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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송 Aug 24. 2019

안녕하세요와 안녕히계세요 그 사이

초단편연애소설2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KTX 객실 승무원인 미진과 정수는 신입사원 연수 때 처음 만났다. 둘은 서로 인사를 나누는 그 첫 순간부터 반하고 말았다. 그들은 즉시 비밀 사내연애를 시작했고 벌써 7년째 만남을 이어가고 있었다. 서울에서 부모님과 사는 미진과 대학 때부터 부산에서 자취하고 있는 정수는 장거리 커플인 셈이었지만 둘은 KTX가 무료였기에 장거리 커플의 애환을 그다지 느끼지 못했다. 미진과 정수는 KTX를 타고 팔도를 돌아다니며 데이트하는 KTX 커플이었다. 그렇게 7년은 금방 흘러갔다. 서로에게 무뎌지고 익숙해졌지만 둘은 여전히 함께이기는 했다.  


다 식은 수프처럼 뜨뜻미지근한 둘의 사이가 아예 쏟아져버릴 것만 같은 위태로운 사이가 된 것은 정수가 디스크 수술하면서 승무원을 그만둔 시점부터, 아마 그 시점부터였을 것이다. 허리가 원체 좋지 않았던 정수는 업무의 대부분이 서 있는 승무원 생활로 7년째 되는 해 허리 디스크 판정을 받았고 몇 달을 병원서 꼼짝없이 누워만 있어야 했다. 일찍이 부모님을 여읜 정수는 퇴사하고 혼자 부산에서 큰 수술을 받아야 했고 미진은 정수를 안쓰러워하며 극진히 돌봐주었다. 미진은 종일 힐을 신고 서 있는 터라 퉁퉁 불은 종아리를 끌고서도 정수를 보러 매일같이 부산행 KTX에 올랐다. 일과 남자친구 정수가 동시에 미진의 어깨를 양쪽에서 짓누르는 느낌을 받았지만 미진은 매일 밤 진통제 없이 잠들지 못하는, 부쩍 짜증이 많아진 정수를 의무적으로 보러 가고 또 갔다. 34살. 27에 정수와 연애를 시작해 7년을 함께 한 미진은 이제 34살이었다. 미진은 30이 넘으면 큰일 나는 줄만 알았던 과거의 자신이 우스워졌지만 동시에 35살이 되는 것은 또 미친 듯이 두려워졌다. 이제는 정수를 사랑하지도 않고 정도 그다지 남지 않았지만 35살에 혼자가 되면 영원히 혼자일 것만 같은 두려움이 가득한 미진은 관계 중독자였다. 미진의 부모님은 딸 부잣집 첫째 딸 미진이 어서 결혼해야 혼기가 꽉 찬 두 동생들도 결혼한다고 미진을 은근히 압박해왔다.

“진통제! 진통제 좀 놔 달라고 간호사 불러줘! 얼른! 미진아 얼른!”

매일같이 진통제에 의지해 잠을 청하던 정수가 약물중독이 의심된다며 병원에서는 진통제를 놔주지 않겠다고 했건만, 36살의 거대한 아기 같은 정수는 미진을 붙잡고 떼를 쓰고 있었다. 관계중독과 약물중독. KTX 사내커플은 어느새 중독 커플이 되고 말았다.     


“요새 정수는 뭐하니? 수술 끝난 지 꽤 됐지? 하루 종일은 아니고, 정수 잠깐 파트타임으로 객실 검표 좀 해줄 수 있으려나? 객실 승무원 일도 아니니 허리에 무리가 가지 않을 텐데. 물어봐봐, 너네 아직도 친하지?”

‘친하지’라는 말은 ‘사귀지’일까. 미진은 무언가 안다는 듯 애매모호한 동기의 말에 멋쩍게 웃을 뿐이었다. 부산 집에서 늘어진 티셔츠에 라면 국물이 튄 수면바지를 입고 TV 앞에 늘어져 있을 정수를 떠올렸다. 허리는 많이 좋아졌고 정수는 서비스직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재취업 준비 중이었다. 미진의 전화를 받은 정수는 흔쾌히 검표 아르바이트를 받아들였다. 이번 주말에도 어김없이 미진은 정수의 부산 집으로 향하는 KTX를 탔다. 디스크 수술을 하면서 어쩐지 데이트는 모두 부산에서만 하는 것으로 무언의 약속처럼 이뤄졌다. 둘은 스케줄표를 비교해보았다.

“어떻게 한 번을 안 겹치냐.”

코를 팽 풀면서 미진은 중얼거렸다. 정수는 고개를 으쓱-하고는 스케줄표에서 눈을 떼 TV로 옮겼다. 사내커플일 때는 휴무일을 맞추는 것으로도 모자라 같은 기차 근무까지 맞추기도 했지만 이번에는 신기하게도 일주일 내내 한 번도 겹치지 않았다. 미진이 서울이면 정수는 부산, 정수가 서울이면 미진은 부산. 일주일 정선 선배 대타로 일하는 시간 동안 미진과 정수는 7년 만에 처음으로 일주일 동안이나 각자의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여전히 습관적으로 진통제를 먹고 잠드는 정술을 두고 미진은 서울행 KTX를 타러 갔다. 부산역에서 미진은 왠지 울컥해졌지만 멀리서 손을 흔들며 다가오는 동기를 보고는 이내 활짝 웃었다. 그리고 동기에게 기회만 된다면 꼭 말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우리 네가 생각하는 그런 사이 아니야, 라고. 결혼하고 싶은데 이상하게 세상에는 반대로 말하고 싶었다.     


“이번 역은 대전, 대전역입니다…”

미진과 정수가 따로 근무한 지 어느새 6일째가 되는 날이었다. 객실을 전부 돌고 온 미진은 의자에 앉아 부은 다리를 조물조물거렸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팡팡 나왔고 미진은 졸음이 밀려왔다. 5분만, 5분만 눈 붙여야지. 미진은 생각했다.     


“이번 역은 대전, 대전역입니다…”

그 시각 미진이 탄 KTX와 반대로 가는 부산행 KTX에는 정수가 타고 있었다 무임승차하고 화장실에 숨어들어 다른 승객들의 원성을 산 남자를 나오게 하느라고 진땀을 뺀 정수는 휴게공간으로 돌아와 털썩 앉았다. 살짝 아픈 허리를 조물조물 풀어주었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에 땀을 식히던 정수는 졸음이 밀려왔다. 둘의 기차가 서로 교차하고 각자의 길을 가는 순간 미진과 정수는 모두 눈을 감고 서로를 생각했다. KTX는 서로 반대 방향을 향해 거침없이 내달렸다.          



“미진아 너, 설마 네가 무임승차니? 어떻게 KTX 직원이… 어서 내려!”

미진은 무임승차를 단속하는 정수의 목소리를 들으며 잠에서 깼다. 정수는 달리는 KTX의 문을 발칵 열더니 미진을 밀쳤다. 잠에서 덜 깼지만 미진은 본능적으로 기차 문을 붙잡아서 간신히 매달렸다. 태워 죽일 것만 같은 햇빛이 얼굴에 사정없이 내리쬈다. 대롱대롱 미진은 빠르게 달리는 기차에 매달려 정수에게 애원했다. 제발 일단 기차에 태워달라고.

“결혼하자고 그만 이야기하면. 너는 더 이상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왜 매번 결혼하자고 그래? 왜 대충 결혼에 타서 가려고 하냐? 난 너 태울 수 없어. 무임승차는 절대 두고 볼 순 없지. 내려!”

어안이 벙벙해진 미진은 넋을 놓고 자신을 미는 정수를 바라보다가 이내 결심한 듯 스스로 기차 문을 놓았다. 이제 죽겠지. 미진은 눈을 질끈 감았다. 붕 몸이 들렸다가 지상으로 내리 꽂히는 기분이 들었다. 분명 달리는 기차에서 떨어져 나갔는데 이상하게도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두려웠던 것보다 훨씬 아무렇지 않게 땅에 착지했다. 그냥, 마음만 조금 아플 뿐이었다.     


      

“이번 역은 부산, 부산역입니다.”

“미진아 일어나! 악몽 꿨니? 웬 눈물까지 흘려가면서 잠꼬대를 해.”

미진은 슬쩍 눈을 떴다. 따가운 햇볕 대신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느껴졌다. 다 꿈이었다. 전광판에는 부산이 떠 있었다. 익숙한 정수 집으로 가는 대신 근사한 호텔에서 이제는 오지 않을 부산 바다를 구경하고 싶어 졌다.   

  

“이번 역은 서울, 서울역입니다.”

그 시각 정수는 서울역에 도착했다. 손을 꼭 잡고 내리는 젊은 부부를 보며 정수는 복잡한 생각이 들었다. 며칠 전 미진이 서울에 가면 자신의 집을 쓰라며 은근슬쩍 또 결혼 이야기를 꺼냈기 때문이다. 정수는 결혼을 이야기하는 미진이 자신을 사랑하지 않음을 느꼈다.

“김미진, 아니 박정수! 박.정.수! 이 이름으로 1박 예약해주세요.”

정수는 미진의 집으로 가지 않고 호텔로 향했다. 항상 미진의 이름으로 예약해왔기에 습관적으로 김미진을 말했지만 이내 바로잡았다. 오랜만에 홀로 선 자신의 이름 세 글자가 입에 맴돌았다.

‘박정수, 박정수.’

정수는 미진을 생각했다. 무임승차 검표 대타도 어느새 하루 남았다. 다시는 KTX에서 일할 일은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이제 부산에서 서울에 오는 방법은 KTX가 유일한 것이 아니었다. SRT가 생겨버렸다. 새 직장에 취직할 계획, 새 아르바이트, 부산 집 월세가 정수의 머릿속에 가득 차면서 미진이를 어느새 하차시키고 말았다. 정수는 미진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네듯 직원에게 결의에 찬 목소리로 크게 인사를 하고서는 그 자리를 떠났다.

“안녕히 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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