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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뷰몽땅 Nov 18. 2024

그릇을 윤이 나게 닦았습니다

아이를 둘 낳고서야 나는 남편이 있는 도시로 갈 수 있었습니다. 지금처럼 집집마다 차가 있기는커녕 시외버스를 타고 또 시내버스를 타고 나는 주소지가 적힌 종이 한 장만 달랑 들고 남편의 집으로 찾아갔습니다.


지금은 상상조차 할 수 없지만 그때는 참 힘이 셌던 것 같습니다. 머리에는 커다란 짐 보따리를 이고 등에는 이제 갓 돌이 지난 아이를 둘러업고 한 손에는 살림밑천이라는 5살배기 큰 딸의 손을 잡고 그리고 또 한 손에도 가방을 들었습니다. 그림이. 그려지나요?


의성에서 대구까지 가는 길이 참 멀었지만 고된 시집살이에서 이제 벗어났다는 생각에 홀가분했습니다. 무엇 때문에 그렇게도 혹독하게 며느리를 홀대했는지 중풍을 앓게 되어 거동조차 못하던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면서 나중에서야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나는 그런 적 없다. 내가 언제 니한테 그런 짓을 했노. 생사람 잡지 마라"


억울해서 복장이 터지더라고요. 이제 힘도 없으 시어머니를 앞에 두고 나는 한 번씩 가슴을 치며 한탄을 쏟아내기도 했습니다. 내가 참 겁이 많아요. 그래서 시어머니가 기세등등할 때는 한마디도 못하다가 방구석 노인이 되어 힘이 없어지니 그때서야 악다구니를 써며 덤벼 들었답니다. 비겁한가요? 


그래도 사과 한 마디가 듣고 싶었답니다. 내가 미안했다 그 한마디를. 


1. 남편의 집


겨우 겨우 물어서 찾아간 남편의 집이었습니다. 공무원이었던 남편은 일 때문에 마중 나올 수 없다고 했습니다. 서운했지만 그래도 시댁을 벗어난다는 생각에 발걸음이 그렇게 무겁지는 않았습니다.


아직도 기억나는 초록색 철대문. 다섯 살짜리 큰 아이의 손을 잠시 놓고 나는 동그란 문고리를 탕탕 두들겼습니다. 한참을 두들기고 서서 기웃대자니 집 안에서 나이 지극한 아주머니 한 분이 나오셔서 "누구요" 하고 물었습니다. 


"여. 단칸방 아저씨 집 사람입니더. 문 좀 열어주이소"


나지막한 담장 너머로 아주머니의 동그랗게 뜬 눈이 꽤 인상적이었습니다. 행여 단칸방에 이 많은 식구들이  사는 것은 안된다고 할까 봐 덜컥 겁이 났습니다. 


삐걱 문이 열리고 첫째 아이는 내 등뒤로 숨었습니다. 주인아주머니가 확인하듯 다시 물었죠.


"집사람? 오늘 온다는 말 못 들었는데. 맞나 집사람? 일단 들어와 보소"


아주머니가 가르쳐 주는 방의 문을 열고 들어가니 방안이 난장판이었습니다. 그래도 아내가 온다는 걸 알고 있었으면 정리라도 좀 해놓을 것을. 등에 업힌 아이를 내려놓고 잠시 허리를 펴자니 주인아주머니가 방문을 두들겼습니다.


"보소. 새댁. 집사람 맞지요? "

"예. 맞습니더."

"아이고야. 우짜노. 아무것도 모르나?"

"뭐. 를. 요"

"내가 이걸 말해야 되나. 말아야 되나."


지금도 그날 일을 생각하면 얼굴이 발개지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고 쥐궁멍에라도 숨고 싶습니다. 동네 창피한 짓은 남편이 했는데 부끄러움은 왜 내 몫인지 모르겠습니다. 남편에게는 여자가 있었습니다. 한 명이 아니었고요. 아주머니 말로는 얼굴 좀 익숙해지려나 보다 할 때마다 바뀌었다고 합니다.


나는 이불을 탁탁 털어내며 숨죽여 울었습니다. 누가 덮고 잤을까 알지도 못하는 이불을 빨랫방망이로 탕탕 두들기는 것으로 마음을 달랬습니다. 


"마누라가 집에 없으니 젊은 남자가 외로왔나 싶다. 이제 마누라도 왔고 아기들도 왔으니 그라겠나. 그냥 알아나 두라꼬. 동네 사람들이 뭐라 카거든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소. 우야겠노. 다 여자로 태어난 죈기라."


시골에서 가져온 몇 가지 반찬들을 꺼내고 보글보글 된장찌개를 끓였습니다. 지금처럼 전화를 마음대로 할 수 없는 때였습니다. 그래도 아내와 아이들이 남편의 집으로 온 첫날이니 남편이 일찍 들어올 거라 생각했습니다.




참 서러웠던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면 나는 아직도 분에 차서 그만 가슴을 쾅쾅 내려칩니다. 그때는 한마디도 못해놓고서 이제 와서 억울하다 분통을 터뜨립니다. 그러면 아이들은 듣기 싫어 귀를 막습니다. 그런 아이들을 보며 나는 이런 엄마 마음을 이해해주지 못한다고 서운해합니다. 그리고는 서로 돌아앉아 버립니다.


알지요. 다 압니다. 아이들에게는 아버지니까요.  듣기 좋은 콧노래도 한두 번이라는 것도 압니다. 그런데도 나는 그게 잘 되지 않습니다. 그렇게라도 아이들이 아버지를 조금 미워해주면 때로는 마음이 풀리기도 하니까요. 못난 애미라서 미안하고 못난 짓을 거듭해서 미안하지요. 


오늘도 막내딸과 전화를 하다가 나도 모르게 남편의 욕이 터져 나왔습니다. '그때 느그 애비가 그랬다. 느그 애비가 그런 인간이다.'한참을 들어주며 맞장구를 쳐주던 막내가 '엄마 이제 그만 좀 해라. 내 힘들다.' 하는 말에 괜히 서운하기도 하고 또 미안하기도 해서 전화를 끊고 나는 오래된 그릇들을 모두 꺼내어 닦았습니다.


그날 남편이 집에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배고프다 보채는 두 딸을 달랬습니다. 여덟 시가 넘고 아홉 시가 넘어도 남편은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그날도 나는 부엌 한 켠에 놓여있는 그릇들을 꺼내어 바닥에 주저앉아 윤기가 나도록 닦았습니다. 어스름한 새벽빛이 문 틈으로 들어오는 그 시간까지 남편은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반들반들 윤이 나는 그릇들을 차곡차곡 다시 쟁여 넣고 있자니 막내가 다시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아마도 엄마에게 투덜거린 것이 못내 마음에 걸렸나 봅니다. 뭐 좋다고 엄마의 인생을 그대로 닮아버린 막내를 보면 나는 가슴이 미어지면서도 또 울화통이 터집니다.


"엄마, 아까는 내가 잘못했다. 엄마 너무 서운하게 생각하지 마래이. 이불 꼭 덮고 잘 자고 내일 통화하자."


아이쿠야. 이러니 내가 오늘도 행복할 수밖에요. 눈물이 참을 없을 만큼 쏟아지는 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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