개를 겹쳐 입는 식으로 억지로 자리를 확보했다. 카메라와 여권을 챙기고, 마지막으로 화장실에 두고 온 물건은 없는지 확인한 뒤 문을 닫았다. 복도 끝으로 연결된 로비에서는 외국인들이 뭔가를 만들어 먹는지 한창 복작한 소리를 냈다. 벌써 마지막이라니. 고작 닷새 머물렀을 뿐이지만 벌써 이 복도가 익숙했다. 직원에게 카트키를 내밀자 그녀가 방문해 주어서 고맙다며 악수를 청했다. 그녀는 내가 아는 한 러시아에서 가장 웃음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러다 그녀는 혹시 남은 러시아 현금이 있는지를 물었다. 팁을 요청하는 것일까 잠깐 고민했지만 까짓것 원하면 줄 수도 있겠다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이 나라를 떠나면 한낱 종이 쪼가리에 불과할 것들이었다. 그러나 직원은 돈을 요구하는 대신 반대편 복도 쪽으로 나를 이끌었다. 묵직해진 캐리어를 카운터에 잠시 두고 그녀의 뒤를 따라갔다. 직원은 카펫이 깔린 복도를 총총 걷다 한곳에서 멈춰 섰다. 그곳엔 기념품을 파는 아주 작은 쇼케이스가 있었다.
"남은 현금으로 이런 것들을 사는 사람들이 꽤 있길래요."
작은 유리부스 안에는 러시아어가 적힌 배지나 티셔츠, 연필, 모자 같은 것들이 들어 있었다. 그중에는 빨간색 마트료시카도 있었다. 양쪽 눈이 삐뚤삐뚤하고 위아래가 맞지 않게 접합된 녀석이었다. 녀석은 조금 억울한 것 같은 눈으로 나를 멀뚱히 쳐다보았다. 저건 얼마예요. 직원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금액을 알려주었다. 두어 개는 넉넉히 살 수 있을 정도로 저렴했다. 그래도 나는 딱 하나만 사기로 결정했다.
"저거 하나 주세요"
안 그래도 터질 것 같은 캐리어를 억지로 벌려 녀석을 집어넣었다. 별로 예쁘지도 않고 나무 냄새를 많이 풍기는 빨간색 인형은 나와 함께 러시아를 떠나 한국으로 갈 것이었다. 남은 현금은 다음에 왔을 때 써야지. 과연 다음에도 러시아를 올 기회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어쨌거나. 친절한 직원이 조금 덜 친절한 택시 기사에게 나를 인계하며 손을 흔들었다. 춥고, 맛있고, 외롭고, 신기했던 러시아 여행이 끝나기 직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