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 있는 산문
이사를 자주 다니며 자랐다. 어린 시절의 집을 추억하면 좀 혼란스러운데 그럼에도 유독 마음의 방을 크게 차지하는 집이 있다. 네모난 땅을 가운데 두고 들어선 네 채의 집 중 하나가 우리집이었다. 대문 밖으로 나오면 공유하게 되어 있는 땅 위에서 아이들이 모여 놀았다. 주인집과 셋집을 다 합치면 실상 여덟 가구가 사는 그 길에서 아이들은 각 집의 대문을 다 열어놓고 들락거리며 숨바꼭질을 했다. 고무줄놀이와 땅따먹기를 거기서 배웠고, 그 자리가 흙바닥에서 시멘트로, 종래에는 아스팔트 바닥으로 변하는 것을 지켜보며 유년기의 한때를 보냈다. 몇십 년이 지나고, 코네티컷의 동쪽 끝 바닷가 동네를 걷다가 그 집 앞을 다시 만났다. 네모진 바닥의 삼면을 둘러싼 뉴잉글랜드 풍 집 네 채를 보자 기시감과 이질감이 뒤섞인 현기증이 일었다. 어린 시절의 어떤 오후가 수십 년 후까지 따라와 이국의 땅에 똑같은 그림자를 눕혀놓고 있었다.
I grew up moving around a lot. When I try to identify my childhood home, it’s a bit confusing. There’s one house that occupies a particularly large space in my heart. One of the four houses built around a square piece of land was our house. When we went outside the front door, the children would gather and play on the shared land. In fact, there were eight households living on that street, including the house owners and the renters. The children would open the front doors of each house and go in and out, playing hide-and-seek. There, I learned how to play Gomujool and Tangtamukki, and I spent a part of my childhood watching the ground change from dirt to cement and eventually to asphalt. Several decades later, I came across that house again while walking through a coastal town on the eastern end of Connecticut. When I saw the four New England-style houses surrounding a square lot, I felt a sense of déjà vu. A certain afternoon from my childhood followed me decades later, casting the same shadow on a foreign l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