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거트는 못 먹었지만 그래도 괜찮아요
스위스에서 불가리아로 향하는
저가항공은 폴란드를 경유했다
폴란드의 수도가 바르샤바라는 사실은 스위스에서 표를 끊을 때 처음 알았다. 폴란드는 몇 시간만 경유했지만 모든 이미그레이션 과정을 다시 밟았다. 공항 직원은 많은 것을 물었다. 스위스는 무슨 일로 갔었냐고. 불가리아에 연고는 있냐고. 너네 나라로 돌아가는 표는 확보해놨냐고. 그러다 진녹색 여권을 뒤늦게 확인하고 별안간 사과했다.
"어 미안. 한국 사람이었군."
직원은 도장을 재빨리 찍어 건넸다. 심사 대상자의 국적과 질문의 농도는 어쩐지 연관이 있는 듯했다. 여권을 앞 가방에 챙겨 넣고 게이트를 통과했다. 심신이 몹시 피로했다.
불가리아 여행은 갑자기 결정했다. 곧장 한국으로 돌아갔다면 강연 하나를 더 할 수도 있었겠지만 들어온 청탁을 정중히 거절했다. 돈을 많이 벌고 싶음에도 그랬다. 지금은 일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오랜 연애를 막 끝낸 사람에겐 시간이 필요했다. 시시때때로 혹은 그보다 더 자주 떠오를 기억들을 견디고, 연결된 지인들에게 이별을 알리고 현실을 받아들이는 동안 나는 아프고 쓰린 방식으로 소진될 것이 분명했다. 내가 걔를 알듯 걔도 나를 알았다. 이번만큼은 절대 서로를 붙잡지 않을 것이었다. 스스로 버텨낼 힘이 내게는 필요했다. 그 사이를 못 참고 쪼르르 그 애에게 달려가버리지 않도록. 아닌 것을 더 이상 이어나가지 않도록. 서로를 위해 조금 더 현실과 분리된 채 있고 싶었다. 강연료와 클라이언트의 기대를 저버린 대신 얻은 불가리아행 표를 주머니 가득 움켜잡았다.
불가리아에는 친구가 있었다. 세계여행자 박은 아시아 여행을 끝내고 유럽으로 넘어와있었다. 나의 오랜 연애사를 알고 있는 박은 결별 소식을 듣자마자 장난스레 말했다.
- 우울하겠네. 불가리아로 와. 놀자
박은 농담을 좋아했다. 그러면서 잘 했기 때문에 그와 얘기할 때면 자주 웃었다. 박과 나는 성격이 정말로 안 맞았는데 그럼에도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던 건 그의 유머러스한 말들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의 입담에 박의 곁을 맴도는 여자들은 아주 많았다. 불가리아로 오라는 말도 아마 농담이었겠지만 진짜로 나는 표를 끊었다. 한국이 아닌 곳에서 조금이라도 웃고 싶었다. 그런 식으로나마 나아질 마음이라면 정말로 좋겠다고 생각했다.
몇 개월 만에 만난 박은 그새 살이 빠져 있었다. 지방질이 적은 몸은 안 그래도 큰 키를 더욱 커 보이게 했다. 낡은 티가 나는 흰색 티셔츠는 전에도 본 적이 있었다. 박에게서는 떠돈 지 오래된 사람 특유의 나른한 분위기가 났다. 깎지 않은 수염과 까맣게 태운 피부는 남자 여행자들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멋이었다. 나른한 남자와 며칠 전 이별한 여자는 공항에서 만나자마자 욕지거리를 주고받았다. 숫자나 영어 단어가 섞인 욕들은 어쩐지 우리 사이에서는 인사로 통용되고 있었다. 이상하게 평생 안 하던 욕도 박만 만나면 폭죽 터지듯 터졌다. 너무 자연스럽게 나와서 스스로도 가끔 당황했다. 그건 박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공항 밖은 따뜻했다. 스위스가 생각나지 않을 만큼 좋은 날씨였다.
소피아에서의 시간은 괜찮았다. 혼자 견딜 뻔한 시간을 박이 맞들어준 덕분이었다. 박이 예약한 6인실 혼성 도미토리는 시설이 나쁘지 않았지만 자는 시간 외에는 머물지 않았다. 같은 방을 쓰는 서양인 남자의 발냄새가 너무 심했기 때문이다. 저렇게 섹시한 남자의 발에서 이런 공격적인 냄새가 나다니. 약간 스컹크의 방구같은 느낌이랄까. 어쩐지 조금 비현실적인 기분이 되었다.
우리는 타운에서 밥을 먹거나 커피를 마시며 시간을 보냈다. 이발소도 들렀다. 박은 면도는 안 하지만 이발은 꼭 하는 남자였다. 그는 머리를 깎은 후 약간 단정하고 어색해진 모습으로 오래된 음반가게를 기웃거렸다. 음반을 구경하는 김에 유리창에 비친 머리통을 요리조리 살피기도 했다. 우리는 조리되지 않은 산딸기나 블루베리를 생으로 씹어 먹으며 낡은 거리를 걸었다. 키 차이가 한 뼘이나 났기 때문에 박의 걸음을 따라잡다 자주 숨이 찼다. 종종 걸음으로도 맞추기 힘든 속도였다. 그럴 때마다 뜬금없이 헤어진 남자친구가 불쑥 떠올랐다. 여행에만 집중하고 싶었는데 자꾸 마음이 곤란해졌다. 걔랑 걸으면 속도가 딱이었는데. 아이스크림이나 커피를 나눠마시며 걸어도 하나도 숨차지 않았는데. 하지만 그건 우리의 키 차이가 고작 8cm뿐이었기 때문이라고 세차게 폄하하며 생각을 끊어냈다. 그러면서 다짐했다.
다음에는 꼭 키 큰 남자를 사귀어야지.
키도 크고 걸음도 느린 남자를 만나야겠어.
다음이라는 단서가 붙자 갑자기 솔로가 됐음이 와락 실감 났다. 앞으로 다가올 기회들에 약간 설레기도 했다. 몇 년 만에 느끼는 기분이었다. 욱신거리던 마음이 조금 진정되는 것 같았다.
소피아 사람들은 친절했다. 마주치면 웃었고 어쩌다 부딪히면 즉시 사과했다. 수도지만 중심지 특유의 번쩍임이 없었다. 적당히 스며들기 좋은 분위기와 날씨와 사람들 속을 박과 나는 빠르거나 천천히 걸었다. 아무래도 한국으로 바로 가지 않은 건 잘 한 것 같았다.
며칠 후 소피아에서 플로브디브로 이동했다
박과 나는 며칠간 플로브디브를 여행한 뒤 헤어질 것이었다. 박은 불가리아 여행을 이어갈 것이고 나는 한국으로 돌아가 일을 해야 했다. 조금 더 유럽을 즐기고 싶지만 강연을 두 개 연속 거절할 만큼 배짱 있는 프리랜서는 못 되었다. 예정에 없던 불가리아 여행으로 생긴 지출을 메꿔야 했고, 정기 연재 중인 신문사에 칼럼을 보내야 했다. 박과 나는 며칠 남지 않은 시간을 재미있게 보내기로 했다. 그러면서도 둘 다 재미있기 위한 행동에 적극적이지는 않았다.
플로브디브에서의 일상은 소피아와 비슷하게 흘렀다. 우리는 뭔가를 먹거나 마시며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플로브디브는 작고 조용하면서 옹기종기한 동네였다. 파스텔 톤 건물 사이사이에 예쁜 카페들이 많았다. 나는 전 남친과 헤어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들을 박에게 마구 나열하며 내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자주 주장했다. 말할수록 헤어지길 정말 잘 한 것 같았다. 딱히 나쁜 남자는 아니었지만 어쨌거나. 어쨌거나 말이다. 대화를 알아듣는 사람은 주변에 아무도 없었다. 낯선 나라에서 마음껏 목소리를 높일 때마다 나는 우리가 단일어를 사용하는 민족임에 크게 감사했다. 박은 그리스에서 만난 어떤 여자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했다. 그는 낯선 여자에게 여러 선의를 베풀었음에도 어쩐지 막판에 크게 한 방 먹고 말았다. 그가 그리스에서 뒤통수 맞은 이야기를 하는 동안, 내가 이별의 당위성에 대해 여러 번 확인받는 동안 우리는 타코도 먹고 파스타도 먹고 라면도 먹었다. 괜찮은 카페도 자주 갔다. 플로브디브는 작은 동네였지만 어쩐지 그 안에 우리가 찾는 것은 모조리 있었다. 그러면서 저렴했다. 맛있고 싸고 친절한 동네는 너무 좋았다.
여행이 거의 끝나갈 무렵의 오후였다. 평소처럼 걷다 아점 먹기 적당해 보이는 음식점으로 들어갔다. 동남아 음식을 파는 곳이었는데 푸트코트처럼 먹고 싶은 걸 고를 수 있는 곳이었다. 어쩐지 가게 안의 손님은 우리뿐이었다. 박과 나는 각자 시킨 음식을 받아 자리에 앉았다. 볶음밥에 흐르는 윤기에 허기를 느끼며 핸드폰을 꺼냈다. 사진을 찍으려는데 마침 메시지가 왔다. 그리고 발신인을 확인하는 순간 몸이 얼었다. 숨이 잠깐 멈추는 것 같기도 했다. 절대 올 리 없다 생각한 사람으로부터 온 메시지였다. 손이 떨렸다. 심장이 빨리 뛰었다. 미처 다 읽을 용기도 없던 나는 스크롤을 내려 마지막 문장만 읽었다. 그리고 긴 메시지의 끝을 그 애의 목소리로 읽었다.
- 아직 너를 많이 좋아하는 것 같아
조금 안도했다. 그리고 많이 슬펐다. 더 이상 앉아 있을 수가 없을 것 같았다. 먹거나 말하는 방식으로는 도무지 해결되지 않을 감정이 이쪽저쪽으로 마구 넘나들었다. 박에게 양해를 구하고 먼저 식당을 나왔다. 그에게 미안했지만 지금은 정말 혼자 있고 싶었다. 누군가와 있다간 무슨 짓이든 마구 해버릴 것 같은 기분이었다. 박이 여러 돌발 상황에 관대한 사람인 것은 다행이었다.
거리를 걷는데 울음이 마구 나왔다. 눈물이 고일 새도 없이 무지막지하게 볼 위로 떨어졌다. 욕할 때는 언제고. 잘 헤어졌다고 할 때는 언제고. 지나가던 어린아이와 노래하던 사람과 아이스크림을 파는 점원이 차례로 놀란 눈을 했다. 쨍한 햇살이 나무와 거리와 얼굴 위로 환하게 내렸다. 눈물이 번져 온 거리가 반짝반짝했다. 마음이 혼란하지 않았다면 너무 좋았을 오후였다. 여러 마음이 우르륵 밀려왔다 훅 사라졌다. 사라졌다가도 다시 몰려와 겨우 뛰는 심장을 꾹꾹꾹꾹 밀었다. 좋았던 날들이 머릿속을 차르륵 지나갔다. 변하기 전 그 애와 나는 참 예뻤다. 좋았지만. 예뻤지만. 이미 우리는 차이를 이겨낼 만큼의 에너지가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런 어마한 애정은 휘발된 지 오래였다. 이제는 스스로를 건져내야 할 의무가 각자에게 있었다.
서 있기가 힘들어 아무 벤치에나 앉았다. 그러는 동안 큰 개와 개의 목줄을 잡은 할머니와 여러 아이들과 그들의 부모가 앞을 지나갔다. 사람들의 시선은 꼭 한 번씩 나를 스쳐 지나갔다. 아 진짜. 불가리아에서는 울기 싫었는데. 꼴사납게 이럴 것이 뻔함에도 식당에서 휴지 한 장 챙겨 나오지 않은 부주의함을 탓했다. 그때 떨군 고개 아래로 별안간 분홍색 장미꽃이 불쑥 들어왔다. 채 피우지도 못한 장미는 머리만 똑 끊긴 채였다. 고개를 드니 백발의 할아버지가 서 있었다. 외화에서 자주 본 것 같은 인자한 얼굴의 서양인 할아버지였다. 너무 천진한 얼굴을 보자마자 나는 말했다.
"No, I don't have any money."
젊은 현지인들이 듣고 하하 웃었다. 근데 할아버지는 영어를 못했다. 나는 또박또박 다시 말했다. 노 머니. 노 바이. 오케이? 그는 불가리아어로 뭐라 말하더니 허허 웃었다. 답답한 것 같았다. 미안하지만 내가 더 그랬다. 그는 갑자기 손에 장미를 억지로 쥐여주고 훌렁훌렁 떠났다. 행동이 너무 빨라 잡지도 못했다. 멍청하게 뒷모습만 바라보는데 할아버지가 흘낏 뒤돌아봤다. 그는 멀리서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곧장 건물 모서리 너머로 사라졌다. 나는 목 떨어진 장미꽃을 계속 들고 있었다. 너무 귀여운 일에 머리가 얼떨떨했다. 얼마나 당황했는지 눈물이 멈췄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마음을 추스르는 동안 불가리아 여행은 천천히 마무리됐다. 박과는 많은 얘기를 했고, 마지막 식사를 했고, 숙소 앞에서 인사한 것을 끝으로 다음을 기약했다. 다음이 언제가 될지는 모르는 일이었다. 그의 여행은 아주 오랫동안 이어질 예정이기 때문에. 그저 언젠가 다시 만났을 때, 꼭 행복해져있자고 서로 빌어주었던 것 같다.
소피아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나는 불가리아로 오길 정말 잘 했다고 생각했다. 그 애에게 냉큼 달려가버리지 못할 만큼 충분히 멀어서. 신중해질 기회를 가져서. 그렇기 때문에 결코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생겨서. 사실 이것 말고도 불가리아는 충분히 예뻤으니까.
나중에 이 불가리아 여행을 추억하면 나는 무엇부터 떠올리게 될까. 소박한 공항. 따뜻한 날씨. 오랜만에 만난 박. 울었던 거리. 커피. 사람. 꽃. 아무래도 꽃이 제일 좋을 것 같았다. 이 여행에서 예상 못 한 것들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이었으니까. 불가리아와 분홍색은 조금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생각하며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덩치 큰 버스가 소피아로 우릉우릉 달렸다. 문득 불가리아까지 와서 요거트를 못 먹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물론 큰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