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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송 Aug 23. 2019

네넹넵!

초단편소설1

#네

“네.”

퍽퍽한 닭가슴살 같은 균상의 대답 뒤로 “넵” “넵!!” “넵^^” “넵:)” 이라는, 너무 딱딱하지도 너무 가볍지도 않은 직원들의 대답, ‘넵’과 그 변형어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넵병의 진원지, 바오밥톡에서 개발자로 일하는 균상은 공대로봇이란 별명답게 몸도, 행동도, 말도 뻣뻣했다. 유일하게 넵병이라는 전염병에 걸리지 않은 직원이기도 했다. “넵” 대신 균상은 “네” “예” “아니오” “저는 헬스장에 가야해서 먼저 퇴근해보겠습니다” “못 합니다” 등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입밖으로 직접 꺼내곤 했다. 그는 인간관계에서 발생하는 무의미한, 인사치레 가식적인 대화들의 알고리즘을 이해하지 못한 사람이었다. 균상에게는 C언어는 쉬웠는데 ‘넵’과 같이 뉘앙스를 고려해 언어를 사용하는 것은 어려웠다. 균상은 동료들과 교류하는 대신 그저 하루종일 컴퓨터에, 태블릿PC에, 스마트폰에 얼굴을 파묻고 일만 했다. 일은 참 잘했으나 동료들과 상사들과 균상의 거리는 점점 더 멀어져갔다. 오늘도 균상은 차장님 방에까지 소환되고 말았다. 카톡방에서 차장이 만든 회식장소투표에 3일 내내 투표하지 않아서, 였다.

“균상 씨, 계약 6개월 남았던데, 재계약엔 관심 없나봐?” 뻣뻣한 균상을 보고 화가 난 차장은 계약연장을 들먹이며 균상을 방에서 쫓아냈다.     

‘아, 누가 대신 사회생활 좀 해줬으면’

탕비실 우유와 에스프레소 비율이 정확히 8:2인 라떼에 이례적으로 단 시럽을 일곱 펌프나 넣으면서 균상은 생각했다. 아직 학자금 대출빚이 남아있었다. 반드시 계약은 연장되어야 했다. 균상은 갑자기 무언가가 생각난 듯 라떼를 들고 긴 팔다리를 삐걱거리며 자리로 겅중겅중 뛰어갔다.

방에서 균상을 예의주시하고 있던 차장은 혼자 궁시렁거렸다.

“아유 저 공대로봇. 몸도 뻣뻣한 게 영락없는 로봇이.”     


#넹

오늘도 어김없이 동료들을 뒤로 하고 칼퇴근한 균상은 집에 와서도 컴퓨터 앞에 앉았다. 카톡방을 열어 사회생활의 달인으로 불리는 직원들의 카톡을 꼼꼼하게 모니터링해보았다. 그러나 왜 이 타이밍에서는 ‘넵!’이라고 말하고 비슷해보이는 이 상황에서는 ‘넵!!!’대신 ‘넹~^^’을 말했는지, 야근하자, 회식하자, 하는 이 카톡에 왜 ‘넵! 완전 좋습니다! 제가 장소 섭외해두겠습니다’라고 한 술 더 떠서 말해야 하는 건지 균상은 그 매커니즘을 역시나 집에서도 이해할 수 없었다.

“역시나 나는 코딩이 답인가.”

균상은 자신이 가장 자신 있는 C언어로 네,넹,넵과 같은 직원들의 다양한 말을 가지고 알고리즘을 만들기 시작헀다. 자신의 회사카톡방 뿐만이 아니라 SNS에 떠다니는 온갖 카톡방 예시에서 상황과 대답을 끌어왔다. 금토일 3일 내내 집에 박혀 균상은 정교하고 또 정교하게 대답 알고리즘을 만들었다. 그리고 일요일 저녁 8시, 균상은 대신 맞깔나는 대답을 해줄, 대답어플을 개발해냈다. 이름까지 붙여주었다. ‘네넹넵’어플이라고. ‘예’와 같이 딱딱한 대답은 아예 데이터에 입력하지 않았다. 균상은 앞으로 사회생활을 대신할 네넹넵 어플을 태블릿PC, 스마트폰에도 설치하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직원들은 달라진 균상에게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특히 이제 막 회사에 들어온 신입사원들에게 소위 말하는 인싸가 되었다.  

“균상선배님 대박! 어떻게 차장님이랑 저렇게 술술 농담을 주고 받을 수 있지?”

“그러게요. 어디 사회생활 학원이라도 다니시나? 사회생활짱!”

“우리 균상선배한테 가볼까요? 좀 친해져서 노하우 좀 전수받게. 저는 차장님이 너무 무섭거든요.”

~”     


#넵

1개월, 2개월, 3개월… 네넹넵 어플도 데이터가 축적되면서 점점 더 진화했다. 어느 SNS에 올라온 글에서 데이터를 추출했는지 차장과의 사우나 데이트까지 말할 줄 아는 지경에 이르렀다. 난생 처음으로 타인과 목욕을 해야 하는 사우나에 무려 차장과 다녀온 균상은 윗선에서 균상을 좋게 보기 시작했다는 말에 해벌쭉 웃었다. 차장은 대답도 잘하고 입바른 소리도 척척 내놓는 균상을 예뻐하기 시작했다. 사회생활이 잘 풀리면 잘 풀릴수록 균상의 눈은 피로로 충혈되었고 간은 술에 찌들었으며 마음은 만신창이가 되었다. 사우나에서 곧장 회사로 출근한 균상은 한숨을 내쉬었다. 4개월 째 어플을 쓰고 있는 균상은 이제 예전에 어플 없이 어떻게 ‘아니오’ ‘오늘은 먼저 퇴근하겠습니다’를 그렇게 술술 말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균상은 그토록 바라던 계약연장이 이뤄지기도 전에 자기 자신도 소멸되어버릴 것만 같았다. 그 때 자기는 집에 들러서 한숨 자고 오겠다던 차장의 톡이 왔다.

“균상씨, 오늘 밤에 회사 앞에 횟집 같이 가는 거 어때?^^ 내가 이사님한테 균상씨 계약은 잘 말해두었네.” ^^를 받은 균상의 어플은 일그러진 균상의 얼굴은 생각도 안하고 또 곧장 웃으며 대답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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