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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현지 Oct 06. 2020

12. 전주까지 갔는데 말입니다

우리, 전라도 사람이랑 말해본 적이 없네


경상도 사람이
전라도에 갈 기회는
자주 주어지지 않는다


경상도 사람이 전라도에 갈 기회는 자주 주어지지 않는다. 가족여행으로 여수 엑스포를 방문했던 일이나 직장 동료들과 잠시 맛집 투어를 다녀온 것 외에는 나 역시 별다른 방문 이력이 없었다. 전주로 향한 건 출장 때문이었다. 축제 관련해 의뢰받은 건이 있었고 마침 떠나기 좋은 가을이었기 때문에 겸사겸사 친구와 1박을 하기로 결정했다.


글쓰기를 업으로 삼기 전, 내가 아는 전라도 사람은 거의 없었다. 졸업한 대학교에는 타지역 학생들이 비교적 많은 편이었지만 그럼에도 전라도 출신은 희귀했다. 아무래도 경상도와 전라도 사이에는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어떤 막이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전라도 사람들을 만난 건 본격적으로 여행을 시작하고부터다. 여행 칼럼을 쓰거나 콘텐츠 만드는 것이 주 업무였던 나는 인도의 사막을 방문했고, 그곳에서 목포와 광주와 군산 출신 여행자를 만났다.


"아따 이 느작없는 새끼"


낙타를 타고 사막 깊은 곳으로 들어가는 동안. 모닥불을 앞에 두고 이런저런 게임을 하는 동안. 차가운 모래에 누워 별을 보는 동안 나는 전라도 사람들이 나누는 말들을 노래처럼 들었다. 그들은 문장을 시작할 때 '있냐'라는 단어를 습관처럼 붙였다. 그건 경상도 사투리의 '있잖아' 정도로 치환되는 듯했다. 가령 '있냐잉, 니 그거 기억허냐' 하는 식. 그것 말고도 '그냐' 혹은 끝을 올려 말하는 '이이' 같은 추임새가 있었다. 가만 듣다 보면 전라도 사투리에도 남도와 북도의 구분이 확실했다. 군산 출신 여행자는 사투리를 거의 안 썼지만 광주나 목포로 내려갈수록 억양이 구수해지거나 사용하는 단어나 표현에도 차이를 보였다. 특히 목포 출신 여행자는 대체로 뭔가 따거나 째거나 담그겠다는 농담을 자주 했는데 그건 정말이지 티비에서나 듣던 표현이었기 때문에 들을 때마다 깜짝깜짝 놀랐다. 놀라는 것조차 실례일까 봐 최대한 몸을 들썩이거나 시선을 돌린다거나 하는 것도 조심했다.


고향에 대해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는 나는 전라도 사람들 특유의 음식 부심이 부러웠다. 남도의 삼합이나 여수의 간장게장, 토렴식 콩나물국밥이나 전라도 김치 같은 것들. 그것 말고도 역사라든가 문화라든가 예로부터 전해져오는 풍요들이 그 지역에는 많았다. 전라도는 음식 자부심이 강해 프랜차이즈 음식점을 가도 집집마다 맛이 다르다던데. 전라도에 대해 모르지 않는 만큼만 아는 나는 토박이들이 나누는 대화를 구전 설화 듣듯 섬겨 들으며 그 지역에 대해 가만히 상상해보았다.



일박을 하기로 결정한 숙소는 전주 터미널에서 멀지 않았다. 낮은 가격에 비해 평이 아주 높은 호텔이었다. 호텔은 입구에서부터 고풍스러운 인테리어로 단박에 눈길을 사로잡았지만 당장은 일이 우선이었기 때문에 장비만 챙겨 숙소를 나섰다. 축제 현장에는 사람이 많았고 유명 인사들도 대거 참석하는 바람에 취재진으로 바글거렸다. 하늘에는 드론 몇 대가 파리처럼 떠다녔고 나는 인파를 헤집으며 계속 뭔가를 찍거나 썼다. 그러는 동안 두 시간이 지나갔다. 노동을 마치고 처음 먹은 음식은 비빔밥이었는데 몸이 노곤해서인지 입안에 씹히는 콩나물조차 달게 느껴졌다.


취재가 끝난 뒤 본격적으로 여행을 시작했다. 유명 맛집들을 따로 알아오지는 않았다. 본래 투어리스트를 설계하는 성격이 아닐뿐더러 전라도는 어느 음식점을 가든 실패하지 않는다는 토박이들의 말을 믿었기 때문이다. 전라도 초보답게 한옥 마을부터 천천히 돌아보았다. 한옥 마을에는 평일에도 사람이 많았다. 그중 절반은 외국인이었는데 그들은 어디선가 대여한 색색의 한복을 입고 거리를 활보했다. 그중엔 중전 옷을 차려입은 남자도, 곤룡포를 두른 여자도, 기생처럼 꾸민 어린아이도 있었다. 온통 특이하게 꾸민 사람들 중 너무 평범해 보이는 우리는 약간 소심한 마음이 된 채 콩나물국밥집으로 들어갔다.


전주식 콩나물국밥에는 삶은 오징어가 들어갔다. 기본적으로 약간의 오징어가 들어있긴 하지만 더 많이 먹고 싶다면 2,000원을 추가하면 되는 식이었다. 친구는 오징어를 추가 주문했고 나는 하지 않았다. 뚝배기는 곧장 나왔지만 어쩐지 이모님이 밥을 가져다주지 않으셨다. 우리는 공깃밥을 주실 때까지 기다리다가 문득 뭔가 깨닫곤 숟가락으로 뚝배기를 휘저었다. 뜨거운 김 사이로 통통하게 불은 쌀알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렇게 또 관광객 티를 냅니다. 우리는 히히 웃으며 처음으로 따로 국밥이 아닌 토렴식 국밥을 먹었다. 전라도 콩나물국밥은 오징어가 있든 없든 맛있었다.



이후 우리는 먹으러 온 애들처럼 눈에 보이는 웬만한 것들은 대부분 사 먹었다. 닭꼬치도 먹고 다코야끼도 먹고 다방 커피도 마셨다. 한옥 마을에는 맛있어 보이는 게 너무 많았고 그것들은 대체로 비쌌지만 가격은 여행 기분에 만취한 이들에게 별로 중요한 부분이 아니었다. 우리는 다이어트 따위는 잠시 잊기로 하고 수제 팥빙수도 먹고 아이스크림도 사 먹었다. 이상하게 여행 중에는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팠다. 전주가 여행자들을 그렇게 만드는 것인지 아니면 우리가 이상한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전주에서 나는 선물을 받았다. 곧 생일이 다가오기도 했고 한복이 갖고 싶다고 전부터 노래를 불렀던 사실을 친구가 기억해내서이기도 했다. 우리는 전주역 근처에 있는 한복 집에서 예쁜 저고리와 치마, 두루마기들을 입어보았다. 그중 내가 가장 예쁘다고 한 보라색 원피스를 친구가 계산했다. 속 끈 두 개와 겉 끈 하나로 간편히 입고 벗을 수 있는 형태였는데 왠지 평상시에는 절대 못 입을 것 같은 옷이었다. 이런 옷일수록 선물 받으면 더 좋지. 내 돈 주고 사긴 아깝지만 누가 주면 너무 좋은 거. 친구는 지갑에 카드를 집어넣으며 생일 축하한다고 말했다. 축하한다는 말은 언제 들어도 늘 벅찼기 때문에 고맙다는 말도 잊은 채 웃었다.



보랏빛 한복을 입고 숙소로 돌아오니 사장님이 너무 예쁘다고 칭찬해 주셨다. 얘가 사줬어요. 곧 제 생일이거든요. 우리는 묻지도 않은 말을 하며 숙소로 올라왔다. 룸은 호텔보다는 여관에 가까웠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우리는 잠옷으로 갈아입고 야식으로 사온 치킨을 먹었다.


"여기는 뭘 먹어도 이렇게 맛있다 야"

"그니까. 전주에 살면 살찔 듯."


친구가 다리를 먹고 나는 날개를 먹었다. 전주식으로 만들었다는 치킨은 튀김 옷이 두껍지 않아 좋았다. 쫄깃쫄깃한 게 약간 닭강정 같기도 했다. 배불리 먹은 뒤 우리는 침대에 아무렇게나 누워 이야기를 나눴다. 친구는 바로 누웠고 나는 친구의 배를 베개 삼아 모로 누웠다. 얘기를 하면 할수록 온통 먹은 기억뿐이지만 왠지 그것만으로 충분한 것 같았다. 그녀와 내가 놓친 전주의 여러 가지가 분명히 많겠지만. 분명 그렇겠지만. 친구가 작게 트림을 하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 우리, 여기서 전라도 사람이랑 말해본 적이 없네."

"아? 진짜 그러네?"

"택시 기사님이랑 주방 이모님 말고는 전부 타지역 사람이었잖아."

"맞아, 전부 외국인이거나 관광객이었지."


왜 그 생각을 못 했을까. 나는 사막에서 들었던 여러 가지 전라도 사투리를 기억해냈다. 있냐. 그냐. 허냐잉. 같은 것들. 정작 전라도에서는 듣지 못한 말들. 나는 어쩌면 전주가 약간 북쪽이라 사투리를 안 쓰는 건 아닐까도 생각해봤지만 왠지 그건 아닌 것 같았다. 우리가 너무 관광지만 다녀서였을까. 친구는 잘 모르겠다고 했다. 다만 다시 전라도를 오게 되면 그때는 입 말고 귀을 좀 열자며 웃었다. 나는 귀도 열고 입도 열자고 대답했다. 전라도에는 맛있는 게 너무 많으니까. 왠지 그때도 우리는 먹기 바쁠 것 같으니까. 친구가 웃을 때마다 볼록하게 부른 배가 뒤통수를 둥둥 울렸다. 내 고향 반대편에서의 밤이 천천히 지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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