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추지 못하는 나에게 꿈이 건네는 비상벨
학교 다닐 때 나는 거의 매일 언덕에서 떨어지는 꿈을 꿨다. 어른들은 키 크는 꿈이라고 했다. 그런 줄 알았는데 내 키는 크지 않았다.
대학생이 되고나서부터는 내가 타고 있는 엘리베이터에서 떨어지는 꿈을 꿨다. 나 혼자 떨어지기도 하고 누군가 떨어지는 걸 구경하기도 하면서 가위에 눌리는 일이 많았다. 그리고 여전히 키는 크지 않았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바쁘게 살아가다보니 그런 꿈들과는 자연히 멀어지게 되었다. 추락하는 꿈은 성장통 같은 것인가보다 했다.
하지만 전업을 하기로 마음 먹은 얼마전부터 나는 또 다시 꿈 속에서 엘리베이털르 타기 시작했고 또 다시 떨어지기 시작했다.
자고 일어나도 개운하지 않고 항상 뭔가 찜찜했다. 왜 이렇게 매일 떨어지는 꿈에 시달리는지를 알아야겠다 싶어서 AI에게 물어봤다. 요즘은 이 녀석이 없으면 도무지 일이 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엘리베이터가 추락하는 꿈은 우리가 통제력을 잃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안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낸다고 한다. 내가 지금 기대고 있는 회사와 관계 등에 대한 불신과 피로가 쌓였다는 것을 의미한다는데.
여러 번 말하고 있지만 나는 현재 전업을 계획 중이다. 사실 계획이라기 보다는 갑자기 몰아닥친 바람과도 같은 것이다. 늘 이제 아이를 가르치는 일은 그만하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하고는 있었지만 이게 이렇게 KTX 같은 속도로 다가올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이제 겨우 석 달 남았다. 나는 자의반 타의반으로 일을 정리해야 하고 기존의 수입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일이다.
그래서 나는 더 바쁘다. 해야 할 일은 많은데 그 일이 나에게 주는 수익은 현재의 반도 되지 못한다. 통장은 채워졌다 싶으면 빠져나가기 일쑤다. 그래서 아예 통장을 보기를 돌같이 하는 중이다.
그냥 좀 천천히 여유를 가져보라는 말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갑자기 화가 치밀어 오른다. 지금 내 상황에 처해 보라지. 그런 말이 쉽게 나오나.
그리고 나는 잠자고 밥 먹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일을 한다, 아니 일을 만들고 있다. 오늘 같은 경우는 그래도 성과가 좋은 날이라 두 개의 원고를 챙겼다. (내 글을 읽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나는 블로거다)
잠들기 전까지 나는 주문 같을 것을 외우기 시작했다. 이런게 조금이라도 효과가 있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더 높은 층, 더 빠른 이동, 더 많은 성과를 이룰 수 있기를 간절하게 소원하면서 겨우 잠이 들지만.
이상하게도 꿈숙의 엘리베이터는 내가 원하는 대로 올라가지 않는다. 예고 없이 아래로 떨어뜨려버리는데, 정말 나한테 왜 이래!!
버튼을 눌러도, 문을 두드려도, 비명을 질러도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
어쩌면 나의 일정은 이미 한계에 도달했을지도 모른다. 내가 만들어낸 버거운 책임들과 줄어들지 않는 부담은 낮동안은 어떻게든 무시하면서 못 본 척이 가능할지 모르지만 밤이 되면 내 가슴을 두드린다
이 속도, 이런 일정, 정말 괜찮아?
내 안 어딘가에서는 이미 비상벨이 울리고 있는 것일까?
추락하는 꿈에서 내가 가장 두려운 것은 그 높이가 아니라 그 상황에서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아무리 버튼을 눌러도 내가 원하는 층에 도착할 수 없다.
한 달째 비슷한 꿈을 꾸고 있자니 사람이 거의 죽을 지경이다. 이런 꿈은 불길해서 아예 꾸지 않는 방법을 찾으려니 밤잠을 줄이고 낮잠을 자는 수 밖에 없는데 그러다보니 사람 꼴이 말이 아니다.
날도 춥고 바람도 불고 오늘은 딱히 나갈 데도 없어서 나는 음악을 틀어놓고 한참을 멍하니 앉아있어 보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이렇게 시간을 보내는 일은 참 오랜만이었다. 사실 꼼짝할 수 없을만큼 몸살이 났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뜨거운 물을 마시고 이불 속으로 들어가서 영화를 보다가 졸았다. 그리고는 다시 벌떡 일어나기를 몇 번 반복하다가 아예 포기를 해 버렸다. 내가 이러고 있을 대가 아닌데, 내가 이렇고 있으면 안되는데.
내가 속도를 줄이지 못하니 나의 몸이 의도적인 정지 버튼을 찾아낸 것 같다. 경고라도 보내는 걸까. 너 그러다 진짜 죽는다.
다시 꿈 속으로 돌아가보자. 나는 정말 한없이 추락하는 꿈을 꾸고나서도 다음날 아침을 맞이했었다. 그리고 다시 기어올랐다. 꿈에서는 이제 좀 그만 속도를 줄여보라는 경고를 보낸 것이라는데 나는 경고 따위 무시해 버렸다. 너 지금 떨어지고 있는 거 알아? 올라간다고 생각하고 있겠지만 사실은 너는 오래전부터 추락하고 있는 중이야. 이런 말이라도 하려는 걸까
정말 오랫동안 올라가는 것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믿었다. 어제보다 오늘 돈을 더 벌고 나의 성과도 올라가고 남들 눈에 비치는 나의 모습이 번지르르하면 그게 사는 것 같았다. 우쭐대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나의 내려가는 버튼은 이미 고장난지 한참이 되었고 나의 수호신은 나를 강제로 하차시키려고 하는지도 모른다. 좀 쉬자. 그리고 좀 즐겨보자.
추락하는 꿈이 정말 불길한 징조일까? 어쩌면 브레이크를 좀 밟아보라는 의미인지도 모른다. 추락이 꼭 파괴만을 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다. 나에게 열리는 새로운 문을 이렇게 두려운 마음으로 열고 들어갈 수는 없다.
새로운 술은 새 부대에 담으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받아들이자. 나에게 지금과는 다른 기회가 찾아왔을지도 모르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