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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뷰몽땅 Nov 11. 2024

오늘도 행복했습니다

오늘은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

1. 시집을 왔습니다.


학교로 향하는 아이들을 위한 나의 인사는 늘 같았습니다. 오늘도 우리 아이들이 행복하기를 바라.


우선 내 소개부터 할게요. 나는 다섯 아이들의 엄마입니다. 그리고 이기적인 남편의 아내이고 고된 시집살이를 아무렇지 않게 여기는 시어머니의 며느리이며 형수 알기를 옆집 아줌마보다 못하게 여기는 시동생들의 형수이기도 합니다.


나의 역할이 참 많지요. 그래서 나의 하루는 할 일이 많아도 너무 많습니다. 스무 살이 되기 전에 나는 이 집으로 들어왔습니다. 남편이라는 사람은 결혼식 하기 한 달 전에 처음 만났어요. 인물이 훤한 남편을 보며 나는 가슴이 설레었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신랑 인물 좋다고 한 마디씩 했어요.


부잣집 장남이라는 말은 참 묘한 감정을 주었습니다. 부잣집이라는 것은 좋은데 장남이라는 것은 마음에 걸렸습니다. 하지만 없는 집 셋째 딸이었던 그 옛날 나에게 선택의 여지는 없었어요. 그래서 시집을 왔습니다. 이 집으로 말이죠.


연지를 찍고 곤지를 찍는 동네잔치였습니다. 나는 시집을 왔고 남편은 나에게 장가를 왔어요. 지금은 흔한 신혼여행이지만 그런 건 처음부터 없었습니다. 나는 옛날 사람이지만 마음속에는 언제나 로맨스 하나는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남편과의 행복한 신혼생활을 꿈꿨어요. 


나중에서야 알았습니다. 꿈만 꾸면 그냥 도루묵이라는 것을. 



2. 남편은 시어머니 편



모진 시집살이였습니다. 그렇다고 어디 가서 툭 터놓고 말할 수도 없었어요. 그때는 다 그랬다고 말하면 못내 섭섭합니다. 친한 제 동네 친구는 그렇지 않았거든요. 시부모님 사랑도 남편 사랑도 한 몸에 받으며 나날이 얼굴에 꽃이 피었다는 소문을 들었으니까요.


첫날밤을 치르고 남편은 짐을 싸서 서울로 갔습니다. 명문 고등학교를 졸업한 남편은 서울에서 첫 직장 생활을 하게 되었어요. 그러면 아내인 나도 당연히 따라가야 할 것을. 시어머니는 갓 시집온 며느리가 집을 떠나는 것은 있을 수 없다면서 나를 자리에 앉혔습니다.


아무리 첫날밤만 지낸 남편이지만 그래도 평생을 약속했는데 남편은 야속하게 나를 남겨두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대문을 나섰습니다. 그리고 나는 혹독한 시집살이를 시작했습니다.


해가 뜨기도 전에 일어났어요. 부엌 일도 내 일이었고 밭일도 나의 일이었습니다. 때가 되면 밭에서 뛰어와서 점심 상을 차렸고 점심 상을 치우고 온 가족 빨래를 하고 또 저녁상을 차렸습니다. 집안일은 쉴 새 없이 이어졌지만 시집오기 전에도 우리 집 집안일은 몽땅 내 차지여서 그냥 일복이 많은가 보다 생각하고 살았습니다.


그래도 일주일에 한 번 남편의 얼굴을 보는 게 좋았습니다. 만나면 반가웠지만 그 많은 가족들 틈에서 반갑다는 표시는 낼 수 없었습니다. 봐도 못 본 척했어요. 어떨 때는 부엌문 틈 사이로 남편의 모습을 보며 혼자 배시시 웃기도 했습니다. 


효자인 남편은 일주일에 한 번 집에 와서도 마누라를 찾지 않고 부모님과 동생들 앞에서 서울 생활을 이야기하고는 동네 친구들을 만나러 나갔습니다. 


그래도 참 재주가 좋았습니다. 한 달이 지나고 나는 입덧을 했어요. 아들 낳아야 한다고 온 집안이 난리였습니다. 하지만 딸을 낳았어요. 첫 딸은 살림 밑천이라는 말은 나도 들었습니다. 나는 남편을 따라 서울로 가는 날을 기다렸지만 시어머니 허락이 떨어지지 않는 한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딱 한 번 옆에 누운 남편에게 슬며시 말했어요. "나도 서울 가면 안 됩니까?" 딱 3초 만에 남편이 말했습니다. "어매가 가라 하더나?"





나의 바람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습니다. 밥을 풀 때도 국을 풀 때도 나는 아이들이 오늘도 행복하기를 바란다는 말을 주문처럼 외웠습니다. 한 번도 내가 행복하기를 바라는 말은 하지 못했어요. 욕심이 지나치면 오히려 화를 낳는 법이니까요. 


아이들이 웃으며 집으로 들어서면 나는 참 행복했습니다. 어제도 참 행복했고 오늘도 참 행복했습니다. 그런데 늘 가슴 한편은 허전했어요. 커다랗게 구멍이라도 난 것처럼 말이죠. 아이들이 커가고 하나 둘 집을 떠나면서 나는 행복할 일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몇 십 년을 보내고 어느 날 나는 오늘도 행복했습니다라고 말했던 옛날이 그리워졌습니다. 텅 빈 집 한가운데 앉아 나는 혼잣말로 읊조렸습니다. 나는 오늘도 행복했습니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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