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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예진 Jul 19. 2018

고장난 악기들의 호텔

바다 마을 오보이스트 이야기


론과 약속을 잡은 다음 전화를 끊고 나니 이번에도 은근 마음이 들뜬다. 그가 사는 동네를 방문할 때는 늘 그렇다. 슬슬 걷다보면 어느새 바닷물이 발끝에 와있는데 항구도 해수욕장도 아닌 아름다운 주택가. 눈이 즐거운 반면 한편으로는 갈 때마다 마음 한구석에는 씁쓸함이 남기도 한다. 론을 만나러 처음 간 날 구경삼아 동네 한 바퀴를 돌면서 직감적으로 알아차린 일종의 보이지 않는 ‘선’ 때문이었다. 


내가 만일 그 동네로 이사를 가고 싶어 부동산 중개업자를 대동해 돌아다닌다 치자. 그 광경을 본 주민들, 즉 정원의 장미에 물을 주던 노부인이나 테라스에 나와 한가로이 커피를 마시던 부부의 이맛살이 찌푸려지는 장면이 연상되는 분위기라고나 할까. 나를 위축시켰던 것의 정체는 바로 그런 폐쇄성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치사하게도, 나는 그곳에 가는 게 좋다. 


론은 오보에 연주자이자 이 지역 심포니 단원이고, 소도시 주변 예술가들이 으레 그렇듯 벌이가 시원치 않아 악기 보수 일을 겸업한다. 나의 경우, 아들의 클라리넷 수리 때문에 어림잡아 대략 일 년에 한두 번 쯤 론을 만나게 된다. 작업실 앞에 도착해 전화를 하면 론은 늘 알겠다며 전화를 끊고는 일이 분 안에 나타난다. 작업실이 있는 집은 노모가 사는 집이고, 론의 집은 몇 집 건너에 따로 있다. 론이 나타나면 건물 외부에 설치된 삐걱거리는 계단을 밟고 함께 작업실로 올라간다. 


노모의 집 다락방을 개조해 만든 악기 수리 공방에는 세월을 품은 나무, 먼지, 아교 냄새 등을 머금은 세밀한 입자들이 공기 중에 떠다닌다. 제 몸 한 귀퉁이를 다른 악기의 일부로 기증해야할 운명의 망가진 목관 악기들, 빽빽이 널린 공구들, 주인 옆에서 엎드려 웅크린 늙은 개, 과거의 영광이 담긴 빛바랜 사진 액자들이 들어찬 곳. 시간이 멈춘 장소에 들어선 것 같은 비현실감이 안도를 준다. 눈 닿는 곳곳 ‘내 고국 아님’을 풍기는 곳들만 떠돌다가 그 방에 들어가면, 희한하게도 내가 발 딛고 사는 땅의 국적이 지워지고 그 공간의 성격만을 감각하게 된다고 할까. 


론이 내게서 받아든 악기를 작업대에 내려놓고 살펴보는 동안 나는 그 방의 낡은 것들을 눈에 담고 냄새 맡으며 멍하니 앉아 있다. 나는 개를 무서워하지만 론의 늙은 개는 내 다리에 닿을 정도로 가까이 어슬렁거려도 신경 쓰이지 않는다. 론은 딱히 무례하지도 않지만 살가운 말 같은 것도 잘 건네지 않는다. 코끝에 돋보기를 걸고 클라리넷을 살펴보다가 찾으러 올 날짜를 툭 던지듯 일러준다. 


한번은 론이 내게 어느 나라 사람이냐고 물어본 적이 있었다. 문답이 화두가 되어 대화가 이어졌는데 날더러 미국에 계속 살 건지 한국으로 돌아갈 건지 질문했다. 나는 답하기 어렵노라고 사실대로 대답하면서 시민권 신청을 하지 않고 영주권자로 살고 있는 이유도 마음을 정하지 못해서라고 덧붙였다. 론은 시선의 각도를 바꾸더니 안경 너머로 나를 쳐다봤다.


“시민권 갖고 사는 거랑 영주권 갖고 사는 거랑 차이점이 뭐죠?”


“시민권이 없으면 미국인이 아니니 투표를 못하죠. 권리 주장하기도 어려운데다 자칫 운 나빠서 이상한 일에 휘말리게 되면 이 나라에서 쫓겨날 수도 있고요.”


“그럼 받아야겠네요.”


“미국에 남기로 결정을 하게 되면 받긴 받아야 할 것 같긴 한데요.”


거기까지 말하고 나서 나는 웃음기를 담아 말했다. 


“실은 아직 ‘미국인’이 될 마음의 준비가 안 된 것 같아요. 가끔 공적인 행사 같은데 가면 성조기 보면서 가슴에 손을 얹고 국기에 대한 맹세하는 절차가 있잖아요. 그런 상황에 놓이면 어쩔 줄을 모르겠거든요. 혼자 안하고 있으려니 민망하고, 하자니 한국을 배신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고요.”


일종의 비유로 든 예였다. 그런데 론의 입에서 피식 하고 바람 빠지는 소리가 났다. 사실 다른 미국인들과 대화하면서도 여러 번 한 말이었다. 뭐랄까. 미국 국적을 갖고 싶어 환장한 사람처럼 보이기 싫어서 그랬던 것 같은데, 미국인들 반응은 대개 거기서 거기였다. 그렇겠네요, 이해해요, 당연하죠 등등.  하지만 피식거리는 사람은 처음 겪는 바라 당황스러웠는데 론이 작업대로 몸을 돌리며 또 툭 뱉었다. 


“난 뭐 그렇게 애국심이 끓어 넘치는 사람이 아니라서 그런 기분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군요.”


무안당한 느낌에 멍하고 있던 나도 이내 론처럼 웃었다. 피식. 미국인들이 할리우드  식으로 애국심 고취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또 그것에 과하게 감동할 때마다 내가 보여왔던 ‘피식’과 다를 게 뭐냐 싶었다. 무안을 당한 주제에 배알도 없이 론에게 친밀감을 느낀 건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그런 론의 작업대 위에, 예쁜 카드가 한 장 놓여 있었다. 사진으로 만든 흔한 미국식 연하장이었다. 딸이냐고 묻자 그렇단다. 취업 문제로 고전하던 딸이 최근 겨우 직장을 얻었는데 그게 캘리포니아가 될 줄 몰랐다며 서운해 하는 기색이었다. 위로한답시고 듣기 좋은 말을 보탠다는 게 상투적인 말을 하고 말았다. 좋은 직장을 잡았는데 좀 멀면 어떠냐고, 딸도 볼 겸 그 참에 캘리포니아 나들이 한 번 하면 되지 않느냐고 말이다. 그랬더니 론이 내게 물었다. 한국에서 부모님이 가끔 오시냐고. 오신다고 했더니 그가 대뜸, 부모님이 오시면 마냥 좋기만 하냐고 되물었다.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면서. 


물론 좋다. 동시에 평소 같이 살지 않던 부모님의 방문이 내 일상과 겹쳐질 때 고단해지는 부분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부모님 뿐 아니라 누가 와도 마찬가지고, 부모님 역시 미국에 사는 내가 한국을 방문해 가있을 때마다 반가운 동시에 같은 종류의 고단함을 느끼신다는 걸 알고 있다. 아무리 그래도 혈육의 방문에 대해 이토록 허를 찌르는 질문을 받아본 적은 없었다. 


잠시 흠칫 놀랐다가 대답했다. 좋다고. 나보다는 내 부모님과 더 가까운 연령인 론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서 긍정을 강조했다. 그랬더니 론은 내 말을 딱히 믿는 것도 안 믿는 것도 아닌 덤덤한 얼굴을 돌려 다락방에 뚫린 작은 창 너머로 시선을 던졌다.  


“전에 봤죠? 우리 어머니. 요즘은 내가 지척에 있어야 해요. 아무래도 감이 좋질 않아요. 내가 딸한테 가있는 동안 돌아가시기라도 할까 싶어서.”


론의 노모를 처음 본 날이 떠올랐다. 첫 방문 때, 이 집이 론의 거주지인 줄 알고 현관 초인종을 눌렀더니 백발의 할머니가 나타났다. 악기 수리 문제로 론을 만나러 왔다고 했더니 할머니가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그때 열린 현관문 안쪽으로 실내가 보였는데 호호백발 노인이 사는 집치고는 놀라울 정도로 정갈했다. 소파 천의 문양이며 커튼이며 전형적인 노인 취향이었지만 어디 하나 추레한 데 없이 단정하면서도 안락하게 관리되고 있는 거실이었다. 


그러나 마치 사진이라도 찍어둔 양 그 날을 또렷이 각인하고 있는 게 그 때문만은 아니었다. 할머니의 표정이 신기할 정도로 밝았다. 행복한 노인 콘테스트에 나가면 단연 일등을 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혹시라도 달가워하지 않을까 싶어 멀리 사는 자식한테는 선뜻 가지도 못하면서 어머니의 임종을 지키기 위해 한시도 곁을 떠나지 못하는 론의 속내를 알고 나니 노모의 얼굴에 깃들어있던 평화와 행복이 어디에서 기인하는 건지 알 수 있었다.

 

가끔씩 내 정서로는 납득하기 어려운 미국인들의 생소한 일면에 마음이 스산해질 때가 있다. 문화적 차이를 염두에 둔다고 해도 차갑다고 여겨질 수밖에 없어 이민자의 속이 공허해지는 순간들. 그럴 때면 미국인들이란 게 나와는 그렇게도 다른 사람들인가 싶어 외국 생활에 회의가 오곤 한다. 그런데 가끔씩 마음에 수분을 주는 사람들을 만나기도 한다. 지친 여정 중 맑은 개울을 맞닥뜨리는 것처럼. 팍팍하고 건조해진 마음이 검박하고 선한 사람을 만나 물기를 되찾는 것이다. 


어쩌면 나는 몇몇 사사로운 상처 때문에 전체를 삐딱하게 보는 습관을 갖게 된 것 아닐까. 평화롭고 아름다운 동네를 보면서도 폐쇄적이라고 판정하고 마는. 이제부터는 그 동네로 들어갈 때 마음의 주름을 좀 펴봐야겠다. 혹시 아는가. 다른 면을 보게 될지. 사실 론도 처음부터 좋지는 않았다. 노모의 임종을 놓칠까봐 애가 닳는 착한 아들인 줄도 모르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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