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약초콜릿 Dec 25. 2019

2. 왜 나의 연인이나 배우자는 바람을 피울까?

 배신감. 배신감이라는 말보다는 배신통이라고 일컫는 게 더 적당할 듯하다.
 

배신에서 오는 감정이라며 끔찍한 고통을 완화시킨 단어는 너무 나약하다.

배신통은 평소 우리의 심장이 얼마나 고요했는지 사지가 얼마나 강건했는지 뚜렷하게 느끼게 해 준다.

배신통이 온몸을 휘감으면 가슴팍을 뚫고 나올 것만큼 세차게 날뛰는 심장과는 비교되게 팔다리는 감각과 기능을 잃고 무력해진다. 내면의 분노와는 반대로 어깨는 움츠러들고 무릎엔 힘이 실리지 않아 주저앉게 되는 심각한 분열 증상을 동반하는 게 배신이다.


 이처럼 배신은 당해본 사람만 아는 육체의 언어다. 그런데 고작 배신감이라니... 이야말로 배신감이 생긴다.


 배신의 종류는 다양하다.

여러 인간관계를 맺을수록 배신의 늪에 빠질 가능성 또한 높아진다.

부모 자식 간에서, 친구 사이에서, 직장동료 혹은 상사와의 사이에서 배신은 크든 작든 도처에 함정을 파고 당신이 빠지길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유독 치명적이고 악독한 배신은 배우자나 연인으로부터 발생한다.

외도, 바람, 불륜, 양다리, 한눈팔기, 두 집 살림 등등. 이 중 어느 것도 호락호락한 배신은 없다.


 그 또는 그녀가 내가 아닌 다른 이성에게 눈이 돌아가고 마음이 쏠리는 이유는 뭘까?

분명 내가 매력적이어서 짝이 된 것일 텐데 어째서 지금은 내가 아닌 걸까?


 여러 추측과 가정이 난무하겠지만 그중 하나로 내가 꼽는 것은 자기 기대 충족이다.


 누구나 자신에게 거는 기대가 있는 법이다. 무엇보다 스스로에게 거는 암시는 충족 욕구가 상당히 높다.


 나는 아직 행복에 대한 정체를 잘 모르지만 꿈꾸고 열망한 내 모습, 일명 ‘완전한 나’로 여겨진 순간에 행복하다는 건 안다.


 완전한 내가 되는 길에 연인이나 배우자를 고르는 것이 어떻게 간과될 수 있는 일일까?


지금 내 옆에 있는 이 사람이 나를 비춰주는 거울이 되는데 말이다.

심지어 그 거울은 미처 몰랐던 나의 모습까지도 속속들이 들춰내기도 한다. 감춰졌던 내 모습에 흡족하면 행운이지만 실망이라도 하면?


한약초콜릿의 책에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토마시는 지독한 바람둥이에 여성편력을 가진 인물이다.

그에게 여자란 항상 적당한 거리를 두면서도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존재이다. 쉽게 말해, 구속이나 속박은 거부하지만 즐거움은 나눠야 한다는 말이다.

이런 그에게 이전의 대상들과는 다른 감정을 샘솟게 한 인물 테레자가 나타난다. 테레자의 등장은 토마시에게 구원자 흡사한 감상을 일깨운다.

오갈 데 없는 테레자를 집으로 들이면서 토마시는 ‘송진 바구니에 실려 떠내려 온 아기’를 발견해서 세상에 대단한 이로움을 선사하게 될 역사의 선구자가 된 듯한 느낌을 갖는다.


 토마시는 어쩌면 지배력의 환상을 품었는지도 모른다. 본인이 끼칠 수 있는 지배력을 쉼 없이 찾고 확인하던 중 테레자로부터 환상이 충족되는 기쁨을 누렸을 것이다.

그렇다면 토마시는 바람기를 잠재워야 하는데도 여전히 다른 여성들과의 유희를 멈추지 않는다. 자기 기대 심리의 종류는 한 가지만 있는 것이 아니니 별 수가 없는 게 아닐는지.


 만약 모두가 자기 기대 충족을 우선으로 살아간다면 세상에 바람둥이가 아닐 사람은 없을지도 모른다. 다만, 내 옆의 짝에게서 얻는 자기 기대감을 최고로 쳐야 서로의 신뢰가 무너지는 것을 예방할 수 있는 게 아닐까?

매거진의 이전글 1.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