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탓하다 망가지는 하루
엄마는 지금 요양원에 계십니다. 갑작스러운 일이었어요. 총명하기로 치자며 우리 엄마를 따를 사람이 없었기에 우리가 받은 충격은 훨씬 컸습니다.
코로나가 유행하던 시절에 아버지에게 찾아온 치매로 우리 가족은 거의 풍비박산이 날 정도로 흩어졌습니다. 물고 뜯고 싸우는 일이 정말 가관이 아니었습니다. 그 때의 일로 받은 상처는 깊었으며 그 때의 에피소드를 가지고 브런치 스토리에 지금 소설 연재를 시작하게 되었으니 이것을 다행이라 해야할지 불행이라 해야할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다시 한 번 그런 상처를 겪지 않기 위해서 좀 더 현명하게 그리고 현실적으로 일을 해결하려 들었습니다. 우리 엄마가 치매일리가 없어, 라는 말은 무조건 입 밖에 내지 않았어요. 누가 더 잘했네, 못했네는 누구의 머리 속에도 떠오르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엄마를 요양원에 보내야 한다는 결론은 누구의 눈에는 무미건조하게 보일수도 있었겠지만 더 이상 누구의 마음도 아프게 해서는 안된다는 서로를 위한 배려인 동시에 스스로를 향한 약속이기도 했습니다.
엄마의 적응은 쉽지 않았지만 허무하게 아버지를 보내버린 장남이자 막내인 동생의 아쉬움과 죄스러움은 누가 보더라도 모자라지 않을 만큼의 최선을 다하고 있어 보기에 그저 미안할 뿐입니다.
지난 주 우리는 단촐한 가족모임을 가졌어요. 모처럼만의 가을 나들이는 엄마의 마음을 두근반 세근반 하게 했습니다. 환하게 웃으며 손을 잡아주시는 모습에 가슴이 뭉클하기도 했어요. 같은 방에 계시는 할머니들에 대한 이야기와 더불어 이런 점은 좋고 이런 점은 나쁘고 쏟아내면서도 잘 적응해 나가는 모습에 우리들의 마음속에 있던 무게감은 자연스럽게 가벼워 졌습니다.
함께 카페에 들어가서 빵도 먹고 커피도 마시면서 우리들의 살아가는 이야기를 듣기도 하고요. 엄마의 얼굴에는 웃음이 가실 겨를이 없었답니다. 남편은 연신 우리들의 모습을 사진으로 찍었고 그런 사위의 모습을 보며 엄마는 참 이쁘게도 웃으시는데 그 때는 몰랐지요. 내 머리가 이렇게 크다는 것을
집으로 돌아와서 가족 카톡방에 사진을 전송하려고 하나하나 펼쳐보는 순간, 지금까지는 몰랐던 엄마의 모습에 우리는 또 이야기 꽃을 한아름 피웠습니다. 울리 엄마, 알고보니 참 이쁘네. 머리도 참 작네. 요즘 스타일이네. 그런데 우리 머리는 왜 이렇게 크지? 우리가 아버지를 닮았나보다. 완전 큰바위 얼굴이네. 이제 엄마 옆에서 사진은 못 찍겠네. 무조건 엄마 뒤로 가서 서야겠네. 두어시간 동안 카톡 울림이 꺼지질 않았습니다.
지나간 일을 되짚어 보는 것은 때로는 아무 의미가 없기도 하지만 때로는 큰 교훈을 주기도 합니다. 지난 아버지의 일로 우리는 치매가 얼마나 무서운 건지 알게 되었고요. 지금 하시는 말씀의 대부분은 실제로 일어난 일이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때는 말 한마디로 서로 진실공방을 펼치며 잘잘못을 가리기에 급급했고 그 일로 인해 서로 물고 뜯기를 반복했습니다. 그 일로 언니들과 나는 남남보다 더 못한 관계가 되어 버렸지요. 그리고도 한참동안은 내가 입은 상처가 더 크다는 착각에 빠져 살았고 상처의 무게를 저울질 할 수는 없다는 것을 최근에서야 깨닫게 되었습니다.
남탓하다가 망쳐버린 하루가 길면 2년이고요 짧아도 1년이 넘는 날들이었습니다. 우리는 갑자기 몰아닥친 현실에 그저 속수무책일 뿐이었던 것을.
이제 2주 후에 또 엄마의 외박을 맞아 단촐한 가족 모임을 가질 예정입니다. 그 때 나는 꼭 물어보려고 해요. 엄마, 왜 내머리가 엄마 머리보다 이렇게 크지? 옛날 사람인 엄마보다 내 머리가 더 큰 이유를 말입니다.
엄마는 네가 머리만 컸지 속은 아직 한참 멀었다 말을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