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의 자리

by 리뷰몽땅

하루하루 전쟁같은 날들이 지나가고 있었지만

매달 통장에 따박따박 들어오는 돈을 생각하면

나는 엄마를 포기할 수가 없었습니다.


내가 엄마를 보살핀다는 이유로 나는 형제들에게

돈을 받고 있었고 엄마의 몫으로 나오는 노인연금도

어느새 내 차지가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차곡차곡 모아 두었던 엄마의 돈을 나는 조금씩

빼쓰기 시작했어요. 처음부터 그럴려고 했던 건 아니었습니다.

어느날 밤, 엄마는 아주 맑은 정신으로 내게 통장을 내밀었어요.

동생에게조차 보여주지 않던 통장과 도장 그리고 비밀번호까지 알려주며

필요한 거 있으면 사오라고 주셨거든요. 나는 엄마가 좋아할만한 비싼 과일을

사오기도 하고 입에서 살살 녹는 케잌을 사오기도 하며 마치 용돈을 받듯

그렇게 통장과 도장 그리고 비밀번호를 받아 주고 받기를 했어요


절대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었습니다. 어쩌다보니 나는 엄마에게 돌려주는 것을

깜박했을 뿐이고 엄마 역시 기억 속에서 지워버렸을 뿐입니다.



엄마는 돈을 모으는 게 재밌다고 했다

악착같이 모든 돈을 동네 사람들에게 이자를 받고 빌려주고

그 이자를 불려서 또 돈을 만들고 그렇게 모은 돈으로 엄마는 집을 사고

큰언니를 시집 보내고 둘째 언니를 시집 보내고 나도 시집을 보냈다


공무원이었던 아버지는 퇴직 후 동업을 하다가 몽땅 돈을 날려 먹었다

그런데도 우리집 밥상에는 매일 고기가 올라왔고

철마다 맛있는 과일을 먹었고 명절이면 새 옷을 사 입었다


엄마의 지갑은 지니의 램프 같았다




엄마가 이랬어. 나는 한 살 위 언니에게 전화를 걸어 하소연을 했습니다.

니가 고생이다, 니가 아니면 아무도 못하지, 니가 효녀다라는 말을

듣고 나면 한결 기분이 나아졌습니다.


그런 말을 듣고 나면 엄마의 통장에서 야금야금 빼먹는 돈이

당연하게 여겨졌던 건지도 모르겠지만 아니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죽어서도 가기 싫다는 요양원에 보내지 않는 대신 내가 엄마를 맡아서

모시고 있으니 그 정도는 내 차지가 되어도 되는 것 아닌가요.


꼭지야, 니 내 통장 가져갔나? 니 일로 와봐라


나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 같았습니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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