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살아가는 시간의 중요성
독일 작가 미하엘 엔데의 소설 모모는 시간이 주는 의미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합니다. 시작은 동화같지만 이야기를 읽어갈수록 현대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그리고 나의 시간에 대해 고민해 보게 되죠.
고요하고 평화로운 작은 마을. 어느날 모모라는 특별한 능력을 가진 아이가 나타납니다. 그 아이가 어디에서 왔는지는 아무도 알 수가 없죠. 그저 마을 외곽의 오래된 원형 극장에 홀연히 나타났을 뿐입니다.
이름도 나이도 가족도 그리고 자신에 대한 어떤 것도 명확히 밝히지 않는, 거지처럼 허름한 옷을 입었지만 따뜻하고 순수한 눈빛을 지닌 특별한 아이라는 것을 마을 사람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알아차리게 됩니다.
특정한 배경 없이 등장하는 모모가 나타나는 장소는 오래되고 쓸모를 잃어버린 공간, 원형극장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소중한 것들을 잊고 지나치는 모습을 떠올리게 합니다.
원형극장을 떠올려 볼까요?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서 시작된 이곳은 관객들이 무대 중심을 둘러싸고 있습니다. 모든 방향에서 공연을 볼 수 있는 관객들은 배우와 상호작용을 합니다.
모모가 살고있는 원형극장은 바로 그런 의미에서 시간과 소통, 인간 관계를 상징하는 장소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한때는 사람들 간의 소통의 장소였으며 공동체의 중심이었던 이곳은 그 의미를 잃어가고 있었으나 모모의 등장으로 소통의 중심지로서의 역할을 되찾게 됩니다.
마을에 모모가 갑자기 나타난 이유는 사람들 스스로에게 잃어버린 시간의 주인이 바로 자신들임을 일깨우려는 상징적인 장치 입니다.
회색 신사들은 시간을 훔치는 존재입니다. 그들은 시간을 관리해야 한다며 마을 사람들을 설득하지만 엄밀하게 말하자면 관리가 아니라 시간 절약입니다.
시간을 절약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일반적으로는 효율성을 높여서 더 많은 일을 하거나 같은 양의 일을 더 짧은 시간 안에 끝내는 것을 의미합니다. 요즘은 그렇게 사는 것이 바로 성공적인 삶의 기준으로 여려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죠?
하루에 이메일 확인 시간을 30분 단축하면 30분만큼 나는 다른 일을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시간을 단축시키는 만큼 나는 메일의 답장에 세부 사항이나 감정이 담긴 문구쯤은 과감하게 생략하게 됩니다.
요리를 하는 시간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바쁘게 살다 보니까 반조리 식품이나 패스트푸드를 이용하게 되는데 그러다 보니 음식을 즐기는 낭만을 잃어버리고 오히려 심리적인 여유가 줄어드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모모에서 회색 신사들은 시간을 관리함으로써 더 높은 효율성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하지만 사람들은 이를 통해서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을 잃어가게 됩니다.
내 삶의 의미. 내 삶의 목적 그리고 소중한 인간 관계와 따뜻한 말 한마디를 나누는 시간은 내 삶에서 가장 필요한 것들이었죠.
회색 신사들이 제시하는 시간 절약은 결국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더 많은 일과 더 빠른 속도를 추구하며 스트레스와 정신적 피로가 쌓이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으며 심리적 여유와 만족감까지 잃어버리게 되면서 오히려 삶은 팍팍해지고 살아갈 이유를 잊게 됩니다.
호리 박사는 히색 신사들이 사람들의 시간을 훔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이를 해결하려는 인물로 등장합니다. 중요한 것은 시간을 절약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얼마나 잘 사용하는 것인지를 깨닫게 하죠.
회색 신사들이 기술적이고 기계적인 방식으로 시간을 이해하고 있다면 호리 박사는 인간적인 측면에서 시간을 바라봅니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눈으로 보는 결과물에만 투자되어서는 안된다는 의미를 생각하게 합니다.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시간 관리가 인간적인 삶의 의미를 대체할 수 없음을 깨닫게 하는, 소설 모모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요?
개인과 사회의 관계, 존재의 목적, 행복의 중요성, 인간적인 가치 등은 모두 인간적인 삶을 대표하는 말들입니다. 어떤 방식으로 삶을 살아가야 하는가는 자기 실현과도 깊은 관계가 있어요.
자기 실현을 한다는 것은 나의 능력과 재능을 개발해서 자신의 목적을 달성한다는 것이고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서 정서적인 안정감을 유지해야 인간적인 삶을 살아간다고 볼 수 있지만 이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닙니다.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으니까요. 돈을 벌기 위해서는 능력을 최대한으로 개발해야 하고 사람들과의 소통을 위해서는 또 돈이 필요하고 그러므로 돈을 벌기 위해 내가 가진 시간을 모두 투자할 수 밖에 없습니다.
효율성, 생산성 그리고 속도를 강조하는 사회 시스템 속에서 시간을 관리한다는 것은 사회적 압박을 넘어서야 합니다. 빠르게 일하고 더 많은 일을 하고 시간을 낭비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삶의 방식으로 자리잡고 있는 현대 사회에서 나의 내면을 돌아보고 감정적 충족을 얻는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이러한 자본주의 사회의 속도에 맞서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이나 사회의 요구에 무작정 따라가기 보다는 나에게 중요한 일을 천천히 해내겠다는 마음이 중요합니다.
미래를 위한 단기적인 목표가 아니라 장기적인 목표를 세우고 그에 맞는 시간을 조금씩 나누어 할애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효율성을 추구하는 것도 시간 관리의 일부분이지만 인간적인 가치를 잃어버리지 않겠다는 의도적인 선택에는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 친구와의 만남, 나만의 취미를 즐기는 시간을 꼭 할애해야 합니다.
오랫만에 모모를 다시 읽으면서 나의 삶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디지털 노마드로 살아가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정신없이 돌진하는 동안에 나 역시 삶의 가치를 잃어버리고 있는 건 아닌가 라는 생각에 빠지면서 허탈함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시간적인 여유를 갖고 즐기면서 산다는 것은 그만큼 뒤떨어지는 삶이 아닐까라는 생각은 매시간마다 찾아오니까요.
그래서 최소 두 시간마다 시간 블로킹을 하기로 했습니다. 두 시간마다 알람을 맞춰두고 음악을 듣거나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거나 명상을 하거나 누군가와 전화를 하는 등 나만의 시간을 가져보는 것. 새로운 목표인데요. 또 이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오히려 시간을 더 쪼개 쓰지는 않을까 걱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