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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뷰몽땅 Dec 02. 2024

만화방 주인

만화가 돈이 되겠어?

내 나이가 궁금하신가요? 여든이 넘었습니다. 남편은 지난해에 저 세상으로 갔어요. 어땠냐구요? 시원섭섭했습니다. 떠나는 길이 참 외로웠던 사람이었기 때문에 안타까운 마음도 들었지만 이후로 이전보다 더 힘든 시간을 겪어야 했기에 여전히 원망하는 마음이 더욱 클 뿐입니다.


평생을 지지고 볶고 살았으면 미운 정과 고운 정이 함께 든다는 데 고운 정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런 건 이미 옛날에 다 포기했습니다. 퇴직을 하고 남편은 여러 사업에 손을 댔지만 모두 망했습니다. 주식에 투자를 해서 계속 손해만 봤지요. 


단 한 번도 그런 일에 나와 상의한 적은 없습니다. 내 돈 내 마음대로 하는데 무슨 상관이냐고 몰아 붙이면 그래도 처음에는 무서워서 입도 달싹 못하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간이 배 밖으로 나와 버린건지, 나이가 무기인건지 알 수는 없지만 나도 대차게 받아치게 되더군요.


"그게 어떻게 다 네 돈이냐. 내가 만화방에서 죽어라고 일하고 번 돈이지"


1. 만화가 돈이 되겠어?


남편은 공무원이었습니다. 참. 공무원이라는 사람이 바람을 피우고 다니는데 꼬리라도 밟히지 말지. 얼마나 사람들의 눈에 띄었으면 한 번은 그 직원이 알려주더군요. 아시냐고. 집 주인 할머니에 이어 두번째였습니다. 알고 있느냐. 네 남편이 바람난 걸. 마누라라는 사람이 그것도 모르고 있지는 않겠지? 라는 불쌍하다는 듯한 눈초리와 남편이 바람날 때까지 너는 무엇을 했느냐는 눈초리. 둘 중에 뭐가 덜 가슴 아팠을까요?


남편은 월급을 타면 딱 생활비만 내게 줬습니다. 1967년이었습니다. 집안의 장남인 남편과 결혼해서 딸만 다섯이라 시댁 식구들에게서 또 모진 잔소리도 들어야 했습니다. 인생이 뭐 이렇게 구질구질할까요.


시골 인심 좋다는 말은 사실입니다. 얼마나 인심이 좋은지 도심에 나와서 살고 있다는 이유로 시골 친척들은 때만 되면 우리 집으로 올라왔습니다. 밥도 해먹여야 하지만 무엇보다 돌아가는 길에 차비라도 한 푼 쥐어주지 않으면 온 동네 입방아에 오르던 시절이었습니다.


생각을 해 보세요. 큰 딸아이는 벌써 고등학생이 되었고 둘째 딸 아이도 이제 곧 고등학생이 되려던 때였습니다. 학교갈 때마다 무슨 준비물과 무슨 책값이 그렇게 많은지 자고 일어나면 아이들은 돈을 달라고 했습니다. 다행히 남편이 전날 외박을 하지 않고 집에 있는 날이면 남편 주머니에서 돈이 나갔지만 그렇지 않은 날이 더 많았고 아이들이 돈을 달라고 할 때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기가 일쑤였습니다.


그래도 다행히 내가 돈을 좀 모으는 요령이 있었던 게지요. 먼 동네에 사는 친구네에 놀러 갔다가 만화방 주인이 제법 현금을 모으는 것을 알게 되었죠. 저거면 나도 할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아이들을 위해서이기도 했지만 나도 내 돈을 모으고 싶었던 게지요.


만화방을 차리려니 돈이 필요했습니다. 어렵게 남편에게 말을 꺼냈어요. 월세 3,000원짜리 골목 구석진 상점을 미리 봐두고 남편을 끌고 갔습니다.  만화가 돈이 되겠어? 라며 툴툴 거리면서도 돈을 벌겠다는 마누라가 그 날은 예뻐 보였나 봅니다. 


그 때는 지금처럼 보증금이라는게 크지 않았기도 했지만 공무원인 남편의 덕으로 보증금 없이 만화방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2. 만화방 주인


만화방이 한창 잘되던 때였습니다. 로버트 태권 브이가 한창 인기있었던 때였지요. 오전 내내 친척 어른들 뒤치다꺼리를 끝내고 아이들 하교 시간이 끝나기 전에 만화방으로 달려갔습니다. 학교가 끝나자마자 10원짜리 동전 하나 손에 쥐고 달려오는 아이들을 기다렸지요.


장사가 제법 잘 됐습니다. 돈 푼 꽤나 벌었지요. 가끔 단속반이 들어와서 저질 만화가 있는지 확인도 하고 때로는 뒷돈을 요구하는 일들이 다른 만화방에서는 있었지만 내 남편의 도움으로 내 만화방에는 그런 일도 없었으며 그런 일이 없도록 문제없는 만화들만 진열해 뒀습니다. 남편이 있어서 그 때만큼 좋았을라구요.


아이들과 손님들 보라고 진열해 놓은 만화책 중에서 삐딱한 모자를 쓰고 항상 파이프를 물고 다니던 고마우 영감이 참 재미있었습니다. 세금을 못내서 허리가 휘는 서민들과 부정부패를 저지르는 관료들 그리고 힘없는 서민들의 모습이 꼭 내 모습 같았습니다. 내가 세금을 못냈냐구요? 아닙니다. 내 남편이 부정부패를 저질렀냐고요? 글쎄요. 만화방 하는 마누라 뒤를 좀 봐준 것 말고는 그런 일을 할 위인도 못됐어요.


그런데도 힘없이 고통받는 사람들이 왜 다 내 모습 같았을까요? 


그 때는 나도 어깨에 힘 좀 주고 살았습니다. 시골에서 친척들이 올라오면 아깝기는 했지만 차비도 좀 쥐어줬어요. 늘 나만 보면 쌍심지를 켜던 시댁 어른들은 돈 버는 나를 조금씩 대우해주더군요.


텔레비전이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갑자기 손님들이 줄어들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장사수단이 좋은 편이었습니다.  겁도 없이 텔레비전 한 대를 사서 만화방에 들여놓았어요. 요즘 말로 대박이 터졌습니다. 만화를 빌려 가는 사람들에 한해서 텔레비전을 볼 수 있게 해주었거든요. 


그 때 나는 돈 좀 벌었습니다. 남편도 나를 달리 보던걸요. 그래서 행복했습니다. 참 좋았던 날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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