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
아주 오랜 시간 알고 지내는 지인이 있어요. 친구라고 하기에는 약간 거리감이 있고요 그렇다고 그냥 아는 사이라고 하기에는 속사정을 꽤나 잘 알고 있는 사이였어요. 한때는 말이죠.
아이가 다섯 살을 막 넘기려 할 때 바로 옆집에 살았던 그녀와 제가 살던 아파트는 복도식이었어요. 살아보신 분들이라면 아실지도 모르지만 복도식 아파트에서는 한여름에 대문을 살짝 열어두면 바람이 훨씬 잘 통해서
시원하게 지낼 수가 있거든요.
그 때만 해도 하루종일 에어컨을 틀고 살 생각은 할 수가 없는 때여서 우리는 대문을 살짝 열어두고 길다란 발을 쳐서 나름대로 사생활을 보호하며 살고 있던 때였습니다.
그 때 저는 산후 우울증을 겪고 있었던 것 같아요.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다가도 눈물이 주르륵 쏟아지고 밥을 먹으면 모래알을 씹는 기분이 이런 것이구나를 체감하던 때였습니다. 남편과는 사흘이 멀다하고 싸움을 했죠.
그나마 낙이라면 라디오에 사연을 보내서 상품을 받는 일이 전부였지만 그마저도 시들해지는 그런 때였습니다.
엄마가 눈에 보이지 않으면 집이 떠나가라 우는 아이를 유모차에 태워 동네 산책을 하는 것조차 힘들었던 나는 그녀를 만나면서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어요. 싫으면 싫다, 좋으면 좋다를 명확하게 하는 사람이라 감정표현이 어리숙한 저는 많은 덕을 보기도 했습니다.
자세한 이야기를 다 풀어놓자면 오늘 밤을 새도 모자랄 터이니 일단 각설하고요. 하여간 약 7.8년 동안 이웃 사촌으로 지내던 그녀와는 이사를 하면서 자연스레 멀어졌어요. 그런데 얼마전 카카오톡이 대대적인 개편을 하면서 이름을 보고 혹시 내가 아는 그 사람인가 찾아보는 사람들이 늘었다지요.
그런 알림이 올 때마다 가차없이 차단을 누르던 나는 그저께 낯익은 이름에 멈칫했답니다. 나, 야옹이 엄마야. 멍멍이 엄마 맞아?
그녀의 이름이 올라왔다면 바로 차단 했겠지만 야옹이 엄마라고 하니 그 옛날의 생각이 불쏙 올라왔고요. 나는 혹시 그 때 그 아파트에 살았던 야옹이 엄마가 아니냐고 물어봤고요. 그렇게 우리는 다시 재회를 했습니다.
그리고 딱 일주일이 지났네요. 오늘 오전에 카톡으로 선물이 왔어요. 달달한 케익콰 커피 두 잔의 쿠폰과 다음에 우리 또 만나자는 메세지도 함께.
카카오톡이 갑자기 필요도 없는 기능을 만들어서 사용하기가 오히려 불편해졌다고 투덜대던 참이었는데 오랜 시간 잊고 지내던 사람을 다시 만나게 해주니 이거 고맙다고 해야할 것 같습니다.
인연이라는 건 꼭 애써 붙잡지 않아도 불쑥 다시 내 곁으로 다가올 때가 있어요. 그래서 내가 무 자르듯이 잘라버릴 수가 없는 거지요. 불교에서는 어떤 일이든 이유없이 생겨나는 일은 없다고 합니다. 모든 일에는 원인과 결과가 있기 마련이라고요. 내 힘으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만남들은 오늘도 내 주변에서 알게 모르게 있었을 것입니다. 요즘 같은 세상에 사람과의 관계만 인연이라고 할 수는 없을 테고요
나를 조금이라도 바꾸어 놓는 일이라면 인연이라는 이름으로 불러도 좋지 않을까. 오늘 내가 스치듯 지나간 모든 일들이 후에 어떤 모습으로 다시 나타날지 모르니 별다른 재주가 없는 나는 오늘도 묵묵하게 해야할 일을 해치워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